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자산격차 해법, 퇴직연금의 기금화

2026-03-31 13:00:01 게재

최근 한 지인은 삼성전자(삼전) 주식에 푹 빠져 있다. 그는 삼전 주가가 9만 원대일 때부터 매수하기 시작해 27일 종가 기준 40% 가까운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 그는 전체 매입 규모를 밝히진 않았지만 평균 매입단가는 13만1000원 수준이라고 했다.

그는 중동전쟁에 상관없이 계속 삼전 주식을 보유할 예정이다. 그의 삼전 주식 사랑은 반도체 현물가격 추이를 알고 난 이후의 일이다. 다른 지인의 귀띔 덕분에 재정경제부가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일일 경제지표’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에 따르면 반도체 현물가격은 2024년 말 1.75달러에서 지난해 말 18.63달러로 폭등했다. 27일 현재는 27.38달러다.

순자산 지니계수 2012년 통계 집계 이래 최고치

대기업 임원 출신으로 서울 강남에 사는 그의 주식 투자 성공 사례는 지난해 말 발표된 2025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와 묘하게 오버랩됐다. 이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순자산 지니계수는 0.625로 2012년 통계 집계 이래 최고치였다. 지니계수가 1이면 완전 불평등으로 그만큼 빈부 격차가 커졌다는 뜻이다.

주식투자로 한쪽에선 축배를 들고 있는 동안 자산격차 심화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다. 당장 하루하루 먹고살기에도 벅찬 서민의 상대적 박탈감이 크기 때문이다. 그럼 서민의 자산형성을 도울 방법은 없는 것일까.

퇴직연금 의무화 및 기금화가 가장 현실적인 방안일 것이다. 퇴직연금은 기업 도산 등으로 퇴직금이 떼이는 사태를 방지하려고 도입한 제도다. 당연히 안정된 직장으로 꼽히는 대기업보다 중소, 영세기업부터 도입해야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2024년 기준 퇴직연금 도입 사업장은 전체의 26.5%인 반면 5인 미만 사업장의 도입률은 10.6%밖에 안 된다.

영세기업 노동자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서민으로 분류해도 될 것이다. 이들의 자산형성을 위해선 우선 이들이 퇴직연금 제도의 보호를 받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다만 이들의 퇴직연금 적립금은 지금처럼 운용하면 안된다. 2024년 기준 퇴직연금의 10년 장기 연평균 수익률이 2.07%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대안은 기금형이다. 이들의 적립금을 한데 모아 기금으로 만들어 운용하는 방식이다. 기금형은 자산운용 경험이 없는 서민을 대신해 전문가들이 운용하기 때문에 서민도 간접 투자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기금형을 도입한 호주 서민은 최근 10년 평균 퇴직연금 수익률(약 8%)의 혜택을 받고 있다.

노후생활의 최후 보루인 퇴직금을 잘못 운용해 손실이 나면 누가 책임지느냐고? 그러나 기금형의 운용 방식을 안다면 전혀 걱정할 일이 아니다. 기금형은 우선 국내 주식에 ‘올인’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이 나서서 국내외 주식이나 채권, 대체투자 등에 적절히 배분해 장기투자한다. 국민연금기금의 운용 방식을 생각하면 된다.

퇴직연금 기금형 통한 간접적 투자가 훨씬 현명한 방법

장기적으로 주식수익률은 기업의 이익 성장률(경제성장률과 비슷하다)과 배당 수익률의 합에 수렴한다. 투자할 여력도 없고, 투자정보에 접근하기 힘든 서민이나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한 청년이 장기적으로 경제 성장의 과실을 누리려면 자산의 일부라도 주식에 투자해야 한다. 다만 주식에 직접 투자하는 것보다는 퇴직연금 기금형을 통한 간접적인 투자가 훨씬 더 현명한 방법이다.

퇴직연금 의무화 및 기금형 도입 논의는 박근혜정부 때부터 계속돼 왔다. 분위기는 충분히 성숙돼 있다는 의미다. 22대 국회에도 퇴직연금 의무화와 기금형 도입을 내용으로 하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이 이미 제출된 상태다. 더 늦기 전에 양극화 해소를 위한 첫걸음을 내디뎌야 하지 않을까.

윤영호 법무법인 화우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