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바다 삼국지 수업’ 고교 우수탐구보고서 발표대회
“해양영토 수업, 교사와 학생이 함께 성장하는 계기”
해양수산부·전남대, 해양영토 수업모델 개발·확산 사업 마무리 행사로 개최
충남여고팀 영해기점 섬 크루즈 관광 기획, 영해 안보와 관광 연결 높은 평가
‘앞마당을 같이 쓰는 이웃’. 이재명 대통령이 한·일 관계를 이야기할 때 늘 하는 말이다. 그 앞마당은 땅이 아닌 바다고, 우리 기준으로는 남해다. 중국과 공유하고 있는 옆마당은 서해 즉, 황해라고 할 수 있다. 앞마당과 옆마당을 공유하다보니 불편한 게 많다. 가깝고도 먼 이웃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바다에서 특정 국가의 주권적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는 배타적 경제수역만 봐도 서로의 주장에 이견이 있어 많은 부분이 겹친다. ‘내 것은 원래 내 거고, 가능하면 네 것도 내 것으로’라는 패권적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늘 시끄럽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해양수산부와 전남대 무인도서연구센터가 기획한 ‘한·중·일 바다 삼국지’는 각별하다.
고교 수업모델로 개발해 점차 확대해 나가는 시도가 특별했다. 수업 현장 보도(내일신문 2025년 9월 5일자)에 이어 각 학교 수업의 결과물을 탐구보고서로 담아 발표대회로 마무리한 현장을 찾았다. <편집자주>편집자주>
7광구 개발이나 중국과의 바다 경계선 문제를 생각할 때 보통의 학생들이라면 일단 ‘우리 것 챙기기’라는 인식을 전제로 근거 자료를 찾고 주장의 논리를 갖춘다. 하지만 이번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국익 극대화를 위해 ‘상대에게 무엇을 줘야 할까’를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인상적인 변화다. 바다를 둘러싼 인근 국가, 특히 바다 경계의 최외곽인 배타적 경제수역(EEZ)에 대한 한중일 삼국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인식 전환이다. 패권이 아닌 공존의 지혜를 주려는 해양영토 주제 수업모델 개발 사업의 성과가 드러난 장면이다.
◆해양영토 수업의 마지막 장, 우수탐구보고서 발표대회 = 전남대 무인도서연구센터가 주최하고 해양수산부가 후원한 ‘한중일 바다 삼국지-바다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과 협상의 융합적 이해’ 수업은 지난 7월부터 시작됐다. 고등학교 수업에 활용할 수 있는 해양 교육 콘텐츠를 만들고, 학생들이 해양과 관련된 진로를 탐색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기획됐다. 무인도서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해양영토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해양수산부가 벌이고 있는 여러 사업 중 하나다.
전국 7개 고교에서 220여명의 학생들이 참여했고 학교별로 3차에 걸쳐 수업을 진행했다. 1차 수업은 해양법과 해양영토에 관한 배경지식을 이론적으로 배우고, 2차 수업은 ‘공간정보 기초와 양자지리정보시스템(QGIS) 활용법’을 다뤘다.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은 “해양영토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우리 눈높이에 맞춰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해 주셔서 흥미진진했다” “주제에 맞게 데이터를 모아 GIS 도구를 이용해 편집, 분석하는 실습을 해볼 수 있어 유익했다”고 입을 모았다. 수업을 마친 학생들은 4~5명씩 팀을 나눠 탐구 주제를 정하고 자료조사, GIS 분석, 토론을 거쳐 탐구보고서를 작성했다. 학교별로 진행된 발표 수업을 통해 우수 보고서로 선정된 7팀은 7개 고교가 겨루는 전체 대회에 참가할 자격이 주어졌다.
16일 해양영토 수업을 마무리하는 우수탐구보고서 발표대회가 내일신문사에서 열렸다. 오강호 전남대 무인도서연구센터장은 개회사를 통해 7개 학교가 무사히 수업을 끝낼 수 있었다고 감사를 표하며 “모두 준비를 열심히 한 것 같은데 부담 없이 즐겁게 발표하고 토론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방에서 참가하는 학생들을 위해 발표는 화상으로 진행됐다.
심사는 오 센터장을 비롯, 해수부 해양영토과의 김진권 사무관, 1차 수업을 담당한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해양정책연구소의 양희철 소장, 2차 수업을 담당한 서경대 도시공학과 김재명 교수가 맡았다.
