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심·압류 채권도 채무자가 제3채무자에 소송 가능”

2025-10-24 13:00:03 게재

대법원 전원합의체, 25년만에 판례 변경

“채권 이행소송 제기는 채무자의 권리”

압류·추심명령에 따라 세무서 등으로부터 압류된 채권에 대해서도 채무자가 제3채무자(채무자에게 채무가 있는 제3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추심명령이나 압류가 있으면 채무자는 해당 채권에 관한 이행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할 당사자로서 적법한 자격(당사자적격)을 잃는다는 기존 판례를 25년 만에 뒤집은 것이다. 이번 판례 변경은 채권 추심이나 강제집행 실무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23일 오후 건설회사인 A사가 B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재상고심에서 이같이 판례를 변경했다. A사가 공사대금 등을 달라며 B씨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심은 “피고는 원고에게 3911만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로 판결했다. 문제는 이 돈에 대해 A사의 채권자인 C사가 추심 명령을 받아내고, 과세당국도 체납액 징수를 위해 압류하면서 발생했다.

종래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이처럼 채무자의 제3채무자에 대한 채권에 관해 추심명령이 있는 경우 채무자는 해당 채권에 관한 이행의 소를 제기할 당사자적격을 잃는다. 이때 이행이란 채무의 내용·목적으로, 채무자의 행위를 말한다. 즉 보통 ‘급부’라고 표현하는 어떤 행위를 하도록 이행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있느냐는 것이다.

원심에서 패소한 B씨는 대법원에서 이를 근거로 ‘A사에 당사자적격이 없다’며 A사의 소송을 각하해달라는 취지로 주장했다.

대법원은 그러나 판례를 변경해 “채권에 관해 추심명령이 있더라도 채무자가 제3채무자를 상대로 피압류 채권에 관한 이행의 소를 제기할 당사자적격을 상실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국세징수법상 체납처분 압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우선 채무자의 권리 보호 측면에서 “추심 채권자(이 사건에서 C사)에게는 압류 채권을 추심할 권능만이 부여될 뿐 그 채권이 추심 채권자에게 이전되는 것은 아니다”며 “채무자가 피압류 채권에 관한 이행의 소를 제기하는 것은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일 뿐 현실로 급부를 수령하는 것은 아니므로 압류 및 추심 명령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 채무자가 당사자적격을 유지하더라도 “추심 채권자에게 부당한 결과가 생긴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추심 채권자로서는 채무자의 이행소송에 참가할 수 있고, 채무자가 승소 확정판결을 받더라도 실제 추심은 압류에 따라 금지되기 때문이다.

설령 채무자가 패소 확정판결을 받더라도 이에 따른 손해는 채무자에게 귀속되는 것일 뿐, 추심 채권자로서는 채무자의 다른 재산을 찾아 강제집행할 수 있으므로 부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나아가 ‘분쟁의 일회적 해결’과 ‘소송경제’ 면에서도 채무자가 당사자적격을 유지한다고 보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추심명령을 이유로 당사자적격을 상실한다고 보면 소송이 장기간 진행됐거나 상고심 단계에서 비로소 추심명령이 발령됐더라도 직권으로 소를 각하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므로 그동안의 소송이 무위로 돌아간다”고 설명했다.

다만 노태악 대법관은 반대 의견을 내 “추심명령이 있더라도 채무자가 이행의 소를 제기할 당사자적격을 유지한다고 보면 추심채권자의 추심권능에 중대한 제약이 초래되므로 추심채권자의 권리 실현을 최대한 보장하고자 하는 민사집행법 취지에 반한다”고 설명했다. 채무자가 먼저 낸 이행소송이 계속 중인 경우 중복제소금지 원칙에 따라 추심채권자는 추심소송을 제기할 수 없고, 이행소송 참가만으로는 추심권능 보장에 한계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노 대법관은 또 소송경제 면에서도 “채무자가 당사자적격을 상실한다고 보더라도 추심채권자가 당사자적격을 승계하므로 추심채권자는 승계참가를 할 수 있고, 제3채무자도 추심채권자에게 소송을 인수하게 할 것을 법원에 신청할 수 있다”며 부당하지 않다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례 변경에 대해 “명확한 법률적 근거 없이 추심명령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채무자가 당사자적격을 상실한다고 보았던 종전 판례를 폐기하고, 당사자들(추심채권자, 채무자, 제3채무자)에게 부당한 결과를 초래하지 않으면서도 분쟁의 일회적 해결과 소송경제를 도모할 수 있고 추심채권자의 의사에도 부합하는 추심명령 관련 실무의 방향을 제시하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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