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화 만병통치약 아냐…국회 정상화돼야 토론도 산다”

2025-10-14 13:00:02 게재

전문가들 “공론화 도구화 안 돼” “정부, 관여없이 지원만” 조언

공론화 성공조건 … 명확한 선택지·정치권 충분 논의·국민관심

사회통합 중심적 역할, 정부 30% > 국회 18% > 언론 15% 순

법사위 국정감사, 여야 설전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대법원 등에 대한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추미애 법사위원장에게 조희대 대법원장 이석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전문가들은 공론화를 만병통치약으로 보지 말 것을 주문했다. ‘시민의회’와 같은 방식의 공론화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추진하거나 하기 싫은 것을 좌초시키는 ‘수단’으로 삼는 등 부작용도 경계했다. 상황따라 만들어지는 공론화는 오히려 불신을 낳아 더욱 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진단도 나왔다.

따라서 공론화는 아주 명확하고 단순한 선택지 중에 고르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또 국회와 국민들 속에서 충분히 논의되고 있는 사안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의 길을 걷는다’는 게 김상균 서울대 명예교수(국회연금특위 공론화위원장)의 조언이다. 이태호 참여연대 운영위원장은 공론화를 시민단체 주도로 하더라고 결국은 정치권에서 ‘대표권’을 인정해줘야 하고 그래야 법제화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정치권과의 상호작용’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시민들의 압박이 있더라도 결국은 정치권에서 스스로 양극화를 해소하는 등 토론을 회복해야 한다는 얘기다.

김춘석 한국리서치 공론화센터장은 “공론조사가 성공하기 위한 선결 조건은 정부 정책 담당자나 전문가들이 시민을 믿는 것”이라며 “정부는 지원은 하되 관여는 하지 않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실제로 유권자들은 정부와 국회, 시민단체의 영향력을 골고루 인정했다. 한국행정연구원이 지난해 8월1일~9월30일까지 케이스태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825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회통합실태조사에 따르면 국회가 사회갈등 해소에 노력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48.5%(전혀 노력하지 않는다 19.2%+별로 노력하지 않는다 29.3%)였다. 정부(36.3%), 법조(32.8%), 노조(32.5%) 등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다. 사회통합을 위해 중심적 역할을 해야 할 집단으로는 정부가 29.7%로 가장 많이 꼽혔다. 그 뒤는 국회(17.8%)와 언론(15.0%)이 지목됐다.

다음은 전문가들이 밝힌 갈등이나 정치 양극화의 원인 진단과 해법, 공론화의 성공조건 등에 대한 의견이다.

●김만흠 전 국회 입법조사처장 “정치개혁 외면하는 정치권에 대한 언론 비판 필요” = 현재의 정치 양극화 책임은 절대권력을 보유하고 있는 민주당에 있다. 또 정치적 독점 구조라는 근본적인 문제도 안고 있다. 대기업의 독과점을 비판하는 것처럼 거대 정당 독점체제도 비판적으로 봐야 하는데 오히려 정치적 독점권을 법으로 보호해 주고 있다.

정당민주주의의 기본 요소인 경쟁적 민주주의가 무너져 있는 셈이다. 민주당 1당 독주가 가능한 구조에서 정당의 공적인 대의는 실종되고 권력 카르텔의 민낯만 남아 있다.

정치권은 공적인 인식이 사라진 상황에 봉착해 있다. 민주주의의 기반인 합의된 공동의 상식이 붕괴되고 있다. 정당을 매개로 한 진영정치의 극단화, 정당 권력이 돼버린 정파적 유튜브 언론 문제를 심각하게 봐야 한다.

시민단체 등도 정치적으로 편도돼 있다. 사회 전체가 진영화 돼 버렸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는 다당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는 거대양당에게 선거제 개혁을 기대하기 어렵다.

해법은 명확하다. 내란 청산은 사법부에 맡겨놓고 정치 개혁을 해야 한다. 또 이를 외면하는 정치권에 대한 언론 비판이 절실하다.

