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유도서관

머물고 싶은 곳으로 변화…12~16세 전용공간 ‘사이로’ 인기

2025-10-23 13:00:02 게재

사서들이 직접 공간 구성·자유로운 대화 속에서 올해의 키워드 정해 … 도서관 지원이 사서들의 경험 축적과 변화 이끌다

올해 대통령상을 수상한 서울 영등포구 선유도서관은 외관만 보면 다소 딱딱하고 조용히 책만 읽어야 하는 전통적 도서관처럼 보인다. 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밝고 환하면서도 감각적인 공간이 이용자를 환대한다. 2024년 리모델링을 거쳐 ‘머물고 싶은 도서관’으로 다시 태어난 선유도서관은 ‘동사(動詞)로 만나는 도서관’이라는 철학 아래 이용자들에게 읽고 쓰고 생각하고 쉬는 등 다양한 활동을 제안한다. 23일 선유도서관을 방문했다.

선유도서관은 2021년부터 도서관 공간을 혁신하기 위해 공을 들였다. 2020년 코로나19 상황 이후 이용자들이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하지 못하면서 코로나19 상황 이전 수준으로 이용자가 방문하기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았다. 또한 시험 기간에도 청소년들의 발길이 도서관이 아닌 스터디카페로 향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선유도서관이 ‘머물고 싶은 도서관’이 되고자 노력하게 된 계기다.

선유도서관은 이후 ‘탐색-계획-실행-조성과 운영-확산’의 과정을 거쳐 이용자들이 다시 찾아와 머무는 도서관으로 변화하는 데 성공했다.

선유도서관 ‘사이로’ 공간.

◆공간이 변화하니 이용자들 머물러 = 선유도서관은 중규모 도서관이기에 작은 공간을 밀도 있게 활용하는 데 집중했다. 사서들은 건축가와 협업해 아이디어를 내며 공간을 기획하고 공간을 구성했다. 가구와 벽의 색상까지 고민이 이어졌다.

그 결과, 낭비되는 공간 없이 이용자들이 도서관 구석구석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우선, 5층 1.5갤러리의 원화 전시와 연계해 1층 중앙 큐레이션존에 전시도서를 소개하고 연관해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이용자들이 5층까지 둘러볼 수 있도록 공간의 동선을 기획한 것이다. 또한 건물 구조상 남는 공간을 활용하려는 고민 끝에 유아실 옆에 작은 다락방 공간을 만들고 하늘의 별을 떠올릴 수 있는 조명을 달았다. 이곳은 영유아와 부모들이 가장 즐기는 공간 중 하나가 됐다.

이용자들을 환대하는 선유도서관 1층 공간.

김상명 선유도서관 관장은 “꽉꽉 눌러 담았다”고 표현했다. 그는 “건물이 크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세심하게 공간을 만들어 갈 수 있었다”면서 “예전엔 책만 빌리고 1시간도 머물지 않고 떠나는 이용자가 많았는데 지금은 도서관에 머물고 몰입하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말했다.

트윈세대(12~16세) 전용공간 ‘사이로’는 선유도서관 변화의 상징이다. 이곳은 청소년들이 공부나 책 읽기를 강요받지 않고 자기 속도로 머무는 공간이다. 청소년들은 다양한 재료와 장비가 갖춰진 이곳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작품을 만들고, 또래 친구들과 함께 다양한 경험을 한다. 또한 상상하는 것들을 그리고 만들어보며 음악을 작곡한다. 이야기를 만들며 작가가 되고 오븐을 이용해 빵을 굽기도 한다. 청소년들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선유도서관은 담당 사서 3명과 야간운영 지원 사서 2명을 배치했다.

