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주 시대 한국 사회의 특수 외국어
2021년부터 대한민국 법원은 ‘법정 통번역인 인증제’를 운영하고 있다. 영어·중국어 같은 주요 외국어뿐 아니라 이탈리아어·힌디어 등 ‘특수외국어’까지 포함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를 비롯한 여러 교육기관에서도 스웨덴어 등 특수외국어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이주자의 증가로 특수외국어의 사회적 가시성이 높아진 현실이자, 우리 사회의 외국어 인식이 ‘국제 공용어’ 중심에서 ‘이주자의 언어’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의 이주사는 국가의 경제 및 제도적 발전 과정과 궤를 같이한다.1960~80년대 산업화 시기에는 대규모의 이촌향도와 중동·서독·미국 등으로의 노동 이주가 활발했다. 이는 임금·고용·기회의 불균형이 인구 이동을 촉진한다는 ‘이주의 법칙’에 부합하는 현상이었다. 1990년대 이후 글로벌화로 인해 경제·사회·문화의 교류가 가속화됐고, 한국은 이주자를 주로 보내던 나라에서 받아들이는 나라가 되었다. 젤린스키의 ‘이동 전환’ 모델이 설명하듯 경제 발전과 함께 수용이 두드러지는 구조로 재편된 것이다.
한국사회 인적 공백 이주자들이 채워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이주는 국가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부상했다. 2020년 사망자 수가 출생자 수를 초과하는 현상이 나타났고, 2021년에는 전국 229개 시군구 중 108곳이 ‘소멸위험지역’으로 지정됐다. 이에 정부는 제4차 외국인정책을 통해 농어촌 및 산업 수요 지역에 외국인 근로자·다문화가정·유학생의 정착과 경제 활성화를 연계하고 있다. 곧 한국 사회의 인적 공백을 이주자들이 채우는 것이다.
한국의 총 인구 중 이주자 비율은 2008년 2.3%에서 2019년 4.9%로 약 두 배 늘었고, 지난 10년간 OECD 국가 중 가장 빠른 증가세를 보였다. 출신국 또한 192개국으로 확대되어 사회 내 언어·문화적 다양성도 심화되었다. 결과적으로 정책이 작동하는 현장에서는 전통적 ‘국제 공용어’만으로는 실효성을 확보하기 어려워졌고, 특수외국어의 필요성이 구조적으로 커졌다.
다른 한편, 특수외국어의 중요성은 이주의 명(明)뿐만 아닌 암(暗)의 측면과도 맞닿아 있다. 이주가 늘고 흐름이 복잡해질수록 외국인 범죄나 사회적 갈등에 대한 체계적 대응이 불가피하다. 효과적인 대응과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위해서는 특수외국어의 전문적인 이해와 활용이 요구된다.
그러나 제도적 접근은 언어의 기술적 측면을 넘어, 인간의 교류와 사회적 관계 형성을 고려해야 한다. 인공지능이 사회 여러 영역의 전문성을 보조 또는 대체하고 있지만, 인간의 언어를 가장 깊이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존재는 언제나 인간이다. 비언어적 요소와 감정, 맥락과 상황의 무한한 변주, 그리고 인간 고유의 판단과 창의성을 포착하고 실천할 수 있는 인간에 대한 존중이 특수외국어의 중요성과 함께 인식될 때, 언어의 제도적 활용은 그 진가를 발휘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이주 행정은 노동·가족·교육 등 기능별로 여러 부처에 분산되어 있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이주의 복합성을 일관적으로 다루기 어렵다. 통합 행정기구의 설립이 필요하며, 담당 기구의 출범은 ‘특수외국어국(局)’이나 ‘언어권역별 이주정책과’와 같은 전문 조직의 설치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특수외국어는 소수 언어 아닌 미래의 언어
요컨대 이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 사회에서 특수외국어는 소수 언어가 아닌 미래의 언어다. 성숙한 이주 사회로 나아갈수록 특수외국어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필요는 한층 더 깊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