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민심이 영원한 우리편이라는 ‘착각’
6.3 지방선거가 한달여 안쪽으로 다가오면서 정치권은 세 읽기에 분주한 모습이다. 현재 각종 여론조사 지표들은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을 가리킨다. 한국갤럽의 4월 28~30일자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도는 46%로 국민의힘 21%에 2배 이상 앞선다. 이 지표는 앞 주와 비교해도 별 차이가 없다. 4월 통합 지방선거 결과에 대한 기대에서도 ‘여당후보 당선’이 46%로, ‘야당후보 당선’ 29%를 압도한다.
하지만 현장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애초 민주당이 경북만 빼고 모두 이길 것이라는 관측은 조금씩 균열이 가고 있다. 특히 대구와 부산·울산·경남은 표면적 지표와 달리 사실상 박빙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국민의힘이 ‘윤 어게인’ 전사들을 재보궐선거에 전진 배치하는 등 여전히 구태의 늪에서 헤매는데도 보수층의 결집이 시작된 것은 단순히 야당의 뒷심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한비자가 ‘여도지죄’로 전하려고 했던 경고
지난달 말 민주당은 전격적으로 ‘윤석열 정부 조작수사·기소 의혹 특검법안’(조작기소특검법)을 발의하고 5월 내 처리를 공언했다. 법안 제8조 7항에 포함된 ‘재판 중인 사건의 공소유지 권한(공소취소 가능성)’에 대한 위헌성 논란에도, 야당의 ‘이재명 살리기’라는 프레임 공세에도 민주당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결국 청와대의 속조조절 요구 등으로 본회의 처리 시기를 재논의할 예정이지만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이 이슈는 선거국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지도부의 무능 등 국민의힘에 대한 실망감으로 투표장에 나가길 주저했던 보수층을 ‘심판자’로 돌려세우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본능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한 경계심을 가진 중도층의 균형심리를 자극할 가능성도 커졌다. 원래 선거에서는 ‘지지’보다 ‘공포와 분노’가 더 강력한 투표동기로 작동하는 법이다. 그런데 민주당의 특검법은 바로 비지지층 유권자들의 ‘투표 감수성’을 건드린 셈이 됐다.
그러면 지금 같은 민감한 선거 시기에 민주당은 왜 이런 자해적 무리수를 뒀을까. 이는 ‘권력의 오만’ 외엔 달리 해석이 되지 않는다. 고공행진 중인 이 대통령 지지도, 선거국면에서도 정신 못 차리고 있는 야당, 15대 1의 압승 전망 등이 민주당에게 무엇을 해도 괜찮다는 ‘도덕적 면죄부(Moral Licensing)’를 쥐어줬을 가능성이 크다.
춘추시대 위(衛) 영공(靈公)의 총신 미자하(彌子瑕)는 어머니가 위독하자 왕의 수레를 몰래 타고 나갔다. 당시라면 발목을 자르는 월형(刖刑)에 처할 일이었으나 영공은 “효자로구나. 어머니를 위해 월형의 위험까지 무릅쓰다니”라며 칭찬했다. 어느날 미자하가 맛이 좋다며 먹던 복숭아 반쪽을 주자 영공은 “나를 얼마나 아끼면 이 맛있는 것을 주는가”라며 감격했다. 하지만 훗날 총애가 식자 영공은 그의 사소한 잘못에도 “수레를 훔쳐 탔고, 먹던 복숭아를 내게 먹인 괘씸한 놈”이라며 처벌했다. ‘한비자’ 세난(說難)편에 나오는 ‘여도지죄(餘桃之罪)’ 고사다.
미자하가 군주의 총애를 굳게 믿었듯 민주당 역시 현재 민심의 지지를 ‘영원한 권리’로 착각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 어떤 절대군주보다 더 변덕스러운 게 민심이다. 지금은 ‘그럴 수 있다’며 고개를 끄덕이던 유권자들도 감정의 유효기간이 끝나면 다른 눈으로 바라보기 십상이다. 훗날 민심이 돌아섰을 때 민주당이 마주할 상황은 미자하가 맞닥뜨린 냉혹한 심판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지지율이 ‘권력의 눈 먼 확신’ 만든 건 아닌지
민주당이 정작 고민해야 할 것은 당장의 무리수가 아니라 정권재창출이다. 문재인정권이 그랬던 것처럼 만약 이재명정부도 5년 단임으로 끝난다면 그동안 추진했던 검찰·사법개혁도, 이 대통령에 대한 공소문제도 모두 원점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정권재창출의 기본은 차분하게 민심을 축적하는 일이다. 그것은 ‘보편적 상식’의 정치를 전제로 한다. 그런데 미래의 큰 손해보다 당장의 작은 이익이 더 커 보이는 ‘현재편향(Present Bias)’에 매몰된 권력집단에게, 그것도 극성팬덤에 목맨 당에게 4년 후의 재집권이라는 보상이 눈에 들어오기나 할까. 하지만 민심을 저축하지 않고 빌려 쓰기만 하는 권력은 결국 파산하게 돼 있다. 그것이 권력의 법칙이다.
지방선거가 본격화 된 지금 민주당이 할 일은 여론조사 수치가 주는 자신감이 ‘권력의 눈먼 확신’이 된 것은 아닌지 성찰하는 것이다. 권력의 시계가 멈추는 날, 영공의 기억 속에 남는 것은 효심 가득한 미자하가 아니라 ‘먹던 복숭아’를 건넨 오만한 신하의 모습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남봉우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