청소년들이 작가로서 창작한 작품들은 소셜미디어 ‘사이로’ 계정을 통해 다른 청소년 및 일반인들과 공유된다. 1층에 위치한 창의과학공간인 ‘어랏(a lot)’에서도 청소년들이 직접 촬영한 사진을 전시한다. 청소년 작가들의 사진전은 동네 카페에서 순회전이 열렸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

김 관장은 “예전엔 청소년 프로그램을 개설해도 청소년들이 찾아오지 않아 운영하기 어려웠다”면서 “이 공간을 계기로 선유도서관은 특화 주제를 ‘청소년’으로 정하고 관련 활동을 강화했다”고 말했다.

사이로 마스코트 ‘샤이’와 함께한 김상명 선유도서관 관장. 사이로 마스코트 ‘샤이’는 청소년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한 공모전에서 당선됐다.

◆청소년들이 또래에게 자신의 세계 공유 = 선유도서관의 변화는 공간에만 있지 않다. 이용자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함께 자리를 잡았다. 우선, ‘사이로’에서는 이곳을 열심히 이용하는 청소년이 또래에게 만들기 등 다양한 주제로 자신의 세계를 공유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같은 청소년 이용자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이기에 청소년들의 참여가 많은 편이다.

발달장애 학생들과 함께하는 ‘특수학급 연계 프로그램’은 2011년부터 이어지는 선유도서관의 대표 사업이다. 인근 선유고등학교와 연계해 학생들이 도서관을 방문하거나 사서가 학생들을 만나 사진 촬영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한다.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프로그램도 있다. 선유도서관은 해마다 올해의 키워드를 정해 인문학 강연을 꾸린다. 올해의 키워드는 사서들의 자유로운 대화에서 탄생한다. 지난해 주제는 ‘도파민’에서 파생한 ‘중독’, 올해는 ‘세상과 나’ ‘세상을 읽는 법’이다. 또한 과학잡지 ‘에피’와 인문잡지 ‘한편’ 등과 협업해 집필진을 초청해 강연을 여는 등 출판사와 협력이 활발하다.

김 관장은 “사서들의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주제가 나온다”면서 “젊은 직원들의 관심사가 곧 이용자들의 관심사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료를 갖추는 다양한 기준 = 선유도서관은 이용자의 희망도서 신청을 받고 있지만 모든 희망도서를 구입하지는 않는다. 필사형 도서 등 공용으로 이용하기 어려운 책은 선정에서 제외하는 등 한정된 예산 안에서 공공도서관에 걸맞은 기준을 세워 도서를 구입한다. 그리고 다수의 이용자가 찾는 낡은 양서를 교체하거나 필요한 자료를 확보하는 데 예산을 집중한다.

머물기 좋은 선유도서관 공간.

또한 영등포구립도서관 통합 시스템을 통해 회원이라면 누구나 모바일로 전자책과 전자잡지를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전자자료와 중복이 되는 종이잡지는 점차 줄이고 있다.

김 관장은 “종이책의 감성도 소중하지만 전자매체와의 조화가 필요하다”며 “오프라인에서는 도서 큐레이션과 공간 경험을, 온라인에서는 접근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균형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선유도서관이 이용자들을 만족시키는 도서관으로 거듭난 데에는 사서들의 역량이 한몫을 했다. 사서들은 도서관 외에도 미술관 아트페어 기획전시 독립서점 상업공간을 직접 방문해 감각과 기획력을 체득하고 있다. 선유도서관은 이같은 방식이 도서관 운영에 의미가 있다고 판단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이러한 실험은 사서 교육의 새로운 형태가 됐다. 사서들은 도서관 내부에서 함께 다양한 공간의 사진을 공유하고, 다음 방문지를 정하는 등 함께 학습을 해 나갔다. 일부 사서들은 영등포문화재단의 국외연수 지원을 통해 해외 도서관 견학 기회도 얻었다.

김 관장은 “교육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보다는 경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싶다”면서 “앉아서 듣는 교육보다 직접 보고 느끼는 게 훨씬 큰 배움”이라고 말했다. 이어 “직원들이 전시회나 독립서점 미술관을 다녀오면 자연스럽게 도서관의 변화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내일신문·한국도서관협회 공동기획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사진 이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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