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 수학 A였는데 고교서 추락하는 이유

2025-10-29 13:00:00 게재

중학 내신 높아도 고교 첫 시험 반타작 흔해 … 암기·반복만으론 한계, 증명·유도로 원리 익혀야

중학교에서 수학 A등급을 받으며 만점까지 기록하던 학생이 고등학교 첫 시험에서 50점대를 받아오는 일이 흔하다. OMR 표기 실수를 의심하다 좌절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중학교에서 문제가 없었고 선행학습까지 한 상태라 학부모는 혼란에 빠지고 학생은 수학 흥미를 잃은 채 공부를 포기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수학 교사들은 이를 두고 중학교 성적의 착시 효과일 수 있다고 말한다. 서울시교육청의 2024년 서울 학생 수리력 진단검사에 따르면 고1 학생 10명 중 4명은 스스로 수학을 포기하는 수포자다. 중학교 때 높은 내신에 가려진 진짜 실력이 고등학교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중학교는 절대평가로 난도가 낮고 점수가 높게 형성되지만 고등학교는 변별력 확보를 위해 시험 구조 자체가 다르다. 공식 암기와 문제 유형 반복만으로는 개념 응용과 활용이 필요한 고교 수학에 적응하기 어렵다. 교과서 증명과 공식 유도를 통한 완벽한 개념 이해, 선행보다 중학 과정 기본기 다지기 등 고교 수학의 벽을 넘어설 현실적 해법을 교사들과 함께 찾아봤다.

중학교 수학은 늘 A를 받던 학생이 고등학교 첫 시험에서 반타작 점수를 받아오는 일이 흔하다. OMR 표기를 잘못했나 의심하다가 좌절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중학교에선 별 문제가 없어 선행학습까지 한 상태이다 보니 학부모는 혼란에 빠지고 학생은 수학에 대한 흥미를 잃은 채 공부를 포기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이를 두고 수학 교사들은 중학교 성적의 착시 효과일 수 있다고 말한다.

◆고1 학생 10명 중 4명은 수포자 = 지난해 11월 서울시교육청이 실시한 ‘서울 학생 문해력·수리력 진단검사’에 따르면 문해력의 경우 중2의 4수준(우수) 비율은 47.10%이고 고1은 52.13%로 약 5% 차이가 났다. 1수준(기초미달) 비율은 초6은 4.26%이고 고1은 7.02%였다. 국어는 학년이 높을수록 상위권 학생 비율 또한 많아졌다는 얘기다.

반면 수리력은 중학교에 비해 고등학교의 성취 수준이 확연히 낮았다. 중2의 4수준 비율은 43.30%였지만 고1은 34.19%로 9.1% 적었다. 고1 10명 중 4명은 스스로 수학을 포기하는 수포자인 셈이다. 다만 1수준 비율은 초6 5.59%에서 고1 13.68%로 2배 넘게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수학은 고교에서 상위권과 하위권의 차이가 급격히 벌어지는 과목이라고도 볼 수 있다.

박상훈 서울 중산고 교사는 “수학은 학습 내용이 차곡차곡 쌓이는 구조를 가진 대표적인 과목”이라며 “단원별 주제가 비교적 독립적인 국어 영어 사회와 달리 수학은 이전 단계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해야 다음 단원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학교 수학의 연장선인 ‘공통수학1·2’는 물론 고2·3 때 배우는 수학 과목에도 중학 개념의 이해도가 영향을 미친다”고 덧붙였다.

◆같은 과목 다른 형태, 시험 목적부터 달라 = 중학교는 의무교육 과정으로 시험에서 학생 간 서열을 매기기보다는 모든 학생이 기본적인 학습 목표에 도달했는지 확인하는 데 목표를 둔다. 일정 기준(90점 이상 A, 80점 이상 B 등)을 충족하면 누구나 같은 성취 수준으로 인정받는 절대평가 방식을 적용하는 이유다. 절대평가 특성상 전반적으로 난도가 낮고 점수는 높게 형성된다.

