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강성민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

‘책이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책을 읽는다

2025-10-16 13:00:01 게재

24일부터 26일까지 ‘2025 파주페어 북앤컬처’ … ‘한 권 마켓’·‘가짜 책을 찾아라’ 즐기는 시간

파주 출판도시문화재단이 24일부터 26일까지 여는 ‘2025 파주페어 북앤컬처’(북앤컬처)는 책과 공연이 어우러진 복합문화축제다. 북앤컬처 내 도서 프로그램인 ‘북소리(Book Festival)’의 주제는 ‘책이 없는 세상(Bookless World)’이다. 책의 위기를 유쾌하게 전복하고 사라진 책 속에서 다시 책의 의미를 찾아보자는 의도를 담았다.

“저는 실무형 이사장입니다.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인쇄 감리도 보고 있습니다. 축제 주제를 정하는 데 한달을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득도하듯 ‘책이 없는 세상’이 떠올랐습니다.”

15일 파주출판도시 한 카페에서 만난 강성민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의 말이다. 강 이사장은 인문 출판사로 탄탄한 독자층을 확보한 출판사 글항아리의 공동대표다. 20년 가까이 이곳에서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그는 파주출판도시가 좀 더 창의적이고 생동감 있게 책과 함께하는 장소로 거듭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강성민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 사진 이의종

◆단 1권의 책을 선보이는 ‘한 권 마켓’ = 일반적으로 도서전은 각 출판사들이 여러 책을 선보이는 행사다. 그런데 올해 파주북소리의 핵심은 ‘한 권 마켓’이다. 출판사마다 단 1권의 책만을 선정해 부스를 꾸미고 그 1권을 위해 모든 정성을 쏟는다. 출판사들은 부스를 하나의 ‘포토존’으로 꾸미며 각자 선정한 1권의 책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한다.

신선한 기획에 출판사들은 호응했다. 모집 부스 100개에 238개 출판사가 몰렸을 정도다. 한 권 마켓의 또 다른 묘미는 ‘타사 책 추천’이다. 한 출판사가 다른 출판사의 책을 독자에게 추천하는 상생의 실험이다. 추천된 도서는 재단 건물 내 북소리사회적협동조합 서점의 특설 매대에서 판매된다.

강 이사장은 “출판사들이 단순히 책을 팔기보다 재미있게 출판하는 일에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면서 “편지 형식으로 다시 한 번 공지를 하며 ‘대충 꾸미면 안 된다, 이번엔 정말 총력전’이라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독자들이 기대해도 좋다는 의미다. 책의 부재를 주제로 한 전시도 눈길을 끈다. 파주출판도시에는 열린 도서관 ‘지혜의숲’이 있다. 높은 층고에 벽면마다 책이 꽂혀 있어 독자들이 책을 읽으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곳에서 ‘가짜 책을 찾아라’는 전시가 열린다. 책장이 가려진 서가를 배경으로 책에서 뽑은 문장들이 전시되는데 이중 12개의 문장들은 현역 작가들이 만들어낸 ‘존재하지 않는 책’의 문장들이다. 독자들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책의 문장을 찾는 놀이를 즐길 수 있다. 김연수 박상영 정이현 등 12명의 작가가 가상의 책과 그 안의 문장을 창작했다.

강 이사장은 “책이 없는 전시이기에 더 흥미롭다”면서 “책이 사라진 뒤에야 오히려 책의 존재를 더 절실히 느끼게 되는 실험”이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출판사의 책에 대한 사은품이 일반화된 가운데 저마다 내세우고 싶은 사은품을 전시하는 ‘굿즈주의보’, 지역서점과 독자가 서로의 책에 대한 사랑을 북돋아주는 ‘이 멋진 서점상, 이 멋진 독자상’ 등이 마련된다.

북앤컬처라는 이름답게 공연 프로그램도 다채롭다. 올해 북앤컬처 주제인 ‘책이 피어난다’(Books Alive!)는 책이 음악과 몸짓, 무대로 확장된다는 뜻을 담았다. 뮤지컬 갈라쇼를 비롯해 가족뮤지컬 ‘알사탕’, 김창완밴드가 책 이야기를 음악과 엮은 ‘김창완 전’이 열린다. 낭독공연과 젊은 공연예술가들의 무대도 이어진다.

◆도시를 예술의 장으로 확장 = 강 이사장은 도시 전체를 예술의 장으로 확장하는 실험을 이어간다. 류장복 작가와 함께 진행하는 ‘도시에 펼쳐진 개인전’은 파주출판도시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미술관으로 바꾸는 프로젝트다. 류 작가는 1년 동안 파주출판도시에 작업실을 두고 곳곳을 800점의 그림으로 탄생시킨다. 그는 아이패드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데 이 과정이 파주출판도시 곳곳에 설치된 스크린을 통해 실시간으로 생중계될 예정이다. 또한 임대되지 않아 비어 있는 공간엔 그림을 전시한다. 밤에도 불을 밝혀 불빛 속 그림이 유리창을 통해 드러나게 할 계획이다.

강 이사장은 “비어 있는 곳이지만 언젠가 새로운 주인을 맞이할 사이공간”이라면서 “이곳에서 일상적인 전시가 이어지면 파주출판도시의 이미지를 더 긍정적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책, 인간의 경험을 깊게 하는 도구” = 강 이사장은 출판도시문화재단의 향후 계획에 대해서도 밝혔다. 그 중 하나는 북클럽 운영이다. 출판도시문화재단이 직접 서점을 운영하고 이를 중심으로 다양한 책 읽는 활동이 펼쳐질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그는 “독자는 책을 통해 자신이 바뀐다는 경험을 해본 사람”이라면서 “보다 많은 사람이 그 경험을 해 독자가 될 수 있도록 북클럽을 통해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한 인공지능(AI) 시대에 대한 대응 중 하나로 출판도시문화재단 직원 및 파주출판도시 내 출판사 재직자를 대상으로 영상 제작과 인공지능 툴을 배우는 10회 강좌를 개설한다. 이 과정을 통해 외주업체에 맡기지 않고 직접 홍보 영상을 제작할 계획이다.

강 이사장은 “수강생의 1명으로 수업에 참여할 예정”이라면서 “수업을 들으며 동시에 홍보 영상을 제작할 수 있어 기대 중”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출판의 미래에 대해 “인공지능 시대의 변화는 거스를 수 없지만 그 속에서도 책은 여전히 인간의 경험을 깊게 하는 도구”라면서 “파주출판도시는 기술이 아니라 독서 경험을 기반으로 지역과 함께, 가장 좁은 방식으로 가장 멀리 책과 사람을 연결하는 공공영역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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