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아동 최선의 이익’, 그리고 촉법소년
1922년 어린이날을 선포한 방정환 선생은 이듬해 ‘어린이날 선언문’에서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다보아 주시오’라고 외쳤다. 일제강점기, 어린이를 온전한 인격체로 대하자는 이 선언은 혁명적이었다. 그로부터 100년이 훌쩍 지난 오늘, 우리는 어린이를 온전한 인격체로 대하고 있는지 자문하게 된다. 최근 촉법소년 연령을 둘러싼 논의를 보면 여전히 어린이를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통제와 처벌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짙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린이날을 앞두고 의미 있는 결정이 나왔다. 지난 4월 30일, ‘촉법소년 연령 논의를 위한 사회적 대화협의체’는 숙의를 거쳐 촉법소년 연령 상한을 현행 ‘만 14세 미만’으로 유지하는 권고안을 의결했다. 숙의의 과정은 평탄하지 않았다. ‘어린 나이를 방패 삼는다’는 비판 속에 처벌 연령 하향을 요구하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형성됐다. 이러한 분노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소년 범죄 피해자와 가족이 겪는 고통은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 정책이 단순히 대중의 공분에 화답하는 ‘응보’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아동 정책일수록 단기적 처벌이 아닌, 장기적 관점의 사회적 안녕을 우선해야 한다.
장기적 관점으로 사회적 안녕 우선해야
많은 전문가는 소년범죄의 해법이 기준 연령 하향에 있지 않다고 입을 모아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 문제가 제기된 2007년, 2018년, 2022년에도 실효성 부족과 국제 인권 기준 위배를 이유로 일관되게 반대 입장을 밝혀왔다. 법학자 205인 역시 성명을 통해 UN 아동권리위원회 권고에 따라 형사책임연령을 최소 14세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촉법소년 범죄 증가라는 현상 뒤에는 아동학대에 대한 조기 개입 실패,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된 온라인 환경, 돌봄 공백 속에 방치된 아이들이 있다. ‘처벌 연령 하향’은 이러한 근본 원인에 닿지 못한다. 사회가 먼저 놓쳐버린 아이들을 더 일찍 ‘범죄자’로 분류해 사법 처벌의 대상으로 넘길 뿐이다. 소년사법의 본질은 응징이 아니라 교화와 재사회화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번 숙의 과정의 의미는 단순히 현행 연령을 유지한 데 있지 않다. 협의체는 소년사법 제도 전반을 검토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구체적인 보완책을 제시했다. 이번 권고안 의결은 ‘엄벌주의’에 따른 범죄 예방보다 교육과 선도를 통한 사회 복귀라는 소년법의 취지를 다시 확인한 결과다.
정부는 협의체의 권고안을 전향적으로 수용하여 현명한 최종 결론을 내려야 한다. 이번 권고가 한낱 선언에 그치지 않도록, 소년법 개정부터 아동 지원 체계 전반의 혁신으로 이어지는 실질적인 중장기 로드맵을 가동해야 한다. 유엔 아동권리협약이 강조하는 ‘아동 최선의 이익’은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원칙이다. 처벌보다 보호와 교화가, 낙인보다 회복과 재통합이 아이들의 삶은 물론 사회 전체의 안전을 지키는 길임은 이미 수많은 연구로 증명되었다. 이 원칙은 비단 촉법소년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아동 빈곤, 학대, 방임 등 모든 정책 영역을 관통하는 흔들림 없는 철학이 되어야 한다.
‘아동 최선의 이익’ 타협할 수 없는 원칙
한 사회의 수준은 가장 취약한 존재를 어떻게 대하는지로 드러난다. 아동은 그 수준을 보여주는 가장 정직한 가늠자다. 방정환 선생이 꿈꿨던 세상은 아이의 잘못을 손쉬운 처벌로 봉합하는 사회가 아니라, 왜 그 아이가 그 자리에 서게 되었는지를 먼저 묻고 그 책임을 사회가 함께 나누는 세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