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에너지안보 위협 ‘페이퍼 초크포인트’ <비물리적 금융 보험 병목 지점>

2026-03-31 13:00:14 게재

영국 기후에너지 싱크탱크 ‘E3G’ 보고서 … “공급 다변화만으로는 구조적 취약성 해소 못해”

호르무즈 해협이 실제로 막히지 않아도 에너지 위기는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전쟁 위험이 고조되면 해상 보험사들이 해당 해역 운항 보장을 거부하고, 보험 없는 배는 항구를 떠날 수 없어 해협은 열려 있어도 시장은 막혀버린다. 이처럼 해상 보험 철수와 운임 프리미엄 상승만으로 가격 급등과 수급 경색을 일으키는 ‘페이퍼 초크포인트(paper chokepoints)’가 화석연료 수입국의 새로운 에너지안보 위협으로 부상 중이다.

영국 기후에너지 싱크탱크인 E3G는 31일 ‘페이퍼 초크포인트(paper chokepoints)’가 화석연료 수입국의 새로운 에너지안보 위협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사진은 11일 호르무즈 해협 인근 걸프만을 항해하는 화물선들. 로이터=연합뉴스

영국 기후·에너지 싱크탱크 E3G는 31일 이러한 내용을 담은 보고서 ‘공급 확보를 넘어: 석유·가스 수입국의 해상 운송 전략 병목지점 리스크’를 공개했다. E3G는 대한민국 유럽연합 중국 일본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싱가포르 태국 등 9개 주요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수입국을 대상으로 호르무즈·말라카 해협 등 핵심 항로 교란에 대한 노출도와 회복탄력성을 분석했다.

보고서에서는 물리적 봉쇄보다 페이퍼 초크포인트 파급력을 강조했다. 석유와 LNG 시장이 전세계적으로 연결된 만큼 보험 철수와 운임 프리미엄이 한 해역에서 발생하면 그 충격은 가격 변동성 확대와 물량 확보 경쟁으로 빠르게 전이된다. 실제로 막힌 곳이 없어도 시장 전체가 얼어붙는 구조다.

대한민국 노출도도 심각하다. E3G 추정에 따르면 대한민국 원유 수입량의 약 72%가 호르무즈 해협을, 약 73%가 말라카 해협을 통과한다. LNG도 약 20%가 호르무즈, 약 34%가 말라카를 경유한다. 대한민국의 회복탄력성은 ‘높음’으로 평가됐지만 LNG 의존도가 높아 글로벌 시장 경색 시 ‘급성 공급 취약성’이 부각될 수 있다고 보고서는 경고했다.

보고서는 또 공급 확대만으로는 이 위험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소수의 핵심 항로 의존이 남아 있는 한, 시장 공급량과 무관하게 충격은 구조적으로 반복된다는 것이다.

리처드 스미스 E3G 선임 정책자문은 “재생에너지라고 리스크가 없는 건 아니며, 지금 이 순간에도 호르무즈에 태양광 패널이 묶여 있다”면서도 “하지만 태양광 패널 1장이 통과하면 한 세대 동안 매일 안정적인 에너지가 공급된다”고 했다. 그는 “재생에너지와 에너지효율이 이 위기의 고리를 벗어날 유일한 현실적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마두라 조시 E3G 글로벌 청정전력 외교 프로그램 책임자는 “아시아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와 LNG 물량의 많은 부분을 수령하며 혼란이 장기화될 경우 그 충격은 국가별로 불균등하게 나타날 것”이라며 “대한민국처럼 LNG 의존도가 높은 경제권은 장기간 시장 경색을 흡수할 여지가 제한적이어서 공급 취약성이 커질 수 있어서 전기화와 국내 청정에너지 확대를 가속하는 것이 가장 지속가능한 회복탄력성의 길”이라고 강조했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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