주제 선정의 창의성, 데이터 활용과 분석 결과 도출의 논리성, 바다 삼국지 전략 찾기에 대한 기여도, 전달력이 심사 기준이었다. 대회에 참가한 7개 팀은 동북아 해역 내 탈북 및 마약밀수 경로분석, 7광구 문제, 지구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 이어도, 영해기점 섬 관광 크루즈 등을 주제로 선의의 경쟁을 펼쳤다.
◆7광구, 해수면 상승, 섬관광 크루즈 등 다양한 주제 돋보여 = “이 사진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2008년 광우병 사태 때 촛불 시위 사진입니다. 미국과 협상을 할 때 우리 대표단은 이 사진을 보여주면서 ‘시민들의 민심이 무섭다, 상식적인 협상을 하자’라고 제안하며 유리하게 협상을 이끌었다고 합니다.
외교협상을 할 때 시민들의 높은 이해도는 유리하게 작용합니다. 그래서 우리 팀은 한국의 영해기점 섬들을 알리기 위한 크루즈를 기획해 보았습니다.”
충남여고 학생들은 광우병 파동 때 100만여명이 모인 촛불 시위 사진으로 발표를 시작했다. 국민이 해양영토에 관심을 가지면 우리나라가 중국·일본과 해양 협상을 할 때 훨씬 유리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발, 영해기점 섬들을 연결하는 관광코스를 제안했다. 이른바 ‘물 위에 그린’(BLUE LINE CRUISE). 어청도 상왕등도 황도 홍도 가거도 여서도 등 우리나라 영해기점 섬들을 둘러보는 관광코스로 웰컴드링크, 갯벌 체험, 낚시한 해산물로 요리하는 쿠킹클래스, 선상 스파 등 재미있고 알찬 일정으로 꾸몄다. 해양 외교 강의와 함께 우리나라 바다에서 불법조업 등을 하는 중국어선을 보며 해양 안보의 중요성을 다시금 새기는 시간도 넣었다. 영해기점 섬들을 소개하는 한글·영문 브로슈어를 제작하고 예상 이윤과 수익성 평가, 주 수요층으로 30~60대 고소득층을 타깃으로 설정한 점 등 구체적이고 참신한 발상이 눈길을 끌었다.
심사위원들은 ‘일정이 알차다’ ‘수학여행을 가는 기분이다’ ‘학생답고 신선한 주제’라는 반응이 많았다.
양 소장은 “서론부터 결론까지 짜임새가 있으며 수익 구조까지 산출한 것을 보니 고민을 많이 한 것 같다”라며 “강의는 관할권 현황이나 중·일과의 관계 등에 초점을 맞췄는데 평시에 어떻게 해양을 이용하고 영해기점을 홍보할까 하는 내용이 잘 들어가 있어 해수부가 많은 아이디어를 얻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충남여고 팀이 대상을 차지했다.
그 외에도 제7광구에서 경제적인 이익을 얻기 위해 어떤 전략을 사용할지를 탐구한 새솔고 팀, 해수면 상승에 의한 영해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협력 방안을 논의한 전북제일고 팀이 최우수상을 받았다.
논리구조와 자료 사용이 대학생들 수준으로 높았다는 평가를 받은 전북제일고 학생들은 “보고서를 45페이지 이상 작성해서 열심히 탐구한 주제인데 상을 받아 영광”이라고 기뻐했다.
조원들과의 협업이 높은 평가를 받은 새솔고 학생들을 지도한 박형준 교사는 “학생들이 추석 연휴까지 반납하면서 열심히 했는데 그에 대한 보답을 받은 것 같다”라며 좋은 평가를 해준 심사위원과 수업 기회를 준 주최 측에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수상자 발표를 끝으로 5개월에 걸친 ‘2025년 해양영토교육 수업모델 개발 및 수행사업’ 은 마무리됐다.
양 소장은 대회 총평을 통해 “오늘 발표와 질의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며 “제가 생각한 고등학생 수준 이상으로 준비를 더 철저히 열심히 해주었고 또 강의할 기회가 있으면 올해보다 더 재밌게 하려고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해수부는 해양영토교육에서 나아가 체험과 교육 그리고 교육과 홍보 등 여러 행사와 접목해 바다의 가치를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를 발굴할 예정이다.
조진경 리포터 jinjing87@naeil.com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