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식의 유럽 톺아보기
이란전쟁으로 더 멀어지는 미국과 유럽
지난달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전격적 이란 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이 5주차에 접어들었다. 전쟁은 이미 레바논을 비롯한 주변 국가로 확산해 전화(戰禍)의 그림자가 서아시아 전체에 드리운 상황이다. 게다가 세계 석유와 가스의 20%가 운송되는 호르무즈 해협의 차단으로 지구촌 경제의 숨통이 막혀버렸다.
전쟁의 당사자는 아니나 유럽은 서아시아 에너지에 의존적이며 미국의 군사동맹 세력으로 이번 전쟁에 긴밀하게 엮일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동아시아의 한국이나 일본과 매우 비슷한 상황이다.
유럽도 에너지·경제충격 본격화
우선 경제적인 충격은 즉각적이다. 유럽은 동아시아와 마찬가지로 석유와 가스를 거의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한다. 석유의 95%, 가스의 90%를 수입한. 한국 일본이 유럽보다 걸프만을 경유하는 수입 석유와 가스가 상대적으로 많지만 유럽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기존 석유·가스 수입선을 서아시아 방향으로 전환했기에 이번 전쟁의 충격은 심각하다.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수입 경로의 차단은 석유와 가스 가격의 폭등을 초래하고, 이는 다시 인플레이션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 유럽은 미국과 유사하게 코로나 시기 이후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경험했고, 이제 간신히 그 여파에서 벗어나는 중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전쟁이 단기에 끝나더라도 2026년 유로 지역의 인플레이션은 기존 예측의 1.9%를 넘어 2.6%까지 오르고, 성장률은 1.2%에서 0.9%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전쟁이 길어지면 물론 인플레는 더 심각하게 오르고 성장률은 더 떨어질 터다. 최근에 인플레이션을 경험한 유럽인들이 선제적으로 새로운 인플레를 대응한다면 임금과 물가상승의 악순환이 연이어 작동할 가능성도 있다.
기존에 유럽이 추진하는 적극적 환경정책도 에너지 가격의 상승으로 강한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소비자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탄소에너지 축소 정책을 뒤집으려는 시도가 벌써 눈에 띈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와 폴란드는 유럽 차원에서 시행하는 탄소세 부과를 중단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스페인이나 네덜란드는 오히려 탄소 에너지 가격의 상승이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의 이행을 촉진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란전쟁은 지정학적으로도 유럽에 심각한 충격을 안겼다. 미국은 이란처럼 큰 국가와 전쟁을 시작하면서 전통적 동맹 유럽과 한마디 상의도 없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일단 전쟁을 벌인 뒤 사후에 유럽의 적극적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유럽 주요 국가들은 이란전쟁은 “우리의 전쟁이 아니”라며 미국의 군사동원 요청을 일관되게 거절했다. 트럼프가 분노하면서 유럽 국가들을 동맹도 아니라는 식으로 비난하자, 그제야 유럽 국가들은 군사기지 사용을 부분적으로 허용하고 향후 전쟁이 종결되면 호르무즈 해협 안전화에 참여하겠다는 외교적 수사로 얼버무렸다.
지난 19일 정상회담 끝에 유럽연합은 이란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공식적 이유를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이란전쟁은 트럼프가 선택해 벌인 전쟁이지 상대의 공격에 대응하는 필연적 전쟁이 아니다. 따라서 선택에 동참하지 않은 유럽이 전쟁에 개입할 필요는 없다. 둘째, 전쟁 목표가 뚜렷하지 않다. 체제교체부터 군사능력 파괴, 핵무기 개발 저지 등 트럼프를 통해 흘러나오는 목표는 매번 변덕스럽게 바뀌곤 한다.
셋째, 미국의 이란 공격이 여전히 계속되면서 전쟁을 종결하겠다는 의지를 발견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호르무즈 해협을 다시 개방한다거나 걸프 지역 평화를 구축하겠다는 구체적 목표가 없다.
미국의 전쟁에서 멀리 해야 한다는 교훈
유럽이 이란전쟁에 특별한 거부감을 느끼는 이유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미치는 영향 때문이다. 유럽의 전쟁은 이란이 아니라 우크라이나에서 진행된다. 덧붙여 이란전쟁으로 원유와 가스가격이 폭등함으로써 가장 커다란 이득을 보는 세력은 러시아다. 당장 트럼프는 러시아 석유에 대한 제재를 풀기 시작했다. 장기전으로 경제적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던 러시아가 전쟁을 지속할 수 있는 경제적 선물을 안긴 셈이다.
