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80대 주민들 수채화로 생애 기록한다
양천구 ‘시간을 담은 캔버스’ 5회째 개최
“외로움·우울감 떨치고 삶에 대한 만족감”
“외로운 분들에게 추천해요. 정말 좋은 동무가 돼줄 거예요.” “삶의 활력소. 여유롭고 행복하게 살 힘, 자식들 위해 살아갈 힘이 생겼어요.” “노인이 아니라 어른처럼 살자 싶어요. 나를 위해 살겠어요.”
60년 이상 길게는 80년 이상 삶을 살아온 주민들이 새로운 전환기를 맞았다고 입을 모은다. 계기는 그림, 수채화다. 지난 생의 흔적과 감성을 수채화로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는 동시에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이웃에게 눈을 돌릴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24일 서울 양천구에 따르면 구는 지난 15일부터 사흘간 목동 오목공원에서 ‘시간을 담은 캔버스’ 전시회를 열었다. 올해로 5회째다. 저소득 취약계층 주민들 문화예술 지원 사업으로 시작했다. 지역과 세대 계층을 뛰어넘어 문화예술로 통합한다는 취지도 있다.
올해 전시회에는 목동 밝은내 서서울 양천 신정 5개 복지관이 함께했다. 복지관을 이용하는 주민 80여명이 도전장을 내밀었고 양천문화재단과 문화예술협동조합 ‘예술로’가 손을 보탰다.
지난 5월 참여자를 모집한 뒤 지난달까지 5개월에 걸쳐 작업을 진행했다. 유년기부터 시작해 청년기와 장·노년기까지 시기별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화폭에 담도록 했다. 향긋한 기쁨 ‘희(喜)’, 나를 위한 선물 ‘애(愛)’, 마음을 자세히 보다 ‘관(觀)’을 주제로 가족과 친구·여가, 남기고 싶은 나의 모습까지 그렸다.
그렇게 240여점 작품이 완성됐다. 여기에 영상 자서전을 더해 정기전시회에서 선보였다. 지난해까지 구청에서 전시회를 했는데 더 많은 주민들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넓고 개방된 오목공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마을 주민들이 준비한 문화공연과 문화체험, 어르신 바리스타가 운영하는 1일 카페 등 풍성한 부대행사도 곁들였다.
주민들은 지나온 삶을 예술로 재해석하는 과정 자체에 만족감을 표했다. 신정동 주민 조용일(68)씨는 “어렸을 적 가본 전북 고창, 우리 동네 바닷가를 그렸다”며 “파도는 살아온 동안 헤쳐온 고난, 모래톱은 쓸쓸한 지금, 푸릇한 지평선 너머 풍경은 젊은 청춘을 의미한다”고 작품 해설을 했다. 그는 “100%가 기준이라면 200% 만족스러운 과정이었다”며 “여러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16년째 파킨슨병과 싸우고 있는 박서연(61·신월동)씨는 그림 덕분에 집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는 “한적한 산 밑에 살고 싶었는데 그림으로 그 꿈을 이룬 것 같다”며 “집에서 잘 나오지 않았는데 그림을 그리며 우울감을 떨쳤다”고 전했다. 신월동 주민 신영숙(82)씨는 칠순 다음날부터 배워온 그림 솜씨를 뽐냈다. 그는 “자화상을 그리면서 생에 대한 만족감이 생겼다”며 “나를 찾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주민 화가들의 작품은 공원에 나들이 나온 이웃들에게도 따뜻한 울림을 주었다. 아이들에게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린 그림’을 설명하는가 하면 참여 방법을 묻는 주민도 줄을 이었다. 목동 주민 허원영(62)씨는 “평범한 주민들 작품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며 “따뜻한 그림을 보니 고향과 친구 생각이 난다”고 평했다.
양천구는 주민들 호응에 힘입어 연말쯤 다시 한번 작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이기재 양천구청장은 “깊어 가는 가을 정취 속에서 모두가 함께 어우러지는 문화예술과 복지의 장이 됐다”며 “어르신들 예술 활동을 적극 지원해 양천구만의 특화된 모형으로 자리매김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