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기취소, 출연 유효하면 점유·사용 부당이득 아냐”
1·2심 “출연행위 존속, 권리 인정”
대법 “등기행위 부인만으론 부족”
채무자에 대한 파산이 선고된 이후 파산관재인이 부동산등기 행위에 관한 부인권을 행사했더라도, 앞서 이뤄진 출연행위가 부인되지 않은 이상 해당 부동산의 점유·사용을 부당이득으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지난달 11일 A협동단지의 파산관재인 B씨가 C재단법인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A협동단지는 서울시로부터 DMC(디지털미디어시티) 부지를 매수한 뒤 건물을 신축했다. 이후 2008년 8월 해당 건물 8층과 현금 등을 C재단에 출연하기로 하는 출연증서를 작성하고, 이듬해인 2009년 11월 소유권이전 등기를 마쳤다.
사건은 A협동단지가 2010년 10월 파산을 선고받으면서 발생했다. 2012년 D회사 등이 제기한 출연행위에 대한 사해행위 취소소송을 통해 2018년 7월 C재단 명의의 등기를 부인하는 내용의 등기가 마쳐졌다. 이에 A협동단지 파산관재인 B씨는 “등기행위가 부인됨에 따라 출연행위도 소멸했다”며 “C재단은 2009년 11월부터 2018년 7월까지 정당한 권원 없이 부동산을 점유·사용했다”고 주장하며 약 8년 8개월간 부동산을 점유·사용하며 얻은 임대료 등 약 70억원의 이익은 법률상 원인 없는 부당이득이라며 반환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쟁점은 원인 행위인 출연행위는 부인되지 않고 등기행위만 부인된 경우, C재단이 부동산 점유 및 사용에 대해 부당이득반환 책임을 지는지 여부였다. 1·2심은 모두 피고의 손을 들어줬다. 하급심은 “관련 소송에서 부인된 것은 ‘소유권 이전 등기’라는 등기 행위일 뿐, 그 원인이 된 ‘출연 행위’는 부인되지 않아 유효하게 존속한다”며 “토지 매수인이 매매 계약의 이행으로 토지를 인도받은 때에는 계약의 효력으로서 이를 점유·사용할 권리가 있듯, 피고 역시 유효한 출연 행위에 근거해 부동산을 점유·사용한 것이므로 법률상 원인이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원심이 부인권 제도의 취지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채무자회생법에 따라 권리변동의 성립 요건 행위(등기)를 부인하더라도 그 권리변동의 원인이 되는 행위(출연)의 효력까지 소멸하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인 행위인 출연 행위가 부인되지 않은 이상 피고는 그에 따른 소유권 이전 등기 절차 이행을 구할 권리가 있고, 출연 행위의 이행으로 부동산을 인도받았던 피고는 여전히 이를 점유·사용할 권리가 있다”고 밝혔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