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빅테크 기업들, 공급망 탈탄소는 ‘낙제점’
그린피스, 탈탄소화 진척도 평가 … 엔비디아와 브로드컴 등 최하위 기록하고 애플만 B⁺ 등급
인공지능(AI)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에너지 소비와 온실가스 배출이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국제 인공지능 빅테크 기업들의 공급망 탈탄소화 노력이 심각하게 부족하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아마존 구글 메타 엔비디아 브로드컴 AMD 퀄컴 인텔 등 10개 국제 인공지능 빅테크 기업의 탈탄소화 진척도를 평가한 결과, 대다수 기업이 공급망 부문에서 낙제점을 받았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29일 이러한 내용을 담은 보고서 ‘공급망의 변화: AI 빅테크 기업의 탈탄소화 성적표’를 발표했다. 각 기업의 공개 정보를 바탕으로 △약속 △투명성 △실행 △참여 및 옹호 활동 네 가지 부문을 평가했다. 각 기업의 종합 점수는 △자사 운영 성과에 40% △공급망 관리에 60%의 가중치를 둬 합산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인공지능 빅테크 기업들의 온실가스 배출량 중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비중이 높았다. 엔비디아와 AMD의 경우 총배출량의 각각 84%와 98%가 공급망에서 발생했다.
그린피스는 “인공지능 하드웨어 제조는 에너지 집약적 산업으로, 2030년까지 전세계 인공지능 칩 생산에 필요한 전력량이 2023년 대비 170배 증가해 약 3만7238기가와트시(GWh)에 달할 전망”이라며 “이는 아일랜드의 연간 전체 전력 소비량을 초과하는 규모”라고 밝혔다. 이어 “문제는 인공지능 하드웨어 생산 시설이 주로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은 동아시아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라며 “이 지역 주요 부품 공급업체의 재생에너지 전환이 더디게 진행되면서, 세계 최대 기업들이 해당 지역의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를 초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엔비디아와 브로드컴이 전체 순위 최하위를 기록했다. 그린피스는 “이들 기업은 공급망에 대한 명확한 기후 및 재생에너지 약속을 내놓지 않았고 공급망의 기후·에너지 자료에 대한 투명성이 부족했다”며 “공급망 배출량을 감축하기 위한 충분한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평가 대상 10개 기업 중 6개 기업이 종합 평가에서 ‘F’ 등급을 받았다. 아마존 AMD 퀄컴 인텔 등도 엔비디아 브로드컴과 함께 최하위 등급을 받았다. 공급망의 탈탄소화 전략 및 노력 부족, 공급망 에너지 소비 및 재생에너지 조달에 대한 투명성 미흡이 낮은 평가의 주요 원인이다.
애플이 유일하게 ‘B⁺’ 등급으로 1위를 차지했다. 애플은 자사 운영 및 공급망 모두에서 과감한 재생에너지 목표를 세우고 실질적인 정책 옹호 활동을 전개했다. 또한 2030년까지 자사 및 공급망 모두 100% 재생에너지 전환을 약속한 유일한 기업이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은 ‘C⁻’ 등급을, 메타는 ‘D⁻’ 등급을 받았다.
그린피스는 “대부분의 인공지능 기업들이 2030년까지 자사 운영 및 공급망 전반의 배출량 감축을 위한 과감한 약속을 제시하지 못했다”며 “10곳 중 7곳이 자사 운영에 탄소 중립이나 넷제로(Net-Zero) 목표를 설정했지만, 2030년까지 이를 달성하겠다고 밝힌 곳은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4개 기업뿐”이라고 밝혔다. 이어 “엔비디아 브로드컴 AMD는 자사 운영이나 공급망에 대한 넷제로 목표 자체를 설정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넷제로는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양과 흡수되는 양을 같게 해 실질적인 온실가스 순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이다.
투명성 부문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애플을 제외한 모든 기업이 공급망의 전력 소비 및 재생에너지 사용 현황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아 공급망 투명성 부문에서 ‘F’ 등급을 받았다. 공급망의 전력 소비량 측면에서 연간 총량을 공개한 기업은 단 한곳도 없었다.
실행 부문에서도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그린피스는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스코프 3(기업 가치사슬 전반의 간접 온실가스 배출) 배출량을 꾸준히 감축해 온 기업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며 “오히려 엔비디아의 스코프 3 배출량은 회계연도 기준 2023년 약 351만톤에서 2025년 약 691만톤으로 거의 두 배 가까이 급증했다”고 주장했다.
평가 대상 중 절반 이상의 기업이 공급망의 탈탄소화 부문에서 ‘F’ 등급을 받았다. 급증하는 공급망 배출량에 대응하기 위한 재생에너지 조달책 마련이나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와 같은 의미 있는 실행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린피스는 “인공지능 빅테크 기업들이 2030년까지 공급망의 100% 재생에너지 전환 목표를 설정하고, 공급업체의 재생에너지 접근성 향상을 위한 투자를 적극 확대해야 한다”며 “특히 인공지능 하드웨어 제조업체가 밀집되어 있고 재생에너지 전력 조달이 어려운 동아시아 지역에 집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카트린 우(Katrin Wu) 그린피스 동아시아 지역 공급망 프로젝트 책임자는 “엔비디아를 비롯한 인공지능 빅테크는 기술 혁신을 핑계로 삼을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혁신’이 가능함을 입증해야 한다”며 “전력구매계약(PPA)과 직접 투자와 같은 재생에너지 순증에 기여하는 추가성 높은 조달 방식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