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지방재정, 크기보다 쓰임새가 우선이다

2026-03-31 13:00:03 게재

행정안전부 지방재정통합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전국 지방자치단체 총예산 규모는 2013년 약 173조원에서 2024년 330조원 안팎으로 늘었다. 10여년 사이 사실상 두배 가까이 증가한 셈이다. 같은 기간 복지 분야 지출 비중은 25% 수준에서 35% 내외까지 확대됐다. 숫자만 보면 지방정부의 규모와 역할은 분명 커졌다.

하지만 시민의 체감은 다르다. 도로는 정비됐고 공원은 늘었지만 돌봄과 교육, 일자리와 같은 삶의 핵심 영역에서의 변화는 기대만큼 크지 않다. 재정확대와 삶의 질 사이에 ‘단절’이 존재하는 셈이다.

늘어난 예산, 줄어든 자율성

문제의 핵심은 재정의 크기가 아니라 구조다. 지방재정은 크게 자체재원과 이전재원으로 나뉜다. 국세를 기반으로 한 지방교부세와 국고보조금이 대표적이다. 2024년 기준 지방재정에서 이전재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45% 내외로 전체 예산의 절반에 육박한다. 특히 국고보조사업은 사용 용도가 중앙정부에 의해 엄격히 규정된다. 여기에 의무지출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기초연금 기초생활보장 아동수당 등 복지 지출은 법정 경비로 묶여 있어 지자체가 조정할 수 없다. 행정안전부 자료를 보면 상당수 기초지자체의 의무지출 비중은 전체 예산의 절반이 넘고 일부에선 60%에 육박한다.

국고보조금사업의 이른바 ‘매칭구조’도 지방재정을 옥죄는 요인이다. 대선 때마다 단골공약이자 누가봐도 국가사업인 영유아보육료의 경우 중앙정부 분담 비율이 45%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시와 구 예산으로 충당한다. 결국 구조는 명확하다. 예산은 늘었지만 지자체가 스스로 설계하고 집행할 수 있는 재정여력은 오히려 줄어드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

돈을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이 제한적인 이 구조는 재정운영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한정된 재량 속에서 지자체는 성과를 드러내기 쉬운 사업을 선택하게 된다. 도로 공원 시설투자처럼 가시성이 높은 사업이다. 반면 돌봄, 교육, 지역서비스 개선과 같은 분야는 상대적으로 후순위로 밀린다. 체감도는 높지만 성과를 수치로 증명하기 어렵고, 단기간에 효과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른바 ‘보이는 사업’ 중심의 재정이다.

시민의 삶은 소프트웨어인 ‘서비스’에서 바뀌는데, 재정은 여전히 건물 시설 같은 하드웨어에 머물러 있다. 재정확대에도 불구하고 시민 체감도가 낮은 이유다. 이 문제를 단순히 지자체장의 선택으로 돌리는 것도 정확한 분석은 아니다. 현재 재정구조에서는 누구라도 비슷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재정 규모가 아니라 구조를 바꿔야 한다. 첫째, 자치재정 비율을 높여야 한다. 현재 국세와 지방세 비율은 7대 3 수준이다. 이를 최소 6대 4 수준까지 조정해야 한다는 논의는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돼왔다. 지방세 확충 없이는 자치재정은 공허한 구호에 그친다.

둘째, 국고보조사업 구조를 재설계해야 한다. 세부항목까지 통제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포괄보조금(block grant) 형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중앙은 기준과 목표를 제시하고 실행은 지방에 맡기는 방식이다. 지금처럼 국가가 사업을 정하고 그에 따른 예산 부담은 광역과 기초 지방정부에 분담시키는 형태에선 정해진 사업 외에 새로운 행정 서비스를 발굴할 여력이 없다.

셋째, 성과 중심 재정으로 전환해야 한다. 단순 집행률이 아니라 정책효과를 평가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돈을 얼마나 썼는지가 아니라 무엇이 바뀌었는지를 묻는 구조다.

중앙과 지방, 역할을 다시 나눠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도 재정립이 필요하다. 중앙정부는 재정 권한을 나누는 데 더 과감해져야 한다. 동시에 전국 단위의 최소 서비스 기준을 설정하고, 지역 간 격차를 조정하는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 지방정부는 책임성을 강화해야 한다. 재정 자율성의 확대 만큼 성과에 대한 평가와 공개도 강화해야 한다. 주민이 체감할 수 있는 지표를 중심으로 재정운영 결과를 설명해야 한다.

지방재정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지역의 삶을 설계하는 도구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예산이 아니라 더 효과적이고 실효성 있게 작동하는 재정이다. 재정이 삶을 바꾸지 못한다면 그 구조를 바꿔야 한다.

마침 지역의 미래를 뒤흔들 행정통합이 곳곳에서 추진 중이다. 주민들이 지역의 미래를 결정할 가장 강력한 수단인 지방선거도 다가오고 있다. 중앙에서 돈을 얼마나 가져올건지가 아닌 재정을 어떻게 어디에 쓸 것인지를 묻자. 지금이 바로 출발점이다.

이제형 자치행정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