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지방정부 주도로 공론화 확산
시민단체 합의회의 시동, 울산 북구 시민배심원제 시도
정부·지자체 정책 결정, 합리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가 1998년 유전자변형식품(GMO)에 대한 정책 제언을 위해 ‘합의 회의’를 처음 열었다. 1999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가 주최한 생명복제 합의 회의는 16명의 시민이 3박 4일간 합숙하며 전문가 강의와 자체 토론을 거쳐 생명복제 금지에 뜻을 모았다. 이는 과학기술 정책 결정에 시민이 참여하는 계기가 됐다. 광고를 통해 모집된 시민패널은 대학생, 사회단체, 의사, 광고기획가, 주부, 교사 등 다양한 직업을 갖고 있었고 두 차례에 걸쳐 전문가들로부터 교육을 받고 질의응답, 토론 등을 가졌다. 당시 전문가패널로 체세포복제기술로 한우와 젖소를 복제한 황우석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가 참여하기도 했다.
울산시 북구청은 2004년 음식물 쓰레기를 바로 매립하지 않고 퇴비화하거나 완전 소각한 뒤 잔재물을 매립하는 ‘음식물 자원화’시설 건설사업과 관련한 주민과의 갈등을 시민배심원제로 해결했다. 시민배심원제는 사회단체 대표와 종교인 등으로 구성된 39명의 시민배심원이 찬반 토론 등을 거쳐 활동 보름 만에 시설을 건설키로 결정했다.
시민단체에서 정부로 공론화 주도권이 넘어온 것은 노무현정부 때다. 개혁정책을 놓고 갈등과 대립을 겪던 지난 2005년, 8.31 부동산 대책 발표를 앞두고 공론조사에 나섰다. 첫 정부주도 공론조사다. 당시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는 시민 511명을 선정해 세제 개편과 거래 투명화, 중·대형 아파트 공급 확대 중 어느 것이 우선돼야 하는지를 물었다. 숙의 전에 1차 설문조사를 가졌고 설명 자료집 내용을 숙지하고 토론회, 분임토의를 가진 후 최종 설문조사를 거쳐 결정했다.
2007년 7월에는 부산항만공사가 부산 북항의 재개발을 추진하면서, 부산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개발계획에 대한 공론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2011년 경찰청 주도의 ‘삼색 화살표 신호등 관련 여론수렴을 위한 시민 공청회’는 96명이 참여했고 2시간여 동안의 토론 이후 ‘도입 찬성’ 비율이 26명(28.0%)에서 48명(50.5%)으로, ‘도입 반대’는 67명(72.0%)에서 47명(49.5%)으로 바뀌었다.(무응답은 3명에서 1명으로)
신고리 5호기와 6호기 건설 재개와 관련해서는 시민참여형 공론조사가 시도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백지화’ 공약을 깨는 근거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후 대입제도, 선거제, 국민연금 공론화도 시민참여 공론조사 방식으로 이뤄졌다.
제도도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기준 45개 중앙행정기관은 갈등관리심의위원회를 설치, 운영했다. 중앙행정기관장의 판단에 따라 사안별로 구성해 공무원과 이해관계자 등의 대화와 타협, 참여를 통해 갈등을 해결하는 제도인 갈등조정협의회는 40개 부처에 141개가 운영됐다.
공공기관 갈등예방 규정(대통령령)이 만들어졌다. 다만 법률안은 정부와 의원들이 2012년부터 수차례 제안했지만 상임위를 넘지 못했다.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조례를 제정하고 갈등관리담당관을 임명하는 등 갈등 해소에 적극 나섰다. 광역시도 중에서는 경기도, 인천광역시가 조례로 ‘공론화 추진’을 법제화 했고 기초자치단체 중에서는 서울 광진구, 부산 북구 사상구 서구 연제구, 대구 서구, 경기도 여주시 오산시 의정부시 파주시, 강원 영월군 정선군, 경북 칠곡군, 전남 목포시, 전북 익산시, 임실군 등도 법제화(조례)를 완료했다.
김춘석 한국리서치 공론화센터장은 “우리나라 공론화는 합의 회의, 시민배심원제, 공론조사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됐고 정부주도로 이뤄지면서 실제 반영되기도 하는 등 효능감을 높였다”면서 “일부 정부나 지방정부가 원하는 정책을 공론화를 통해 합리화하려는 측면도 있는데 이는 앞으로 감시, 검증 강화 등으로 보완해야 할 부분”이라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