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헌재, ‘재판소원’ 도입 온도차

2025-10-22 13:00:01 게재

민주당, 재판소원제 도입 법률안 발의해 공론화

헌재 “법원의 재판도 헌법소원 대상에 포함해야”

대법원 “재판지연 심화…헌법 101조 위반 우려”

여당이 사법개혁 방안의 하나로 법원 재판을 헌법소원 심판 대상으로 삼는 ‘재판소원’ 도입 법률안을 발의해 공론화하면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의견 충돌이 예상된다. 대법원은 위헌 소지가 있는데다 재판지연 심화가 예상된다며 재판소원 도입을 반대하는 반면, 헌재는 재판도 헌법의 구속을 받아야 한다며 찬성하고 있다. 법조계에서 오랫동안 뜨거운 논쟁거리였던 재판소원 제도가 도입될지 주목된다.

22일 국회와 법조계에 따르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0일 대법관 증원 등 사법개혁 방안을 발표하면서 사실상 ‘4심제’로 불리는 재판소원 제도 도입방안을 제외했다.

그런데 같은 날 김기표 의원이 대표발의한 재판소원 도입 법안(헌법재판소법 개정안)에 정청래 민주당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 인사들이 공동 발의자로 참여했다. 재판소원 제도 도입이 아직 당론으로 확정되지 않았지만 지도부가 직접 법안에 이름을 올려 사법개혁의 또 하나의 뜨거운 쟁점으로 부상했다.

헌법재판소법 68조1항은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하여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는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정한다. 법원의 재판은 헌법소원 심판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민주당이 도입을 추진하는 재판소원 제도의 주된 논거는 ‘법원의 재판’ 역시 공권력의 일종이므로 헌법과 법률에 위반되는 경우 헌법소원 심판 대상이 돼야 한다는 점이다.

민주당 김기표 의원이 대표발의한 헌재법 개정안은 확정된 재판이 헌재 결정에 반하는 취지로 재판된 경우,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경우, 기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해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 명백한 경우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김 의원은 “사법부 내에서 재판으로 인해 국민이 기본권 침해가 발생한 경우 이를 영원히 치유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재판소원 제도 도입에 찬성하고 있다.

헌재는 지난 5월 민주당이 재판소원 제도 도입을 위해 추진하던 헌재법 개정안에 대해 찬성하는 취지의 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당시 헌재는 의견서에서 “현행 헌재법 68조 1항은 ‘법원의 재판’은 헌법소원의 대상에서 일률적으로 제외해 실질적 권리 구제에 중대한 한계를 초래하고 있다”며 “대법원의 판결로 귀결됐다는 이유만으로 헌법적 판단이 봉쇄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했다.

김상환 헌법재판소장은 지난 17일 오후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국회 법사위 국감 마무리 발언에서 ‘재판소원 제도’ 도입에 대해 “기본권 보호의 측면에서 더 이상적”이라며 직접 입장을 밝혔다.

김 소장은 이날 “법원 재판을 헌법소원 대상에서 제외한 법률 규정이 헌법에 부합하는지에 대해서는 오랜 기간 논쟁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헌재는 이미 ‘모든 국가권력이 헌법의 구속을 받듯 사법부도 헌법의 구속을 받아야 한다’면서도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 심판의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견해는 기본권 보호의 측면에서 더 이상적이지만, 이는 입법자가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밝혔다”고 말했다. 이어 김 소장은 “헌재는 지금까지 동일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고, 이 문제는 결국 주권자인 국민 그리고 국회의 평가와 의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대법원을 중심으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우선, 대법원 확정판결에 대한 재판소원을 허용하면 사실상 4심제를 도입하는 셈이어서 불필요한 법적 분쟁과 혼란을 초래하며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기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전반적인 ‘재판 지연’ 현상이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지난 7월 국회 법사위에 출석해 “근본적인 문제는 재판의 신속한 확정과 권리 구제에서 치명적인 문제가 생긴다는 점”이라며 “결국은 잠재적으로 모든 사건이 재판소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고, 무한정으로 재판 확정이 늦어진다”고 지적했다.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이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해 위헌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헌재가 지금 인력으로 재판소원까지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논란도 있다. 헌법에 9명으로 돼 있는 재판관을 늘리지 않고 재판소원까지 받으면 기능 마비가 올 것이라는 우려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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