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테크노크라트와 정치의 위기

2026-05-06 13:00:02 게재

정치인들은 어느 나라에서나 비난의 대상이 되곤 한다. 미국에서는 남북전쟁 이후 소위 ‘도금시대’가 열리면서 정치혐오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평가받는 제임스 뷰캐넌, 앤드루 존슨, 체스터 아서, 제임스 가필드, 윌리엄 헨리 해리슨, 워런 하딩 등이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 백악관의 주인이 됐던 인물들이다.

유럽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있었다. 대혁명으로 왕정을 종식시킨 프랑스에서는 봉건시대 정치의 주역이었던 영주와 성직자에 대한 혐오가 커지고 있었다.

정치 혐오의 빈자리를 채운 엔지니어의 꿈

이런 맥락에서 정치인을 대신해 그 자리에 엔지니어를 앉히고 싶다는 욕망은 서구사회의 오래된 로망이었다. 이는 정교한 계산기를 정치의 도구로 활용하자는 꿈과 다름없었다. 테크노크라시(technocracy), 즉 과학정신으로 무장한 엔지니어들이 사심 없이 정치를 해야 한다는 믿음이 확산됐다.

1차세계대전 이후 굶주린 유럽에 식량을 공급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던 허버트 후버는 지질학을 전공한 엔지니어였는데, 이러한 시대적 기류를 타고 대통령에 취임했다. 역사 속에서는 대공황을 막지 못한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남겼지만 그는 분명 당대의 시대정신이 구현된 인물이었다.

100여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세계는 다시 테크노크라트의 시대를 맞고 있다. 과거의 테크노크라시가 ‘엔지니어의 정치’를 의미했다면, 오늘날의 테크노크라트는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지배하는 소수 엘리트’를 뜻한다. 정치의 언어가 설득과 타협에서 코드와 모델로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에서는 공학을 전공한 정치 엘리트들이 다수를 차지하며 기술과 권위주의가 결합된 독특한 통치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효율성과 속도 면에서는 분명한 성과를 보여주지만 그 과정에서 시민의 자유와 권리는 후순위로 밀리는 경향이 있다. 기술은 통치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도구를 넘어, 통제를 정교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미국 역시 비슷한 흐름이 감지된다. 과거에는 골드만삭스로 대표되는 월가 인사들이 행정부의 핵심을 차지했다면 이제는 실리콘밸리의 기업가들이 권력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 배후에는 피터 틸과 같은 사상가형 투자자가 있고, 일론 머스크와 알렉스 카프 같은 실행가들이 있다. 이들은 단순히 기업을 운영하는 수준을 넘어 국가 전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쟁의 양상에서도 이러한 변화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데이터 분석과 인공지능이 전장의 의사결정을 좌우하고 있다. 팔란티어는 정보 수집과 타격 판단을 지원하며 사실상 ‘보이지 않는 참모본부’ 역할을 수행한다. 반면 앤스로픽은 군사적 활용 범위를 둘러싸고 미국정부와 갈등을 빚고 있다.

기술기업이 국가안보의 핵심 파트너인 동시에 규범의 경계선을 스스로 설정하려 한다는 사실은 권력구조가 과거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이러한 테크노크라트의 부상이 가져올 장기적 함의다. 기술은 효율을 극대화하지만, 효율이 곧 정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알고리즘은 최적해를 찾지만 그것이 인간에게 가장 바람직한 선택이라는 보장도 없다.

효율과 속도 앞세운 민주주의 토대 훼손, 진보 아닌 또다른 퇴행일 수도

정치는 본질적으로 불완전한 인간이 서로의 이해를 조정하며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지만 그 비효율 속에 민주주의의 가치가 존재한다. 그러나 기술 엘리트가 주도하는 정치에서는 이러한 과정이 생략될 가능성이 크다. 계산된 결과가 곧 정답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테크노크라트의 시대는 이미 시작됐다. 그것을 거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다만 효율과 속도의 이름으로 민주주의의 토대가 훼손된다면 그것은 진보가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퇴행일지도 모른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