이에 더해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임금림 충남 쌘뽈여고 교사는 “비평준화 지역은 중학교 성적이 고등학교 배정과 직결된다”라며 “원점수가 낮아 다른 지역 중학교에 비해 고교 진학 시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도록 난도를 조정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전반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는 구조가 만들어진다”고 덧붙였다.

대체로 난도가 낮은 중학교 시험에 가려진 진짜 실력을 점검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고1 3월 학력평가 기출문제를 풀어보는 것이다. 가장 높은 난도의 E등급 문항이라도 중학교 기본 개념을 바탕으로 출제되므로 중학교 개념을 탄탄히 익혔다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반면 고등학교는 학생 간 차등을 두고 등급을 내야 해 변별력 확보가 최우선 과제다. 임 교사는 “학생들의 수학 실력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문항 수를 줄이고 충분한 시간을 주는 것이 이상적”이라며 “한데 문항이 20문제 안팎으로 줄면 한 문제당 배점이 커져 학생들의 부담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반대로 23문항에서 25문항으로 늘려 배점을 낮추면 시간 부족으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학생이 많아진다”며 “이처럼 시험의 목적이 다르고 문항 구조 또한 달라지면 중학교에서 개념을 탄탄히 다진 학생이라도 고등학교 수학 시험에 당황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증명·공식 유도로 개념 완벽히 익혀야 = 중학교 시험에선 공식을 외우고 문제 유형만 반복해 익혀도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한데 이런 공부 방식에만 익숙해지면 개념 적용을 넘어 응용·활용해야 풀 수 있는 고등학교 수학에 적응하기 어렵다.

이국희 충남 한올고 교사는 “중학교 수학이 레고 블록의 다양한 모양을 익히고 각각의 쓰임을 배우는 과정이라면 고등학교 수학은 이를 기반으로 완성된 레고 작품을 보면서 그 안에 쓰인 블록의 종류와 활용 방법을 추측하고 분석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그동안 설명서를 수동적으로 따라 레고를 조립하기만 했다면 새로운 작품을 응용해 만들거나 구조를 이해할 때 한계에 부딪힌다”고 덧붙였다.

해답은 중학교 교과서에 있다. 이 교사는 “학생들이 수학 점수를 빨리 올릴 수 있는 방법을 물으면 교과서에 나오는 모든 증명을 직접 써보며 개념 속 원리를 익히라고 조언한다”고 말했다.

증명은 주어진 조건에서 논리적 근거를 세워 결론에 닿는 사고의 흐름을 단계적으로 설명하는 훈련이다. 예를 들어 중3 교과서에 있는 피타고라스 정리 증명은 도형을 구성하고 두 가지 방법으로 면적을 비교한 뒤 식을 정리하는 논리적 연결 단계를 거친다.

단순히 공식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같은 면적을 두 가지 방식으로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 수학적 사고와 논리를 익힌다. 이후 고등학교 과정의 삼각비 원주각 닮음 증명으로 이어지는 기초가 된다.

공식 유도도 좋은 연습이 된다. 하나의 공식을 여러 방법으로 유도해보는 과정에서 문제를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새로운 문제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힘이 길러진다. 이 과정이야말로 완벽한 개념 이해다.

박 교사는 “고등학교 내신과 수능 고난도 문항 수리논술까지 모두 교육과정 안에서 교과서 개념을 바탕으로 출제된다”며 “개념을 60%에서 70%만 이해했다면 기출문제를 아무리 많이 풀더라도 활용이나 응용 단계에서 막힌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학교부터 문제 풀이에 앞서 개념의 원리를 완전히 이해하고 스스로 설명할 수 있을 만큼 깊게 익히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행학습보다 중학 과정 뼈대 다져야 = 수학은 여러 과목 중에서도 유독 선행학습 열풍이 강하다. 실제 서울 대치동 목동 중계동과 대구 수성구 등 대표적인 교육특구에서는 초등학교 때 현 고3 과목인 ‘미적분’까지 끝내고 이후 여러 번 반복 학습해야 한다는 말이 돌 정도다.

