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지 않으면 잊혀질까봐…”
“3주기 … 점점 희미해지는 죽음이 아니라 더 기억하고 고민하는 것이 되기를. 잊지 않으면서 함께 나아갈 수 있길 바라요. 애도합니다.”
27일 이태원참사 3주기를 맞아 다시 찾은 해밀턴호텔 골목은 바람으로 가득했다. 시민들이 적어 붙인 손편지가 여기저기 붙어 있었지만 추모객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드문드문 손편지를 읽거나 헌화된 꽃들을 쳐다보는 이들이 있었지만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인지 방문객은 좀처럼 만나기 어려웠다.
30분쯤 지났을까. 한 청년이 골목 안을 서성대다 손편지 앞에 섰다. 이름 밝히길 꺼린 청년은 자신을 세월호 당시 수학여행이 취소됐던 고등학교 2학년이었고 이태원참사 당일에는 이곳에 놀러 오려다 약속이 바뀌어 오지 않았던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큰 재난이 자신을 살짝 비껴 갔을 뿐 본인에게도 동일한 사고가 일어났을 수 있다면서 “기억하지 않으면 모두 잊혀지고 이분들 죽음이 의미 없는 일이 될까봐 미안한 마음에 들렀다”고 했다.
추모객 발길이 붐비지 않기는 별들의집도 마찬가지다. 별들의집은 종로구 적선동 현대빌딩 1층에 마련된 이태원참사 기억소통공간이다. 159명 희생자의 생존 당시 모습이 사진으로 걸려있다. 또다른 벽에는 참사 당시와 이후 시간에 대한 기록, 시민들 추모 메시지 등이 자리잡고 있다. 유가족과 진상규명 활동을 펼치는 시민대책위 그리고 일반 방문객이 들르고 소통할 수 있는 장소다. 인근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김영복(가명.67)씨는 “해마다 이맘때쯤에만 조금 사람이 몰리고 평소에는 그렇게 방문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가 바뀌면서 이태원참사는 새 국면을 맞고 있다. 이재명대통령이 유족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참사 원인 가운데 하나로 대통령실 용산 이전을 지목하는 등 전면재조사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계자들은 걱정과 두려움을 토로한다. 대통령이 나섰다고 단박에 특조위가 활기를 띠는 것도 아니고 조사에 속도가 붙고 있지도 않다는 게 관계자들 시각이다. 정부나 서울시 보다 시민들이 얼마나 사고를 기억하느냐가 진상규명에도, 재발방지대책 수립에도 가장 큰 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이미현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은 “지난주 정부 합동감사결과가 나오긴 했지만 아직까지 유가족들이 요구한 9대 진상규명 과제 가운데 아주 일부만 확인된 상태”라며 “남은 해결과제가 산적한 만큼 시민들이 지속적으로 기억과 관심을 보여주시길 부탁 드린다”고 말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