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외압’ 이종섭 등 무더기 영장 기각
“혐의 다툼 여지” … 윤석열 수사 차질 예상
임성근 신병 확보했지만 수사동력 약화 우려
해병대 채상병 순직사건의 책임자로 지목된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구속됐다. 이명현 순직해병 특별검사팀이 지난 7월 수사를 개시한 후 피의자 신병을 확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등 채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 피의자들에 대한 구속영장은 모두 기각되면서 특검팀의 수사 동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이정재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전날 임 전 사단장에 대한 구속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뒤 이날 새벽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임 전 사단장과 함께 청구된 최진규 전 해병대 11포병대대장의 구속영장은 “현재까지의 수사진행 현황 등의 사정을 종합하면 현 단계에서 피의자를 구속해야 할 사유 내지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사유로 기각됐다.
앞서 특검팀은 지난 21일 임 전 사단장과 최 전 대대장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임 전 사단장에게는 군형법상 명령 위반 혐의도 적용됐다. 임 전 사단장은 2023년 7월 집중호우 실종자 수색 당시 구명조끼 등 안전장비를 지급하지 않고 무리한 수색작전을 지시해 채상병이 급류에 휩쓸려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당시 작전통제권이 육군으로 이관됐음에도 원소속 부대장으로서 구체적인 수색지시를 내리는 등 임의로 작전통제권을 행사한 혐의도 있다.
앞서 이 사건을 수사한 경북경찰청은 지난해 7월 임 전 사단장에게 혐의가 없다고 결론을 내고 불송치 결정한 바 있다. 하지만 특검팀이 다시 수사해 청구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발부됨에 따라 임 전 사단장은 조만간 재판에 넘겨질 것으로 보인다.
임 전 사단장은 채상병 순직 이후 불거진 수사외압 의혹의 핵심 인물이기도 하다. 수사외압 의혹은 채상병 순직사건과 관련해 해병대 수사단이 임 전 사령관을 혐의자로 적시해 경찰에 이첩하려 하자 대통령실과 국방부가 조직적으로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이다.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 결과를 보고받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격노’했고 이에 따라 해병대 수사단의 사건 이첩이 보류·회수됐다는 것. 또 박정훈 당시 해병대 수사단장이 보직해임돼 항명죄로 기소되고, 사건이 국방부 조사본부로 이관돼 임 전 사단장이 혐의자에서 제외되는 등 축소되는 일련의 과정에 대통령실과 국방부의 외압이 있었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수사외압 의혹을 수사한 특검팀은 지난 20일 이 전 장관과 유재은 전 국방부 법무관리관,김동혁 전 국방부 검찰단장, 박진희 전 국방부 군사보좌관, 김계환 전 해병대 사령관 등 5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특검팀은 이 전 장관이 수사외압의 모든 단계에 최종 결정권자로 지시 혹은 관여했다고 보고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 6개 혐의를 적용했다. 유 전 관리관 등에게는 수사외압 단계별로 관여한 혐의가 적용됐다.
하지만 정재욱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기본적인 사실관계는 어느 정도 소명되나 주요 혐의와 관련해 법리적인 면에서 다툴 여지가 있고 재판 과정에서 충분한 공방과 심리를 거쳐 책임 유무나 정도를 결정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며 5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모두 기각했다. 정 부장판사는 또 “장기간에 걸쳐 진행된 광범위한 수사를 통해 이미 상당한 증거가 수집된 점, 수사진행경과, 수사 및 심문절차에서의 출석상황과 진술태도, 가족 및 사회적 유대관계 등의 사정에다 방어권 보장의 필요성, 불구속 수사의 원칙까지 더해 고려하면 구속의 필요성과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사실상 혐의 소명과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 등 모든 구속사유를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읽힌다.
특검팀이 임 전 사단장 신병확보에는 성공했지만 수사외압 의혹 피의자들의 구속영장이 모두 기각되면서 남은 수사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검팀은 이 전 장관 등을 구속한 후 의혹의 최고 정점인 윤 전 대통령 수사를 본격화할 계획이었으나 일정 부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특검팀은 우선 법원의 영장 기각 사유를 분석해 이 전 장관 등에 대한 구속영장 재청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법원이 기본적인 사실관계는 어느 정도 소명됐다고 판단한 만큼 혐의 입증 보강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