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이재명정부 덮친 ‘삼각 파도’

2025-10-30 13:00:03 게재

한미는 29일 관세협상을 타결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담을 계기로 5개월간 끌어 온 관세협상을 마무리했다. 한국은 비록 연간 200억달러라는 제한을 둔다고 하지만 현금 2000억달러와 조선업 협력 1500억달러를 미국에 투자하기로 했다. 말이 투자지 사실상 돈을 미국에 맡기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조공’이란 비판도 나왔다. 트럼프에 비판적인 뉴욕타임즈는 ‘갈취’라고도 했다. 어쨌든 트럼프식 ‘미국 우선주의’는 현실이다. 피할 수 없었다.

관세협상 타결은 일단 불확실성은 제거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후가 문제다. 이 대통령이 그동안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겠다”고 했지만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미중 대국주의속에서 살 길을 모색해야 할 처지다.

미중 패권, 부동산 트라우마 극복해야

미중 전략경쟁은 그동안의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미중 무역갈등이 심화할 경우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더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분석에 따르면 중국의 대미 수출이 10% 감소할 때마다 한국의 GDP는 0.31% 하락할 전망으로 한국 경제성장률은 0.34%p 하락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고 한미동맹에 올인할 수도 없다. 뉴욕타임즈 표현대로 미국은 동맹에 대해서도 ‘뒤통수’를 치고 있기 때문이다. 고려의 서 희나 강감찬 장군같은 지혜와 용기가 필요한 때다.

내치도 녹록치 않다. 노무현·문재인정부에 이어 이재명정부도 ‘부동산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어찌보면 윤석열정부가 맞닥뜨릴 부동산 사이클이었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3년 만에 정권이 교체돼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면 집 값이 오른다”는 속설이 정설로 돼버렸다.

양상은 과거 문재인정부 때와 유사하게 흘러가고 있다. 여권은 과거 부동산 때문에 정권을 넘겨준 아픈 기억 속에 “이번에는 반드시 집값을 잡겠다”고 여러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시장은 거꾸로 갈 조짐을 보이고 여권 인사들의 잇단 말실수로 ‘내로남불’ 프레임에 허우적거리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부동산 책사라는 이상경 국토부 1차관은 “집값이 떨어지면 사면 된다”고 해 민심에 불을 질렀다. 문재인정부 부동산 정책 설계자였던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같은 서울대 도시공학과 출신이란 것도 묘한 데자뷔다.

김용범 구윤철 이억원 이찬진 등 고위공직자들의 고가주택 보유·다주택 논란도 과거와 유사하다. 물론 다주택자가 더 많은 국민의힘측이 여권 인사들을 비난할 자격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집권세력이 정책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거나 민심의 질타를 외면할 수는 없다.

김수현 전 실장은 2년전 ‘부동산과 정치’라는 책을 썼다. 그는 “문재인정부는 집값을 잡지 못했다”며 정책 실패를 인정했다. 그는 여러 원인과 대책을 제시하면서 ‘부동산의 정치화’를 경계했다. “부동산 포퓰리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지금 정부 여당은 내년 지방선거를 걱정하고 있다. 김 전 실장이 지적한 ‘실패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

이재명정부 첫 국정감사가 거의 마무리되고 있다. ‘막말 국감’이라는 오명은 과거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 중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을 둘러싼 여권의 집중공세가 어떻게 귀결될지 관심사다. 최근 여당은 대법원 판결을 헌법재판소에서 다시 확인하는 4심제나 배임죄 폐지, 공직선거법에서의 허위 사실 유포와 관련한 기준 변경, 대통령 임기중 형사소송 중지, 법 왜곡죄 처벌 등 이른바 ‘사법개혁’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개혁이 대통령 지키기로 전락하면 민심 이반

사법부 내의 우려 목소리가 많고 야권은 ‘이재명 대통령 방탄용’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지난 대선 기간 중 대법원이 이 대통령에 대한 재판을 ‘이례적’으로 처리하면서 불신을 자초했지만 국민적 공감대 없이 사법개혁이 강행된다면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거대 여당이 개혁이란 명분으로 ‘입법 폭주’를 계속해 민심이반을 초래한다면 또 다시 탄핵에 면죄부를 주는 과오를 되풀이할 수 있다. 긴 호흡이 필요하다.

영국의 역사학자 토인비는 ‘도전이 있어야 응전을 통해 발전한다’고 했다. 또 ‘자만에 빠져 새로운 도전을 외면하면 쇠퇴한다’고도 했다. 이재명정부가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안팎의 도전에 맞서 높은 파도를 헤쳐나가길 바란다.

차염진 정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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