●김윤철 경희대 교수(한국선거학회장) “개혁의 주도권을 시민들에게” = 우리나라 갈등상황이 심각한 것은 사실이다. 과거와 같은 지역간, 빈부간 갈등보다는 최근엔 이념 갈등이 두드러진다. 이념 갈등은 정치 고관여자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드러나 보이는 측면이 있다. 세계적 조류에 따라 극단적 양극화가 강력한 지지층 결집과 함께 두 거대정당에 의한 정치권 양극화로 이어지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그렇고 현실적인 유권자 득표력 확장을 위해서도 ‘갈등이 가장 더 유리한 전략’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결국 양당 구도가 견고하게 구축됐고 이를 해소하는 게 과제다.

따라서 선거 제도를 바꾸는 게 가장 중요하지만 아무리 선거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말해도 현재 양당 구도에서는 절대 양보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기성 체제를 바꾸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 결국은 시민적 관여를 높이는 방향으로, 선거 제도 등을 정치인들한테 맡기지 않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다. 정치권에선 싸우지만 우리 일상적인 삶과 관련된 의제에 대해서는 사회적 대화 기구들을 다각도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국회에서도 사회적 대화기구를 의장 직속으로 설치하려는 등 다양한 방안들이 모색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시민들이 문제 해결 능력이 없는 정치권을 압박할 수 있다. 사회적 합의 기구를 통해 정치 개혁의 결정권을 시민들이 가져와 주도하는 방식 등 다양한 압력수단이 작동한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현재는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수밖에 없다. 거대양당에 무엇인가를 기대하는 시기는 지난 것으로 보인다.

●이태호 참여연대 운영위원장(국정기획위 국민주권강화와 통합 TF팀장) “국민 관심 사안을 공론장으로” = 정치적 진영화, 정치적 부족주의가 알고리즘에 의해 굉장히 심화됐다. 살기가 너무 힘들어지고 미래가 불투명해지다보니 신뢰보다는 불신, 불안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 자산 양극화, 소득 양극화가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생겨난 구조적인 문제다. 구조적 원인이 있는 갈등을 부추기는 메커니즘이 존재한다. 갈등을 촉진하고 악순환을 재생산하는 정치적 메커니즘인 알고리즘으로부터 탈출할 공론장을 만들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구조적 문제의 해결책을 숙의할 수 있어야 지금과 같은 악순환의 고리에서 탈출할 공간을 만들 수 있다. 정치적으로 양극화가 됐기 때문에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다른 에너지를 만들어야 된다. 알고리즘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진영화된 꽉 막힌 공간들을 흔들 수 있는 가능성의 영역을 만들어야 된다.

공론화를 갈등 해결 장치라고 생각하면 반드시 도구화되기 쉽다. 단기적인 도구화가 되는 걸 막아야 된다. 공론화가 도구화되면 불신을 만들 수 있다.

정부와 연관된 의제의 경우엔 정부가 플랫폼을 만들더라도 공론화를 정부가 주도하면 안 된다. 또 광범위한 시민운동으로 전개되는 과정에서 공론화를 해야 일상적인 공론장이 생기고 그 공론장에서 논의되는 것들이 모이는 플랫폼이 생기는 거다. 아무 논의가 안 되고 있는데 공론화 플랫폼이 만들어지면 누가 공론화조사에 참여한 이들의 대표성을 인정하겠나.

공론조사만으로는 안 된다. 정치권과 상호 조화가 돼야 된다. 시민의회든 공론화든 결국 결과를 제도적으로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가 핵심이다. 현재 국회는 그 대표성을 공론화위원회에 위임할 생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권고적인 효력이 있든 없든 몇 가지 실험들을 쌓아가면서 시민들이 효능감을 느끼고 정치권에 공론화 방식에 권위를 부여하거나 존중하도록 압박을 만들어내는 상호작용이 필요하다.

