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에너지
에너지안보의 삼각파고 대응법
우리나라 에너지안보가 세 방향에서 동시에 거센 압박을 받고 있다. 과거의 에너지안보가 주로 원유와 가스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문제였다면 지금은 공급불안, 탄소비용, 전력수요 증가를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복합과제가 되었다.
첫째, 중동전쟁에 따른 공급불안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2025년 기준 하루 약 2000만 배럴의 원유와 석유제품이 통과하는 세계 핵심 에너지 수송로다. 세계 해상 석유 무역의 약 25%가 이 해협을 지나며, 그중 80%는 아시아로 향한다. 전쟁 이후 공급 차질이 커지자 국제에너지기구는 2026년 3월 회원국들이 4억 배럴의 비상 비축유를 시장에 공급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2024년 기준 93.7%인 우리나라는 이러한 충격이 곧바로 전기요금 물가 무역수지 산업원가로 연결된다.
둘째, 탄소중립 이행 압박이다. 유럽연합(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2026년부터 실제 비용 단계로 들어갔다. EU 집행위원회가 공표한 2026년 1분기 CBAM 인증서 가격은 톤당 75.36유로다.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수소를 유럽에 수출하는 기업에는 제품 속 탄소가 원가로 반영된다. 탄소는 더 이상 환경보고서의 숫자가 아니라 통관 가격 계약 손익계산서에 영향을 미치는 비용이 되었다.
국내 감축목표 역시 에너지와 산업구조의 전환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로 만들고 있다. 정부가 확정한 2035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는 2018년 순 배출량 7억4230만톤CO₂eq 대비 2035년까지 53~61% 감축이다. 2024년 순 배출량 6억5140만톤과 비교해도 앞으로 10년 안에 약 3억~3억6000만톤을 추가로 줄여야 한다.
셋째, 인공지능(AI) 시대의 전력수요 증가다. 국제에너지기구는 전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가 2025년 485TWh에서 2030년 950TWh로 거의 두 배 늘고, AI 중심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는 같은 기간 세 배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반도체 클러스터와 데이터센터는 24시간 안정적인 전력이 필요하다.
실질적이고 적극적 에너지믹스 실행 필요
이 세 파고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에너지믹스 실행이 필요하다. 자원빈국인 우리나라가 특정 에너지원 하나에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공급불안, 탄소비용, 전력수요 증가를 동시에 감당하기 어렵다.
현 정부의 에너지 정책 방향도 결국 전원 간 균형과 계통 안정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재생에너지를 빠르게 늘리되 원전은 안정적 무탄소 전원으로 활용하고, LNG는 계통 보완 자원으로 관리하며, ESS와 양수발전 같은 유연성 자원을 확충해야 한다는 접근이다. 재생에너지는 빠르게 확대해야 하지만 전력망과 저장장치가 충분히 갖춰지기 전까지 원전 가스 등 다양한 에너지원 확보가 필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국내 에너지 개발도 정쟁이 아니라 에너지안보와 기술 역량의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 동해 심해 가스전, 이른바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1차 시추에서 상업성을 확인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번의 시추결과만으로 국내 해역 탐사 전체를 중단하는 것은 자원개발의 일반적 접근과 맞지 않는다. 자원개발은 지질자료 축적, 유망구조 재평가, 위험분산, 반복탐사를 통해 불확실성을 줄여가는 장기 사업이다.
실제로 탐사시추 이후 사업 참여를 위한 국제입찰에는 BP와 엑손모빌 등 주요 해외 기업이 참여한 것으로 보도됐고, BP가 공동개발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상업성이 확인될 경우 국내 가스는 에너지 가격 충격을 완화하는 안보자산이 될 수 있다. 설령 단기성과가 제한적이더라도 탐사과정에서 취득한 해저 지질자료와 시추 경험은 향후 탄소포집저장기술(CCS) 평가에도 활용될 수 있는 국가 기술 자산이다.
CCS는 이제 연구개발 과제가 아니라 산업 인프라 구축 과제로 전환해야 한다. 우리나라 산업구조는 철강 시멘트 정유 석유화학처럼 전기화와 효율 개선만으로는 탄소 감축이 어려운 업종의 비중이 크다. 정부의 2035 NDC에서도 CCUS는 1120만~2030만톤의 감축·제거수단으로 제시되어 있다. 세계적으로는 2025년 기준 상업 CCS 프로젝트가 운영 77개, 건설 47개, 개발 610개로 늘었고, 운영 및 개발단계 전체 포집 능력은 연 5억1300만톤 규모로 확대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저장소 탐사, CO₂ 운송망, 장기책임, 주민 수용성, 감축량 인정 체계가 아직 사업화 단계로 충분히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정책 방향은 명확, 실제 투자와 실행 남아
정책 방향은 명확하다. 재생에너지 목표는 속도를 높여야 한다. 원전은 안정적 무탄소 전원으로 활용해야 한다. LNG는 전환기 계통 안정성 자원으로 쓰되, 총량과 배출을 관리해야 한다. 국내 자원개발은 민간·해외 파트너와 위험을 분담하면서 투명하게 지속해야 한다.
이제 에너지안보 정책은 수입선 다변화와 비축 확대에 머물 수 없다. 재생에너지 확대, 원전의 안정적 활용, 전환기 LNG의 배출 관리, 국내 해역 탐사역량 유지, CCS 인프라 구축을 하나의 포트폴리오로 실행해야 한다.
에너지 가격 충격과 탄소비용, 전력수요 증가가 동시에 오는 상황에서 선택지는 많지 않다. 우리나라 에너지안보의 핵심은 에너지믹스를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실제 투자와 인프라로 전환하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