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침묵하는 김정은에 잇단 러브콜

2025-10-29 13:00:00 게재

납북자 가족 면담 후 언급

WP “즉흥외교 다시 시험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본 방문 중 일본인 납북 피해자 가족들과 면담한 직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회담 가능성을 거듭 언급하며 외교적 파장을 낳고 있다. 그는 오는 29~30일 예정된 한국 방문을 앞두고 “그를 만나면 정말 좋을 것”이라며 필요하다면 순방 일정을 연장할 수 있다고 밝히는 등 북측에 사실상 공개적 ‘러브콜’을 보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28일 일본 도쿄 모토아카사카 영빈관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진 후 납북자 가족들과 약 10분간 따로 만났다. 이 자리는 실종 당시 13세였던 요코타 메구미의 어머니 요코타 사키에 등 피해자 가족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그는 “아름다운 얼굴을 모두 기억한다”며 “미국은 끝까지 그들과 함께할 것”이라고 위로의 뜻을 전했다. 김 위원장과의 회담에서 납북자 문제를 거론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그 문제를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이는 납북자 문제를 북미 외교 의제에 포함시킬 수 있음을 시사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우리’라는 표현이 김 위원장을 포함한 것인지 아니면 미국 정부를 지칭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보도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움직임을 “즉흥 외교가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고 평가하면서도 지금은 2019년 당시와 환경이 크게 달라졌다는 점을 강조했다. 북한은 최근 러시아 및 중국과의 군사·정치적 협력을 강화하며 외교적 입지를 넓히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했고 시진핑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러시아와는 무기 지원 및 군사 협력 등으로 밀착하며 미국과의 협상 태도에도 변화를 보이고 있다. 가장 큰 변수는 북한의 핵무력 증강이다. 북한은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요구하고 있으며, 미국군축협회(Arms Control Association)에 따르면 현재 약 50기의 핵탄두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나는 그들(북한)을 일종의 핵 강국으로 본다”고 발언한 점에 대해 WP는 우려를 표했다.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사실상 인정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으며,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에서 자국 핵무장론을 자극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WP는 또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대화를 추진하려 한다면 반드시 분명한 목표와 레드라인(한계선)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핵 포기를 유도하는 전략과 더불어 한국과 일본 등 동맹국들과의 입장 조율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에도 판문점에서 김 위원장과의 깜짝 회동을 성사시켰지만 이후 실질적 비핵화 진전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에도 유사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지만 당시보다 국제 정세가 훨씬 복잡해졌고 북한의 태도는 더 강경해진 상황이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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