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보호와 혁신의 브릿지, 무역구제 경주
양병내 상임위원 산업통상부 무역위원회/올해 9월에 대학(원)생 대상 모의 무역위원회 대회가 있었다. 대상은 ‘무역에 관해 무엇이든 물어보살’팀이 수상했는데, 학생들의 무역위원회에 대한 지식은 이러했다. ‘국내산업을 보호하는 곳’, ‘산업경쟁력 유지와 성장의 버팀목’, 그리고 (반덤핑관세 부과 판정 과정이) ‘생각보다 빡시네.’
최근 무역위원회는 글로벌 공급과잉과 보호무역주의 확산에 따른 철강·화학 분야 덤핑과 지재권침해 등 불공정무역행위 조사로 그 어느 때 보다 뜨겁다. 전 세계 철강 공급과잉 능력은 2021년 4억 5천만 톤에서 2024년 5억 7천만 톤으로 27% 늘었고, 중국과 중동의 석유화학 산업 성장으로 저가의 철강·화학 범용제품 수입이 급증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올해 9월 말 기준 덤핑조사 신청은 12건으로, …87년 무역위원회 출범 이래 38년 만에 역대 최대치를 이미 기록 달성하였다. 사건당 국내산업의 평균 시장규모도 …15년 2,899억 원에서 …24년 2.7조 원으로 대형화되고 있어 사건은 복잡해져 가는데 글로벌 경기침체 속 우리 산업계의 덤핑피해 최소화를 위한 “신속한 반덤핑 관세 부과 등 무역구제” 요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무역위원회에서는 당연히 적기 피해구제를 통한 실효성 확보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공정성과 객관성 그리고 균형감도 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 한방에서 ‘부자(附子)’라는 약재는 생명을 살리지만 잘못 쓰면 독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역구제도 마찬가지이다. 부자가 체질과 병증에 따라 달리 써야 하듯, 우리산업의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위해서는 보호와 개방 사이의 균형감 있는 무역구제 조치가 필요하다. WTO 반덤핑 협정 5.2에서도 덤핑조사 신청을 위해서는 덤핑, 산업피해, 인과관계에 대한 충분한 증거가 반드시 있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적 규범 하에 무역위원회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조사를 최우선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금년에는 늘어나는 조사 건에 대해 공정하면서도 신중한 조사를 위해 인력을 16명 증원하여 무역위원회 출범 이후 최대 규모인 59명으로 조직을 확대하였다. 또한, 덤핑방지관세 회피를 위한 우회 수입을 차단하기 위해 내년부터는 제3국을 통한 우회 수입까지 조사할 수 있도록 제도를 확대할 계획이다. 이는 불공정무역행위의 실효적 차단뿐만 아니라, 국제 통상 규범에 부합하는 정밀한 조사체계를 갖추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제도의 정비와 조사역량 강화는 불공정무역행위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는 토대가 되지만, 그것만으로 산업경쟁력을 지킬 수는 없다. 반덤핑관세가 부과되는 이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첨단기술과 고부가가치 제품의 개발, 새로운 시장 개척과 공급망 다변화 등 파괴적 혁신이 우선되어야 한다. 무역구제의 진정한 의미는 ‘보호’ 그 자체가 아니라 산업 혁신이 가능하게 하는 브릿지(Bridge)가 되어 새로운 ‘기회의 창’을 준비하는 데 있다. 그 과정에서 자유롭고 지속적인 교역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국제협력의 틀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번 주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 2025는 의미가 크다. 경제 분야에서는 APEC CEO 서밋 2025가 브릿지, 비즈니스, 비욘드(Bridge, Business, Beyond-연결과 성장 그 너머)를 주제로 열릴 예정인데, 1,700여 명의 글로벌 비즈니스 리더가 참여하는 경제외교의 큰 장이 서는 셈이다. 이 자리에서 AI, 에너지전환, 공급망 등에서 다양한 비즈니스 협력 기회를 찾고 보호무역이 완화되는 계기가 되길 간곡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