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머니 잡아라” 보험업계 신탁 도입 후끈

2025-10-14 13:00:02 게재

대형 생명사는 신탁업 인가

중소형사는 은행과 손잡아

업계 “신탁재산 세금 혜택 있어야”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각종 사회·경제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 잠자고 있는 치매머니를 경제 선순환 구조에 수혈할 방안을 놓고 보험업계가 고민중이다.

14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보험업계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의 치매인구는 124만명으로 이들이 보유한 치매머니는 154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6.4%에 달하는 규모다. 현재와 같은 인구구조가 고착화되는 2050년이면 치매머니 규모는 448조원으로 늘어난다.

치매머니란 앞서 초고령사회에 먼저 진입한 일본에서 생겨난 개념으로 치매 환자가 소유하고 있는 자산을 말한다. 주로 부동산이나 은행 예·적금 등 질병으로 인해 스스로 관리하거나 처분할 수 없어 사실상 동결된 것들이다.

법적 절차를 통해 가족 등이 유동화하는 경우도 있지만 재산 존재 여부를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사망 이후에나 상속되면서 실체가 드러나기도 한다.

◆자산 소비 고령층이 장악 = 한국의 60대 이상의 보유 자산 비중은 2012년 27.4%였지만 2023년에는 42.1%로 껑충 뛰었다. 고령자 규모가 늘면서 양적 확대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청년층이 수와 소득이 줄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세청이 국회에 제출한 연령별 종합부동산세 현황을 봐도 고령자의 자산 규모를 예상할 수 있다. 종합부동산세를 납부한 이들 중 60대 이상 비중은 52.5%에 달한다. 구체적으로 60대(28.9%) 50대(27.6%) 70세이상(23.6%) 순으로 나타났다. 세액을 기준으로는 70세 이상이 가장 많았다.

연령대별 소비규모를 봐도 상황 파악이 가능하다. 2023년을 기준으로 노동연령층(15~64세)은 1031조원을 썼는데, 이는 전년도보다 6.3% 늘어난 수치다. 반면 65세 이상 노년층 지출은 244조 규모인데, 전년에 비해 12.0%나 증가했다. 노인들의 씀씀이 증가세가 경제활동 인구보다 더 가파르다는 이야기다.

치매머니는 국가경제 차원에서도 문제다. 현금 유동성이 줄어들어 내수가 위축되고, 사회적 손실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금고에 돈이 쌓여 있지만 쓰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일본도 뒤늦게 치매머니로 인한 경제 동맥경화를 파악하고 신탁제도 활성화 등을 통해 수습에 나선 바 있다. 한국보다 20년 먼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치매머니는 2020년 기준 한화로 2400조원에 달한다. 이는 일본의 연간 GDP의 40%에 달하는 액수다.

한국 보험업계의 경우 1970년대는 교육보험을 판매했고, 2000년대에는 연금과 종신보험 위주의 영업 활동을 했다. 2030년이 되면 간병이나 요양 돌봄 등 신탁사업이 주를 이룰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생보사 신탁업 경쟁 후끈 = 보험사들은 그동안 사망보험금의 경우 그동안 일시금 지급을 해왔다. 하지만 고령수익자(배우자)의 과도한 소비, 자산의 체계적 관리, 사후 분배 등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이 때문에 신탁이라는 수단이 급부상했다.

지난해 11월 한국의 생명보험사들이 보험금청구권신탁을 영위하면서 신탁시장이 열렸다.

보험금청구권신탁은 피보험자 사망시 사망보험금을 신탁회사가 수령한 뒤 관리•운용한 후 지정된 조건에 따라 수익자에게 지급한다. 상속 과정에서의 분쟁 예방과 수익자의 생활안정을 꾀할 수 있다.

조부모가 손자녀에게 월생활비를 지원하고, 성인이 되면 목돈으로 지급하도록 미리 설정하는 경우가 있다. 또 장애가 있는 자녀를 위해 상속 재산은 비장애 자녀에게, 장애 자녀에게는 보험금청구권신탁을 통해 생활비를 지급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자본시장법상 보험 계약 대출이 없고, 사망보험금이 3000만원 이상 지급되는 경우 보험청구권신탁(사망보험금신탁)이 가능하다. 보험계약자와 피보험자 위탁자가 동일해야 하고, 신탁수익자는 직계존비속·배우자로 제한된다. 보험청구권신탁이 도입된 초기라 제약이 많다는 평가다. 활성화될 경우 수익자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그동안 보험금청구권신탁에서 가장 활발한 것은 삼성생명과 교보생명이다. 뒤를 이어 흥국생명과 미래에셋생명이 보험청구권신탁상품을 취급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한화생명이 뛰어들었다.

교보생명은 한발 더 나가 ‘평생안심신탁’ 상품을 내놨다. 이 상품에 가입하면 고객에게 일반 은행계좌처럼 활용할 수 있는 단기특정금전신탁(MMT, Money Market Trust) 계좌를 내준다. 계약자는 MMT에 돈을 넣어두고 일반 은행계좌처럼 사용하다가 중증치매나 질환으로 일상생활 영위하기 어렵다는 의료적 진단을 받으면, 교보생명이 직접 관리해 수익자에게 위탁자의 의료비나 치료비 요양비 등을 지급한다. 돈이 묶이지 않고 위탁자 돌볼비용으로 활용할 수 있다.

주로 대형 생명보험사들이 종합재산신탁업을 겸영하면서 고객들의 보험금 신탁시장에 진출했다면, 중소형 보험사들은 은행들과 손잡는 방식으로 활동하고 있다.

메트라이프생명은 최근 하나은행과 보험금청구권신탁 활성화 및 서비스 확대를 위한 업무제휴 협약을 체결했다. 신탁업 인가를 받는 대신 설계사들이 고객들에게 신탁 서비스를 안내하고, 제휴한 하나은행에서 서비스 받도록 권하는 방식이다.

ABL 생명도 보험금청구권신탁 특화 상품인 ‘(무)우리가족THE해주는상속종신보험(해약환급금 미지급형)’을 내놨다. 특히 우리금융그룹에 편입된 후 우리은행에서 신탁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설계했다.

업계의 활동이 늘고 있지만 신탁에 대한 경제적 유인이 부족하고 소비자의 인식이 많지 않은 점은 신탁 가입의 걸림돌로 꼽힌다.

지난달 열린 산학세미나 ‘보험산업과 신탁’에서 손해보험협회 박민선 팀장은 “현재 보험금청구권 신탁 제도는 일반사망보험금만 운영되고 있다”며 “실제 사회적 수요는 다양한 상황을 포괄하고 있어, 상해 및 질병사망, 치매까지 신탁 대상의 추가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험연구원 김규동 연구위원은 “신탁 가능 재산의 범위 확대와 신탁재산에 대한 세제 혜택 부여 등 제도개선을 통해 신탁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

오승완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