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뉴욕 MZ세대의 정치 돌풍

2025-10-29 13:00:02 게재

30대 초반의 ‘MZ 정치인’이 기성정치의 공식을 깨는 파격적 공약을 앞세워 뉴욕의 민심을 흔들고 있다. 11월 4일로 예정된 뉴욕시장 선거에서 조란 맘다니(34) 민주당 후보가 새로운 정치의 이정표를 세울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MZ세대는 1981~1996년생인 밀레니얼세대(M세대)와 1997~2012년생인 Z세대를 아우르는 표현이다.

올해 초만 해도 무명에 가까웠던 정치 신예의 돌풍이 지속되면서 맘다니는 여론조사 1위다. 10월 20일 미국은퇴자협회(AARP, American Association of Retired Persons) 뉴욕지부와 고담여론조사(Gotham Polling & Analytics)가 공동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맘다니는 43.2%의 지지를 얻어 앤드루 쿠오모(무소속, 28.9%), 커티스 슬리와(공화당, 19.4%)를 제쳤다. 맘다니와 쿠오모의 양자대결에선 맘다니 44.6% 대 쿠오모 40.7%로 격차가 좁아진다. 뉴욕주지사 3선 ‘정치 거물’ 쿠오모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나 블룸버그 전 시장 등 민주당 원로들의 지지를 업고도 뉴욕시장 민주당 경선에서 맘다니에게 패하면서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뉴욕 정치의 세대교체를 상징하는 장면이다.

파격적 공약으로 자발적 지지자 급증

인도계 무슬림으로 1991년 우간다에서 태어난 맘다니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거주하다 일곱살 때 미국으로 이주했다. 정치학자인 부친은 컬럼비아대 교수, 모친은 영화 ‘몬순 웨딩’으로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감독이다. 인도 구자라트에 뿌리를 둔 그의 집안은 대대로 이슬람 시아파 신자였다. 브롱크스과학고를 거쳐 명문사립대 보든칼리지 졸업 후 뉴욕 퀸스 지역에서 퇴거 위기에 몰린 저소득층을 돕는 주택상담사로 활동했다. 2020년 뉴욕주 하원의원으로 선출되며 정계에 입문했다.

기득권 세력에 대한 유권자들의 염증과 세대교체에 대한 열망, 불법 이주자 체포로 대표되는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한 보수정책에 대한 반감 등이 맞물리며 ‘맘다니 돌풍’이 일고 있다. 그의 공약은 버스요금 전면 무료화, 서민 주거비 동결, 부자증세 등 파격적이다. 그가 선두권 주자로 떠오른 데는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선거전략도 한몫을 했다. 뉴욕의 맛집 등을 방문한 영상을 틱톡과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젊은 층을 적극 공략했다. 뉴욕 곳곳을 누비는 적극적인 자원봉사자가 2만7000명에 달한다.

내년 11월 중간선거 승리에 혈안이 된 트럼프가 뉴욕 선거판을 그냥 둘 리가 없다. 뉴욕은 트럼프의 고향이자 자신의 사업 기반이기도 하다. 트럼프는 맘다니를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하면서 “1대1로 맞붙는 구도가 된다면 (맘다니를) 이길 수 있다”며 ‘반 맘다니 전선’을 형성하기 위해 쿠오모로 후보 단일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9월 28일 같은 민주당 출신의 에릭 아담스 현 뉴욕시장이 ‘재선 포기’를 공식화했다. 주요 이유로 ‘언론의 지속적인 후보사퇴 추측 보도’와 ‘뉴욕시 선거자금위원회의 선거자금 지원 거부’ 등을 들었다. 아담스 시장의 중도 사퇴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11월 선거에서 맘다니 후보의 당선이 유력한 가운데 쿠오모 전 주지사 측으로부터 지속적인 사퇴 압박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특히 트럼프의 핵심 측근 스티브 위트코프 중동특사가 아담스를 극비리에 만났다는 보도가 나왔다. 아담스에게 중동국가의 대사직을 제안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아담스의 사퇴는 현 선거구도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다. 10월 28일 기준 미국 베팅사이트 폴리마켓은 맘다니의 당선가능성을 91%로 전망했고 경쟁자인 쿠오모는 9%에 그쳤다. 사실상 ‘맘다니 체제’가 임박했다는 평가다.

낡은 정치 저물고 MZ 정치 떠올라

뉴욕시장 선거는 내년 11월 미국 중간선거의 전초전이다. 공화당이 중간선거에서 패하면 고율관세 등 트럼프 경제정책의 추진동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헤지펀드 창업자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까지 뉴욕 정치에 뛰어들었다. 그는 “맘다니 공약이 실행되면 뉴욕은 연방정부에 구제금융을 요청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그때 ‘죽으라(drop dead)’는 답변을 듣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과격한 발언은 재계 등 보수진영의 환호를 불러왔지만 동시에 진보진영의 결집을 촉발시켰다.

‘세계 경제의 수도’ 뉴욕은 지금 MZ세대 정치 실험의 무대가 되고 있다. 베센트의 직설적 경고 이후 “도시의 미래를 소수 거대 금융 자본가들이 결정해선 안된다”는 여론이 확산됐다. 세대교체 물결 속에서 기득권 정치가 저물고 새로운 정치세력이 떠오르고 있다. 뉴욕 선거는 단지 한 도시만의 변화가 아니다. 낡은 정치에 대한 MZ세대의 심판이자 미래 민주주의의 방향타가 될 수 있다.

박진범 재정금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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