또 미국이 이란전에 집중함으로써 우크라이나에 제공할 수 있는 무기와 자원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트럼프가 재집권한 다음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재정적 지원에서 발을 빼면서 경제적 부담은 온전히 유럽의 몫이 되었다. 유럽이 미국의 무기를 사서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는 형식이 되었는데 이제 이란전쟁으로 무기의 재고마저 동나버릴 위험에 처했다.
지정학적으로 유럽이 얻은 ‘성과’라면 아직은 커다란 분열없이 공동의 목소리를 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20여년 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할 당시 유럽은 둘로 쪼개졌다. 프랑스와 독일은 미국의 이라크 전쟁이 유엔의 승인조차 받지 못한 불법적 전쟁이라며 참여를 거부하는 한편, 영국 스페인 폴란드 등은 미국의 전쟁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덴마크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에 모두 동참했고 실제 인구 대비 전사자 수는 나토에서 미국 다음으로 높았다. 그만큼 커다란 희생을 치르면서 동맹의 의무를 다했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덴마크에 돌아온 트럼프의 ‘보답’은 유럽 국가들이 미국을 전혀 돕지 않는 배은망덕한 세력이라는 비난이었고, 덴마크령 그린란드를 무력으로라도 차지하겠다는 폭력적 압박이었다. 이제 미국이 벌이는 전쟁에서 일정한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는 역사적 교훈을 유럽은 얻은 듯하다.
유럽에 대한 트럼프의 무시와 압박은 진귀한 장면을 낳기도 했다. 트럼프의 백악관은 외국 국가원수들을 불러놓고 망신을 주는 무대가 되어 버렸는데 지난 17일은 아일랜드의 미할 마틴 총리 차례였다. 트럼프가 전쟁 동참을 거부한 영국의 키어 스타머 총리를 가리켜 “그는 처칠과 같은 위인이 아니”라고 비난하자 마틴 총리가 나서 이웃 영국의 스타머 총리를 변호했다. 오죽하면 아일랜드 총리가 역사적 한이 맺힌 영국 수뇌를 변호했겠는가. 크게 보면 미국과 유럽의 대서양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오히려 유럽 내부의 결속력은 강화되는 경향이다.
유럽 결속시키지만 사회갈등 가능성도
이란전쟁은 앞으로 유럽에 사회적 충격을 안길 위험도 크게 내포하고 있다.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유럽의 정보기관과 경찰은 미국이나 이스라엘, 유대인 관련 시설에 대한 테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초긴장 상태에 돌입했다. 유럽은 미국보다 서아시아나 북아프리카에서 진입이 쉽고, 자유사회인 만큼 활동도 수월하며, 무엇보다 이슬람계 인구가 많아 미국의 전쟁에서 파생하는 테러의 위기에 직접 노출된다.
이에 덧붙여 유럽은 10년 전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대량 난민사태로 고생한 바 있다. 당시 100만명이 넘는 난민이 유럽으로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유입된 경험이 있다. 현재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으로 이미 100만명의 이주민이 발생했으며, 이란에는 400만에 달하는 아프가니스탄 난민이 살고 있다. 이들 가운데 일부만 유럽으로 진입하려 하더라도 초유의 난민폭증 사태에 직면할 수 있는 셈이다.
즉각적인 경제적 충격과 지정학적 도전, 그리고 언제라도 현실화할 수 있는 사회적 위협은 유럽에 심각한 위기감을 불어넣고 있다. 이번 이란전쟁으로 미국과 유럽의 거리는 한층 더 멀어진 듯하다. 트럼프가 복귀한지 1년 남짓한 시간이지만 일방적 관세충격부터 유럽 문명이 소멸하고 있다는 이데올로기적 공세를 거쳐 그린란드 합병 야심까지 미국의 전방위 압박이 거세다.
트럼프의 등장으로 유럽과 동아시아의 동맹국들은 유사한 압력과 혼란에 노출되어 있으나, 유럽과 미국의 인종·문명적 유사성 때문인지 대서양 관계는 독특한 특징을 보이기도 한다.
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