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산재 국선 대리인’ 내년 추진, 예산 19억원 책정
유족·장해급여 제외 업무상 질병 대상 … 노무사업계 “실효성 없어, 노무사·학계·노사단체 등 의견수렴 선행해야”
정부는 월 소득 300만원 미만 노동자가 산재를 신청할 때 국선 공인노무사나 변호사의 무료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제도를 내년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내년도 예산 19억원도 이미 편성했다. 하지만 노무사업계는 “실효성은 의문”이라고 반발했다.
한국공인노무사회(회장 박기현)와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안호영 위원장, 김주영·김형동·박해철·김소희 위원이 15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공동 주최한 ‘노동 취약계층 보호를 위한 산업안전 제도개선 토론회’에서 찬반이 엇갈렸다.
국선 대리인 제도는 노동위원회의 국선 노무사 제도처럼 장해급여·유족급여를 제외한 업무상 질병 최초요양 신청시 이용할 수 있다. 근로복지공단(공단)의 산재 불승인 결정에 대해 공단을 상대로 다투는 심사청구나 재심사청구 단계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
이날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가가 비용을 지원해 노무사와 변호사가 재해자를 대리할 수 있도록 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의원은 “산재 입증책임이 전적으로 재해자에게 있어 법률대리인의 지원이 절실하다”며 국선 대리인 제도의 입법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과거 19·20대 국회에서도 유사 법안이 발의됐으나 논의 없이 폐기된 바 있다.
고용노동부는 연내 법 개정을 마치고 내년 상반기 제도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미 예산 19억원을 편성했다. 노동부는 업무상 질병 산재신청자의 10%(2700명)가 국선 대리인 제도를 이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건당 수임료는 40만~70만원 수준이다.
현장 노무사들은 제도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유건혁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산재)는 “업무상 질병 재해자는 대부분 건강문제로 소득이 없는 경우가 많아 사실상 모든 신청자가 월 300만원 미만에 해당한다”며 “결국 전체 산재신청자 대부분이 대상이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산재 사건은 착수금 없이 성공보수로만 진행되는 구조가 일반적이기 때문에 이미 비용 부담 없이 신청이 가능하다”며 “국선 제도는 행정비용만 늘리고 실질 효과는 미미하다”고 지적했다.
유 노무사는 “입증의 어려움을 해결하려면 추정의 원칙 확대, 자료요구권·역학조사 신청권 부여 같은 실질적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연직 노무사(서안 안전컨설팅)도 산재 사건 급증으로 인한 행정 지연을 우려했다.
업무상 질병 신청은 2018년 1만2975건에서 2024년 3만8219건으로 3배 이상 늘었다. 처리기간도 166.8일에서 227.7일로 60일 이상 길어졌다.
배 노무사는 “국선 사건이 추가되면 처리기간은 더 늘어 재해자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며 “국선 대리인이 사선 대리인보다 사건 처리에 소극적인 현실에서 산재승인율 하락도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산재승인율이 떨어질 경우 심사청구, 재심사청구 등 불복사건도 증가해 행정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배 노무사는 “산재보험 국선 대리인제도 도입하더라도 노무사 학계 노·사단체 등의 폭넓은 의견수렴을 하고 연구도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노동계는 제도의 필요성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특수고용직·플랫폼 노동자들은 산재신청 과정 자체가 너무 복잡해 전문가의 조력이 없으면 접근조차 어렵다”며 “국선 대리인은 입증책임 완화와 별개로 최소한의 공공안전망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