내일의 눈
80년의 역사, 미래를 여는 도서관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보관하고 빌려주는 곳일까. 최근 여러 공공도서관들을 방문해 취재할 기회가 있었다. 취재과정에서 도서관은 점점 더 지역사회와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실험실로 변모하고 있음을 실감했다. 예컨대 경기도 군포 ‘그림책꿈마루’는 유휴 배수지를 리모델링해 탄생한 공간이다. 이곳은 그림책 2만여권을 소장한 라키비움(도서관·아카이브·박물관의 합성어)으로 그림책 전시와 원화 체험, 무장애(배리어프리) 그림책 포럼 등을 통해 세대를 아우르는 문화거점으로 자리잡았다. 단순한 ‘어린이 책 공간’이 아니라 모든 세대가 꿈과 이야기를 다시 꺼내 보는 문화의 마루로 기능하고 있다.
서울 서초구 ‘방배숲환경도서관’은 기후위기 시대에 공공도서관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제로 스트레스, 제로 플라스틱, 제로 에너지, 제로 웨이스트’라는 ‘포(4)제로 정책’을 선포하고 채식 실천, 태양광 발전, 불 끄는 날 등 시민과 함께하는 생활 속 실험을 이어간다. 도서관에서 ‘북극곰과 펭귄을 지키자’는 교육이 추상적 구호에 그치지 않고 실제 행동과 습관으로 이어지는 이유다. 그 결과 이곳은 국제 환경상을 연이어 수상하며 지속가능성을 시민 일상 속으로 끌어들이는 공공장소로 주목받고 있다.
서울 금천구 ‘독산도서관’은 숲과 책, 예술을 결합한 사례다. 대나무숲 앞 야외열람실에서 열리는 공연은 도서관을 문화예술 무대로 바꾸어 놓는다. 또한 ‘책 쓰는 금천’ 프로젝트는 독산백일장, 은빛풀꽃자서전, 퇴근 후 글쓰기 등으로 지역 주민이 책을 쓰게 지원한다. 지역을 살아가는 주민들의 삶은 그 자체로 지역의 기록이 된다. 여기에 기후위기를 인식시키는 ‘기후동행 패스포트’, 인공지능(AI) 창작 프로그램까지 더해지며 도서관은 시민들의 생활·기록·기술이 교차하는 장소로 확장되고 있다.
3곳의 도서관은 각기 다른 색깔을 가졌지만 공통적으로 도서관의 확장을 말해준다. 도서관은 더 이상 책만 읽는 곳이 아니라 지역과 시대의 현안을 대응할 수 있는 장소로 변화하고 있다. 또한 시민이 직접 참여하며 책을 매개로 삶과 연결되는 실험장이 되고 있다.
국가대표도서관인 국립중앙도서관은 올해로 80주년을 맞는다. 15일에는 관련한 기념행사가 열린다. 우리나라 도서관의 역사가 80년이 됐다는 의미다. 2024년 기준 공공도서관은 1296개관에 이르렀다. 그 사이 도서관은 책을 읽고 공부를 하던 장소에서 지역과 시대의 현안에 대응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주민들과 함께하는 장소로 확장됐다.
내년엔 부산에서 세계도서관정보대회(WLIC)가 열린다. 한국 도서관의 성장이 전세계 도서관 문화에 새로운 자극과 비전을 제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