심지어 선행이 안 되어 있으면 학원에 들어갈 반조차 없다는 말도 있다. 다수의 수학 전문가는 중학교 과정의 개념을 완벽하게 익히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한 선행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 교사는 “중학교 때 높은 성적을 믿고 두 학기 이상의 고교 과정을 선행한 학생 중 고1 3월 학평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받는 경우가 정말 많다”고 말했다. 그는 “고1 3월 학평은 전국 단위의 시험으로 중학 수학 전 범위를 다루기에 의미가 크다”며 “실제로 고1 3월 학평 이후 선행 대신 중학교 수학의 구멍 난 개념을 복습하며 반 학기 정도 천천히 선행한 학생 중 상당수가 성적이 꾸준히 상승한다”고 설명했다.

고1 때 배우는 ‘공통수학1·2’가 수능 범위가 아니라는 이유로 소홀히 여기는 경향도 짙다. 큰 오산이다. 중학교 3년 동안 배우는 수학 개념은 고1부터 수능까지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기초 개념의 확장과 심화라는 하나의 흐름 속에 놓여 있다.

예를 들어 중2 과정의 일차함수와 그래프는 고교에서 배우는 이차함수와 지수·로그함수의 기초가 된다. 또 중3 때 처음 접하는 피타고라스 정리와 삼각비, 근호를 포함한 식의 계산은 고교 삼각함수 수열 도형의 방정식 등 수능 수학의 핵심 단원과 직결된다. 고1 수학은 중학교 과정과 고2 선택 과목을 연결해주는 만큼 꼼꼼히 학습해야 한다는 얘기다.

◆자신만의 수학 체크리스트 필요 = 다년간 수학을 지도해온 교사들은 수학을 기피하는 학생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눠 설명한다. 첫째는 공식 암기와 문제 유형 반복에만 의존해온 학생이다.이 경우 수학의 경험치가 중요하다.

장지환 서울 배재고 교사는 “같은 유전적 조건을 지닌 일란성 쌍둥이도 한쪽은 수학을 흥미롭게 경험하며 사고력을 확장해온 반면 다른 한쪽은 중학교 때 수학을 공식 암기 위주로 공부했다면 고교 수학에서 큰 성적 차를 보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결국 수학 실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깊이 경험하고 사고하며 배웠는가에서 비롯된다”고 덧붙였다.

둘째는 어릴 때는 수학을 좋아했지만 경쟁 중심의 학습 환경에 지친 학생이다. 이 경우 흥미는 잃었어도 수학 점수는 잘 나오기에 잘못된 공부 습관을 바꿀 생각을 못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수학 공부를 해야 할까. 장 교사는 중학교부터 자신만의 수학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제대로 된 습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특히 문제를 틀리면 대부분 해설지를 빠르게 보고 넘어가는 데 어느 과정에서 틀렸는지, 틀린 이유는 무엇인지 스스로 찾아야 한다. 어떤 개념에서 구멍이 났는지 살펴보고 시간이 걸려도 다시 풀어봐야 한다. 그래야 다음번에 확실하게 맞힐 수 있다.

인강도 마찬가지다. 많은 학생이 학교 수업 진도를 따라가기 어려울 때 인강을 찾는다. 개념의 흐름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주고 교재와 기출 풀이 등 복습 자료도 풍부해 개념이 막히거나 전체 구조가 잘 보이지 않을 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장 교사는 “학생들의 인강 의존도가 전반적으로 높지만 활용법에 따라 효용성은 크게 차이가 난다”라며 “단순히 봤다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배운 내용을 자신의 방법으로 정리하고 다시 풀어보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기수 기자·이도연 내일교육 리포터 ldy@nae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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