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가리 살인’ 재심 무죄…“위법수사”
광주고법 “검찰 증거물, 적법성 자체 인정 안돼”
부녀 “검사·수사관 제일 나빠 … 진실된 수사해야”
이른바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중형이 확정됐던 부녀관계 피고인들이 사건 발생 16년 만에 열린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부녀는 무죄 결과에 대해 “검사, 수사관들이 제일 나쁘다”며 진실된 수사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광주고등법원 형사2부(이의영 고법판사)는 전날 살인 및 존속살해 등 혐의로 기소된 백 모씨와 그의 딸 항소심 재심에서 피고인들에게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20년형을 선고했던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심 재판부는 “검찰은 공소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피의자 신문조서와 관련 진술을 주요 증거로 제출했지만, 적법성 자체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이 사건 주요 증거였던 범행 자백이 검찰 강압수사에 의한 허위 진술이었다는 피고인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심 재판부가 채택하지 않은 증거들은 딸의 최초 자백, 아버지와 공모했다는 추가 자백, 이에 기초한 백씨의 자백, 부녀간 부적절한 관계가 아내이자 어머니인 피해자를 살해한 동기였다는 별건 자백 등 피고인들의 진술이다.
또 진술거부권, 변호인 또는 신뢰관계인 동석권, 조서 열람 및 변경 청구권 등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하지 않은 검찰 수사가 위법하다고 결론 내렸다. 아울러 초등 2학년을 중퇴해 글을 읽거나 쓰지 못하는 백씨, 지능지수 74점 정도의 경계성 지능인인 딸이 각각 장시간 조사를 받으면서 검찰의 압박을 받았다고 짚었다.
재심 재판부는 경찰측 첩보에 근거해 부녀를 수사선상에 올렸다는 수사 담당 검사의 증언 또한 허위라고 판단했다. 재심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자료만으로는 부녀의 살인 범행을 인정할만한 증거가 부족하고 달리 인정할 증거도 없다. 원심 판단은 정당하다. 검사가 주장한 법리 오해도 없다”며 부녀의 살인·존속 살해 혐의에 대해서는 원심(1심)과 같이 무죄를 인정했다. 다만 딸 백씨의 성범죄 무고 혐의에 대해서는 자백한 점, 초범인 점을 고려해 최초 1심과 마찬가지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앞서 백씨 부녀는 2009년 7월 6일 전남 순천시 한 마을에서 청산가리(청산염)를 넣은 막걸리를 아내 최 모씨와 최씨의 지인에게 마시게 해 2명을 숨지게 하고, 함께 마신 주민 2명에게 중상을 입힌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검찰은 부적절한 관계를 맺던 백씨 부녀가 갈등 관계였던 아내이자 친모인 최씨를 살해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2012년 백씨에게 무기징역을, 백씨의 딸에게 20년 형을 선고했으나 이후 검찰의 강압수사 의혹이 불거지면서 유죄 확정 10년 만인 2022년 재심이 청구됐다. 부녀는 지난해 9월 재심 개시 결정 이후 15년 만에 풀려나 형집행 정지 상태였다.
백씨 부녀는 이날 최종 무죄 선고를 받은 뒤 “기가 막혀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며 “수사관이 제일 나쁜 사람”이라고 말했다. 또 “사건을 수사한 검사들에게 어떤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다. 정말 이렇게 수사해선 안된다고 이야기하고 싶다”며 억울함을 드러냈다.
부녀의 법률대리인 박준영 변호사는 “이번 재심 무죄는 백씨 부녀가 끝내 이뤄낸 진실의 승리다. 검사와 수사관은 머릿속에 그려둔 시나리오를 주입하며 회유했고 희망과 이간으로 아버지와 딸의 관계까지 흔들었다”며 사건 재수사와 백씨 부녀에 대한 명예회복 등을 촉구했다.
서원호 기자 o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