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살롱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는 작고하신 박완서님의 소설 제목이다. 부끄러움이 사라진 세속에 대한 작가의 시대정신이 소설로 표현된 것이다. 국회 국정감사를 생중계로 보면서, 국회의원들과 증인 참고인들의 진술과 공방을 접하면서 지금 제일 필요로 하는 교육은 부끄러움에 대한 교육이지 않나 생각했다.
증거로 밝혀지지 않는다면 죄가 아니라는 법 기술자들의 낯 두꺼운 태도와 모호한 표정으로 시간 때우기를 하면서 부끄러움을 피해가는 적당한 방어적 태도의 증인들을 보면서 안타까움과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부정한 짓을 하더라도 증거가 없다면 범죄가 아니라는 잔혹한 법 기술, 명백한 진실이어도 언론과 법의 방패막 속에서 진실이 왜곡되는 것이 가능해진 탈진실의 시대에 일부 정치인들과 관료들은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버리고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드라마에서 전형적으로 그려진, 비겁하거나 파렴치한 인물보다 때로는 더 적나라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자신이 속한 카르텔과 이익에 눈이 멀어 양심과 이성을 속이는 일은 비일 비재하다.
12.3 내란사태의 우두머리 격인 전직 대통령이 앞장서서 법을 무력화하고 있는데, 이를 비호하는 듯한 이들이 사법부에 있다는 게 한국 민주주의에서 또 다른 역설이다. 현대 정치에서 도덕과 정의는 상실되고 선거와 홍보에 대한 기술만 남았다는 정치심리학자들의 한탄이 계속 머리속에서 맴돈다.
죄책감은 타인에 관심이 생겼다는 증거
정신의학에서는 부끄러움과 수치심, 도덕과 정의의 상실이 만연한 상태를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반사회적 인격장애 등의 범주로 인식하며 병적 상태의 하나로 다뤄왔다. 병리군이나 진단군에 속하는 환자들은 치료가 어렵고 회복도 어렵다는 절망적 인식 때문에 치료보다는 법적 통제나 관리가 주장되기도 한다.
예일대학교 법·정신의학부 교수였던 벤디 리는 트럼프 1기 시절 트럼프 대통령이 사이코패스라는 주장을 하며 대통령에 대한 정신감정을 주창하기도 했었다. 트럼프처럼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에게 수많은 사람의 생사가 걸린 대통령직이라는 권력을 맡겨서는 안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독일의 철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이기도 했던 칼 야스퍼스는 독일이 전쟁을 일으킨 심리적 특징은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잃었을 뿐 아니라 심리적으로 건강하게 지녀야할 일말의 죄책감마저 잃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죄책감을 법적 정치적 도덕적 형이상학적 죄책감으로 나누고 가장 하등한 것이 법을 위반할 때의 죄책감이라고 했다.
그런데 현대 정치의 세계에서는 법을 어기고도 재판기술을 통해 미꾸라지처럼 빠져 나오는 일이 즐비해지면서 법적 죄책감마저 느끼지 못하는 정치인들이 판을 치고 있다. 죄책감의 상실은 부도덕하고 부정의한 행위를 연속하게 만든다.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양심잃은 판사가 죄에 대해 논할 수 있는가? 500원 도둑질은 처벌하고, 의도적으로 정치에 개입해 국민 모두와 관련되었던 일에 부당하게 권력을 사용한 일은 합법적 절차라고 하는 사법부에 정의는 과연 있는가를 다시 따져 보아야한다.
정신분석가인 위니콧은 부끄러움을 아는 것,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타인에 대한 진정한 관심이 생겼다는 증거라고 했으며, 인간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부끄러움과 죄책감은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감정이라고 했다. 과도한 죄책감이나 죄책감의 결여는 심각한 병리적 성격을 유발할 수 있는 조건이라고 말했다.
죄책감의 결여와 상실이 지난 박근혜정부에 이어 윤석열정부에서도 계속 되어왔다. 국가교육위원회의 수장이 대통령의 부인에게 금두꺼비를 상납하고 봉건시대 왕궁 방문을 보좌한 사진을 보면서 지성과 도덕은 이제 완전히 결별한 상태라는 것을 목도하게 되었다.
타인 존중이 민주주의 심리의 초석
‘정신적으로 건강하다’ ‘심리적으로 안정되었다’고 하는 것은 부끄러움을 알고 수치심을 적절히 느끼며 적당한 죄책감에 고통스러워하며 조금 미안해하면서 사는 것이다. 건강한 두려움과 조심스러움, 주변의 영향을 살피고 염려하며 타인을 존중하는 것은 민주주의 심리의 초석이다. 권력이 진실이나 양심을 대체하는 것을 우리는 야만이라고 해왔다.
쿠팡 무혐의를 강제했다며 자신의 상관인 지청장을 수사의뢰하고 그들의 뻔뻔한 거짓말에 울분을 토한 검사의 눈물이야 말로 진실의 발로가 아닌가? 거짓말을 일삼는 판검사가 되지 않으려면 이미 거짓말임을 알고 있는 법원과 검찰의 현명하고 지혜로운 다른 판검사들이 암흑의 카르텔을 깨고 외쳐주길 바란다. 법원과 검찰의 내적개혁이야말로 국민 정신건강에 지대한 공헌을 미칠 것이다. 진실이 가져다주는 행복만큼 큰 정신건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