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송환 피의자들 ‘조직적 거짓말’

2025-10-23 13:00:01 게재

범죄조직 지시따라 ‘가구공장 아르바이트’ 주장 … 대학생 살해 주범은 ‘대치동 마약 사건’ 공범

캄보디아에서 송환된 피의자 일부가 범죄조직의 지시에 따라 현지서 외교부 직원과 경찰에게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조직적으로 거짓말을 한 정황이 포착됐다. 또 캄보디아 범죄단지에서 고문을 당한 후 살해된 20대 한국인 대학생 박 모씨 사건의 주범이 이른바 ‘대치동 학원가 마약 사건’ 총책의 공범으로 확인됐다.

경찰 등에 따르면 충남경찰청이 수사 중인 피의자들이 몸담았던 범죄조직 관리자 A씨는 조직원 일부가 캄보디아 현지에서 검거돼 구금되자 이들에게 혐의를 부인하고 캄보디아 입국 경위를 거짓으로 진술하라고 종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지 대사관서 인적 사항까지 속여 = A씨는 구금된 조직원 전원에게 “가구 공장에서 일하려다 잡혔다고 말하라. 혐의를 끝까지 부인하라. 캄보디아 경찰에게 돈을 주고 작업할 테니 모두 풀려나면 시아누크빌에 있는 사무실로 가 같이 이동해 계속 일할 수 있다” 등의 지령을 전달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실제 송환 피의자들은 현지 이민청에 구금된 뒤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 영사, 한국 경찰과의 면담에서 “가구 공장에 아르바이트하러 왔다”며 입국 경위를 거짓 진술하고 혐의를 부인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중 10여명은 영사에게 인적 사항까지 허위로 진술했다 들통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번 송환에 앞서 검거된 공범의 진술 등을 토대로 이들이 조직 관리자의 지시에 따랐던 것으로 보고 있다.

캄보디아 현지 경찰에 미화 500달러를 주고 휴대전화를 초기화할 것과 송환 시 휴대전화를 캄보디아 유치장에 버린 후 경찰에 ‘현지 경찰에 휴대전화를 빼앗겼다’고 허위 진술하도록 지시한 정황도 포착됐다.

경찰은 이런 정황을 토대로 피의자들이 석방되면 해외에 있는 총책과 관리자들의 도움을 받아 달아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강조했다. 조직 실장이 한국에 입국한 뒤 조사를 받고 곧바로 해외로 도주한 전례도 있다.

이들이 몸담았던 범죄조직은 총 200명 규모로 중국인 1명, 한국인 2명이 총책을 맡아 조직을 이끌었다. 한국인 조직원은 약 90명, 나머지는 중국인 등 외국인 약 100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데이터베이스(DB) 및 입출금을 관리하는 CS팀·로맨스스캠팀·검찰 사칭 전기통신금융사기팀·코인투자리딩 사기팀·공무원 사칭 납품 사기팀 등으로 나눠 범행에 가담했다.

이들 일당이 지난해 4월부터 벌어들인 범죄수익금은 확인된 것만 93억5000여만원에 달한다. 피해자는 110명이다.

지난 18일 송환된 이들은 20일 모두 구속됐으나 총책과 일부 관리자들은 아직 검거되지 않았다. 경찰은 캄보디아 범죄 조직이 국내 조직폭력배와 결탁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을 포착하고 관련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국정원, 대학생 살해범 추적 전담반 파견 = 또한 캄보디아 범죄단지에서 고문 후 살해된 20대 대학생 박 모씨 사건의 주범이 2023년 발생한 ‘대치동 학원가 마약 사건’ 총책의 공범으로 확인됐다.

국가정보원은 22일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런 내용을 보고했다고 더불어민주당 박선원, 국민의힘 이성권 의원이 기자 브리핑을 통해 밝혔다. 국정원은 사망 사건 발생 3일째 정보를 최초 입수하고 정보 역량을 총동원해 8일 만에 피살 사건 주범을 확정지었으며, 현재 그를 추적 중이라고 보고했다.

국정원은 이 사건 주범이 ‘2023년 강남 학원가 마약 사건의 총책’으로 캄보디아에서 검거된 리 모씨의 공범이라는 점이 국정원의 정보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강남 학원가 마약 사건은 중국인과 국내 공범 등이 필로폰과 우유를 섞은 이른바 마약음료를 만든 뒤 2023년 4월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집중력 강화 음료’라며 시음 행사를 열어 미성년자 13명에게 음료를 제공한 뒤 돈을 뜯어내려 한 사건이다.

국정원은 “주범 행적 및 연계 인물을 캄보디아에 지원하고 체포를 위해 추적 전담반을 파견하는 등 캄보디아와 공조를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정원은 또한 캄보디아를 거점으로 한 범죄에 한국인 약 1000~2000명이 가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캄보디아 경찰청이 지난 6~7월 검거한 전체 스캠 범죄 피의자 3075명 중 한국인은 57명으로 집계됐다고 국정원은 전했다.

◆범죄 조직에 지인 넘긴 일당에 중형 = 한편 사기 범행 제안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지인을 캄보디아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에 넘겨 20일 넘게 감금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일당이 1심에서 중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9부(엄기표 부장판사)는 국외이송유인, 피유인자국외이송, 폭력행위처벌법 위반(공동감금) 등 혐의로 구속기소 된 주범 신 모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앞서 검찰은 신씨에게 징역 9년을 구형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구형량보다 많은 형량을 선고했다.

공범으로 기소된 박 모씨에게는 징역 5년, 김 모씨에게는 징역 3년 6개월이 선고됐다. 검찰은 박씨와 김씨에게는 각각 징역 7년과 5년을 구형한 바 있다.

이들은 지인인 B씨를 캄보디아 보이스피싱 조직에 넘겨 현지에서 감금하게 한 뒤 그의 계좌를 범행에 이용되게 하고, 가족에게 돈을 요구한 혐의를 받는다. 일당은 당초 B씨에게 사기 범행을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 이후 일당은 “캄보디아 관광사업을 추진 중인데, 계약서만 받아오면 채무를 없애주겠다”고 속여 B씨를 비행기에 탑승하게 한 뒤 현지 범죄조직원들에게 넘긴 것으로 조사됐다.

B씨는 20여일간 범죄단지 등에 감금돼 있다가 구출됐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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