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공간이 거대한 ‘물 배터리’로 재탄생하나
중국, 양수발전 한계 극복 중
폐탄광이 에너지 기반시설로
기후대응 관련 정책을 대폭 축소하는 미국 트럼프 정부와 달리 중국이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엔 폐탄광을 대규모 양수발전으로 전환하는 방안에도 관심을 두는 분위기다. 이른바 ‘지하 양수발전’으로 양수발전의 하부 저수지를 지하화하는 기술이다. 광산 등 유휴 지하공간을 활용해 에너지 전환과 폐광 지역 재생이라는 두 가지 난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20일 국제학술지 ‘프론티어스 인 어스 사이언스(Frontiers in Earth Science)’의 논문 ‘폐기된 노천 탄광의 양수발전: 다양한 수위 조건에서의 사면 안정성 분석(Pump-ed storage hydropower in an abandoned open-pit coal mine: Slope stability analysis under different water levels)’에 따르면, 폐탄광을 활용해 양수발전이 가능하다. 이 논문은 중국 푸순 서부 노천 탄광을 양수발전소로 전환하는 기술적 타당성을 검증하는 게 주요 골자다.
푸순 서부 노천광산은 동서 6.6km, 남북 2.2km로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지난 100년간 석탄 1억9000만톤과 오일셰일(유기물질 케로젠이 포함된 퇴적암) 4억8000만톤을 채굴해 최대 깊이 420m의 거대한 구덩이가 형성됐다. 연구진은 드론과 5렌즈 카메라를 활용한 3차원 측량 결과, 이 공간이 최대 저장용량 10억1900만㎥을 확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진은 3단계 건설 계획을 제시했다. 1단계에서는 인근 난화위안 호수를 상부 저수지로 활용해 40MW, 2단계에서는 세 개의 폐석더미를 전환해 3200MW, 3단계에서는 인근 푸순 동부 노천광산까지 활용해 2000MW 규모로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양수발전은 전력 수요가 적은 시간에 여유 전력으로 물을 상부 저수지로 퍼올렸다가 전력이 필요한 시간에 방류해 발전하는 방식이다. 잉여 신재생에너지로 구동되는 펌프는 물을 상부 저수지로 이송할 수 있다. 물은 위치에너지 형태로 저장되며, 하부 저수지로 방류함으로써 전기에너지로 다시 변환될 수 있다. 이 경우 두 저수지의 가용 용량과 높이 차이가 양수발전소의 설치 용량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다. 전세계 에너지 저장 설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논문에서는 “양수발전의 주요 단점은 지리적 고도와 수자원 가용성이 모두 필요한 특수한 부지 조건”이라며 “적합한 부지는 구릉지나 산악지역에 위치할 가능성이 높지만 자연경관이 우수한 지역일 수 있어 사회적 합의나 환경 문제에 취약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폐광산, 특히 노천탄광은 양수발전을 위한 풍부한 공간과 수자원을 제공할 수 있으며 환경적, 사회적 영향이 더 적다”며 “폐광산의 재활용은 채굴 활동 중단 뒤 지역 사회에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중국은 2014~2018년 탄광 6571개를 폐쇄했다. 2030년에는 1만5000개에 달할 전망이다. 중국의 폐탄광 분포 지역은 주요 풍력·태양광 발전 단지와 지리적으로 겹친다. 재생에너지 저장을 위한 최적의 입지 조건을 갖췄다는 평이다. 풍력과 태양광의 간헐성 문제를 해결하면서 자원고갈 도시의 경제 재생까지 도모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핵심 과제는 사면 안정성 확보다. 연구진은 지반공학 해석 프로그램인 ‘GeoStudio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295m △-200m △-150m 등 3가지 수위 시나리오에 대한 수치해석을 실시했다. 분석 결과, 수위가 높아질수록 하부 사면에는 추가적인 정수압이 작용해 안전계수가 향상됐다. 하지만 상부 사면에서는 유효응력이 감소해 안정성이 악화했다. 특히 안전계수가 1.20 미만인 구간에서는 산사태 위험이 있어 추가적인 방수 및 보강 작업이 필요했다. 시추조사 결과, 암반 품질지수(RMR)가 대부분 △매우 불량(20 미만) △불량(20~41) △보통(40~61) 수준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3단계 방수 방안을 제시했다. 먼저 광산 바닥과 사면을 평탄하게 정리한 뒤 균질한 점토층을 깔고 고강도 차수막으로 덮는다. 마지막으로 절리(암석에 생긴 불연속면)가 발달하거나 풍화가 심한 암반 구간에는 콘크리트로 보강하는 방식이다.
연구진은 “폐광 활용 양수발전소 성공은 방수 설계와 사면 안정성 확보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