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깐부치킨 동맹'과 아마존 충격

2025-11-03 13:00:06 게재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이 최근 본사 인력의 10%에 해당하는 3만명 감축을 시작했다. 회사 실적은 사상 최고치이지만 인력은 오히려 줄이고 있다. 인공지능(AI) 시대의 ‘고용없는 성장’이 현실로 다가왔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앤디 제시 아마존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6월 “AI가 업무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라 말했는데 불과 넉달 만에 감원이 현실이 됐다. 이는 단순한 비용절감이 아니라 AI 자동화가 사람의 역할을 대체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아마존은 지난달 31일 3분기 실적발표를 통해 클라우드 부문 호조에 힘입어 조정 주당순이익(EPS)과 매출액은 각각 1.95달러, 1801억7000만달러로 시장 예상치 1.57달러와 1778억달러를 상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아마존 주가는 9% 이상 급등했다.

AI발 일자리 위기, 아마존 감원 사태가 던지는 경고

아마존 만이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 6000명, 세일즈포스 4000명, 메타 600명, 오라클 600명, 구글의 희망퇴직 시행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도 AI 도입 이후 인력 효율화를 명분으로 대규모 감원을 단행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의 올해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고용주의 41%가 AI 도입을 이유로 인력 감축을 검토하고 있다. 기술은 생산성을 높이고 기업의 이익을 키우지만 고용을 늘리지는 않는다. AI는 이제 ‘기업의 이윤 구조’ 자체를 바꿔놓고 있다.

그런 가운데 지난달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는 전혀 다른 장면이 펼쳐졌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한국 정부와 주요 기업들을 상대로 AI 반도체 GPU 26만장, 약 14조원 규모의 공급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현재 국내 보유량의 다섯배에 이르는 물량이다. 젠슨 황 CEO는 “한국은 AI 제조와 인프라 혁신의 중심이 될 것”이라며, 한국을 ‘피지컬 AI’, 즉 현실 산업과 인공지능이 결합하는 혁신 모델의 전초기지로 지목했다. 이에 앞서 젠슨 황 CEO는 30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함께 서울 강남의 ‘깐부치킨’에서 치맥 회동을 했다. AI 반도체와 모빌리티, 로보틱스, 스마트팩토리 등 전방위 ‘AI동맹’ 강화를 예고한 상징적 자리로 평가된다.

경주의 발표는 AI 산업의 ‘낙관적 얼굴’을 보여준다. AI가 새로운 시장과 일자리를 창출하고, 제조업 혁신의 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기대가 담겼다. AI 기술 혁신은 분명 일부 직군에서는 인력이 줄어들지만 다른 직군에서는 필요 인력이 늘어날 수 있다. 실제로 한국 기업들은 반도체 로봇 자율주행 물류 등에서 AI를 접목해 생산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AI를 활용한 스마트팩토리 등은 이미 제조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떠올랐다. 그러나 기술 낙관론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GPU 26만장이 들어와도 그것을 운용할 인재와 제도가 없다면 혁신은 멈춘다. 경주의 낙관은 곧 질문이다. “우리는 AI가 만든 기회를 일자리로 연결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AI 시대 고용 구조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근원적 질문

AI가 만들어내는 효율의 시대는 이미 시작됐다. 경주의 AI 낙관과 아마존의 감원은 서로 다른 방향에서 같은 질문을 던진다. GPU 26만장이 상징하는 것은 단순한 기술 경쟁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와 기업, 개인이 AI 시대를 얼마나 성숙하게 준비하느냐의 시험대다. AI는 단순한 자동화 도구가 아니라 경제구조 전체를 바꾼다. 문제는 한국이 이 속도에 걸맞은 준비를 하고 있느냐이다.

지금이야말로 정부 기업 노동자 모두가 미래 일자리의 지형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정부는 변화의 속도에 맞춰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일자리 안정망과 전직 지원 제도를 강화하고, 산업별로 AI 전환이 불가피한 직군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선제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대학과 직업훈련 기관은 이론 중심의 커리큘럼을 버리고 산업현장의 기술 수요에 맞춘 실습형 교육 등 실질적 커리큘럼을 운영해야 한다.

기업의 역할도 중요하다. 단기적 비용 절감보다 인력 재교육과 기술 내재화에 투자해야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AI는 사람을 완전히 대체하는 존재가 아니라, 사람과 함께 더 높은 성과를 내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어야 한다. 일하는 사람 모두가 AI를 다루고 생산성을 높이는 능력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AI가 만들어내는 효율의 시대는 이미 시작됐다. 아마존의 감원 사태는 단순한 인력 구조조정이 아니라 AI발 기술혁신이 노동시장을 어떻게 뒤흔들수 있는지를 보여준 ‘예고된 미래’다. 우리에게 ‘AI 시대의 고용 구조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를 묻는 경고음이다.

안찬수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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