●김상균 서울대 명예교수(국회연금특위 공론화위원장) “투표나 선거로 할 수 없는 것을 공론조사로 해야 성공” =

현재 정치 양극화 상황은 처음에는 욕설 등 말로 주고받다가 점차 에스컬레이션돼 툭툭 치기도 하다가 결국에는 치고받으며 피를 흘리는 모습이다. 평소에는 안 일어나는 극단적인 사례들이 등장하면 양극화는 더 심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게 탄핵이다. 두 번의 탄핵 이후 어느 쪽이든 그 다음엔 더 큰 것을 각오해야 한다. 이렇듯 정치 가 갈등의 진앙지가 됐다.

공론조사가 문제 해결 능력이 많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어떤 조건이 주어지면 상당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방법이다.

공론조사가 뭐든지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출발부터 잘못된 거다. 공론화가 정치가 해야 할 역할의 일부를 대신한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

공론화가 성공하려면 세 가지의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첫 번째는 대립되는 주제가 일반 시민이 보기에도 명확하게 구분이 돼야 된다. 선택지가 3개를 넘어가면 안 된다. 그리고 그 의제가 어느 중간 지점에서 합의가 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돼야 된다. 그래야만 시민 대표들이 모여서 쉽게 합의를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해당 의제를 두고 정치권에서 논의할 수 있을 만큼 최대한 해야 한다. 숙성이 돼야 한다. 이것은 세 번째 조건인 ‘국민들의 관심’과 관련이 있다. 국민들의 관심이 없는 의제는 공론화 해봐야 소용이 없다. 그들만의 공론화일 뿐이다. 국민을 대변하는 공론화가 될 수 없고 결국 그 공론화는 실패한다.

그래서 공론조사는 골치 아파서 떠넘기듯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상시화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정치권에서 해결할 수 없을 때 공론화 위원회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게 선거와 투표다. 선거나 투표를 할 수 없을 때 공론화를 하는 것이다. 선거나 투표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을 공론화하면 안 된다.

●김춘석 한국리서치 공론화센터장 “지자체에 적용할 매뉴얼 필요” = 매년 갈등 인식 조사를 해 보면 수치상으로 높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영역에서 갈등의 수준이 높아졌냐고 하면 좀 더 짚어봐야 할 부분이 있다. 최근 갈등양상의 진원지는 정치권이다. 이를 언론이 전달하다보니 체감적으로 예전보다 훨씬 갈등이 심해진 것으로 느껴진다. 정치적 갈등이나 이념 갈등은 상황적 갈등이고 이를 주도하는 게 정치권과 언론이다.

여기에서 역설이 나온다. 숙의 민주주의, 공론화가 국회의 정치 양극화를 해소하는 하나의 유력한 수단으로서 작동한다는 해외의 연구 결과가 있다. 미국의 민주당 지지자가 공론화를 거치면서 공화당 지지자들에 대한 반감이 줄어드는 수치가 확인됐다. 공론화가 양극화 해소의 해법은 아니더라도 정치권에서 논의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는 기능을 할 수도 있고 위기의식을 느끼게 할 수도 있다.

공론조사가 성공하기 위한 선결 조건은 정부 정책 담당자나 전문가들이 시민을 믿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전문가나 정부가 과도하게 관여하고 있다. 시민들을 불신하기 때문이다. 현장에 참여해 보면 시민들이 많은 고민 속에서 신중하게 판단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질문의 수준도 높다. 시민을 믿고 투명하게 공개하고 공정하게 진행하면 된다. 정부가 지원은 하되 관여는 하지 않는 방식이 필요하다. 예산 등은 국가가 지원하되 운영은 중립적이고 투명하게 시민단체나 제3의 전문가에 맡기는 구조가 가장 바람직하다.

제도화해 놓고 시스템적으로 공론화를 진행하지 않고 필요할 때마다 그때그때 공론화를 추진하다 보면 불신이 생기게 된다.

지자체에서 적용할 수 있는 매뉴얼도 필요하다. 시민의회의 결과가 제대로 정책에 반영되는지, 공론화 과정은 제대로 이뤄지는지 감시하는 모니터링 기능 역시 상당히 중요하다. 공론화가 대의민주주의를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대리인의 문제를 보완할 수 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박준규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