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고체배터리, 전기차 넘어 ‘휴머노이드 로봇 심장’ 될까

2025-11-03 13:00:11 게재

인공지능이 개발하고 쓰는 선순환 혁명 초읽기 … 머신러닝으로 3200만 후보 물질을 80시간 만에 분석 가능

‘꿈의 배터리’라 불리는 전고체배터리(Solid-State Battery, SSB)의 가능성은 어디까지인가. 전기차 산업의 새로운 ‘게임 체인저’에 국한되지 않고 인공지능 생태계 전반에 새로운 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휴머노이드 로봇 △자율주행차 △드론 △전기 항공기 등 물리적 세계로 확장되는 인공지능 기기(피지컬 인공지능·Physical AI)들이 안전하고 고성능의 배터리를 필요로 하면서 전고체배터리에 대한 관심이 다시 커진다. 더욱이 머신러닝(자료 기반 학습) 모델 등이 전고체배터리 개발 자체를 가속화하면서 인공지능이 자신을 구동할 배터리 기술을 발전시키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는 분위기다.

도요타 삼성SDI 등은 전고체배터리 상용화를 앞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3월 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2025’의 삼성SDI 부스에서 관람객이 각형 배터리가 탑재 된 전기차량을 살피는 장면. 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3일 국제 시장조사 기관 아이디테크엑스의 보고서 ‘전고체 및 폴리머 배터리 2025~2035: 기술·전망·주요 기업’에 따르면, 전고체배터리가 전기차뿐만 아니라 전기 수직이착륙기(eVTOL)와 드론 로봇 등 다양한 응용 분야로 확대 중이며 높은 에너지 밀도와 향상된 안전성, 빠른 충전 시간 등으로 인해 차세대 배터리 기술의 핵심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2035년까지 시장 규모가 약 9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측됐다.

국제학술지 ‘네이처 리뷰즈 일렉트리컬 엔지니어링’의 논문 ‘자립형 공중 로봇을 위한 공생 에너지 패러다임’ 역시 드론과 같은 공중 로봇의 지속가능한 작동을 위해 고에너지 밀도와 안전성을 갖춘 전고체배터리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전고체배터리는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의 액체 전해질을 고체 전해질로 대체한 차세대 배터리 기술이다. 액체나 젤 형태의 전해질 대신 세라믹 황화물 폴리머 등 고체 소재를 사용해 리튬이온이 양극과 음극 사이를 이동하게 한다. 이로 인해 기존 배터리 대비 에너지 밀도가 1.5~2배 높아지고, 화재나 폭발 위험이 크게 줄어든다. 충전 속도도 훨씬 빨라지고 넓은 온도 범위에서 안정적으로 작동하고 수명도 더 길어지는 장점이 있다. 도요타 삼성SDI 퀀텀스케이프 등이 개발을 주도하고 있으며, 2027~2030년 본격적인 상용화가 이뤄질 전망이다.

안전성 문제로 전고체배터리에 대한 관심이 커진다. 사진은 9월 28일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인해 불에 탄 리튬이온 배터리가 소화수조에 담긴 장면. 연합뉴스

◆휴머노이드 로봇 등 활용 범위 확대 = 스마트폰 노트북 등 우리가 24시간 함께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인 기기들이다. 이 기기들을 움직이게 하는 심장과 같은 배터리는 전기에너지를 인류가 휴대할 수 있도록 한 소중한 존재다. 이 위대한 발명품의 초기 버전은 1800년대에 개발됐다. 이탈리아 물리학자 알레산드로 볼타는 전기가 통하기 위해서는 △양극 △음극 △전해액 역할을 하는 재료가 필요하다는 걸 증명했다. 이후 1970년대 화학자 스탠리 휘팅엄이 리튬 이온 배터리를 발명했다. 그는 이 기술로 2019년 노벨 화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국제학술지 ‘네이처’의 기사 ‘로봇에게는 더 나은 배터리가 필요하다’에 따르면, 1991년 리튬 이온 배터리가 시장에 출시되었을 당시 배터리 무게 1kg당 전기 에너지 80Wh를 제공했다. 이는 당시 표준이었던 60W 백열전구를 1시간 20분 동안 켜려면 배터리 1kg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후 기술이 개발돼 일반적인 상업용 리튬 이온 배터리는 1kg당 3배 더 많은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지만 보행 로봇이 들고 다니기에는 너무 무겁다는 한계가 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전고체배터리 기술이 모바일 로봇과 드론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전망이다.모하마드 아사디 일리노이 공과대학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고체 전해질 리튬-에어 배터리는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단위 중량당 3~4배 더 많은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다. 또한 니콜라스 코토프 미시간대학교 교수는 “드론의 경우 모든 그램이 중요하며, 배터리가 여러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면 더 많은 기능적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며 전고체배터리의 다기능성을 강조했다.

중국 관영매체인 차이나데일리는 2025년 7월 1일 ‘새로운 배터리 혁신으로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 성능 향상’ 기사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작동 시간이 약 2시간에 불과해 복잡한 작업 수행에 한계가 있다고 전했다. 중국과학원 물리연구소에 따르면 로봇의 에너지 소비는 주로 수직 방향 들어올리기와 빠른 가속 동작에서 발생한다. 한 예로 로봇이 백플립(뒤로 공중제비를 도는 동작)을 할 때는 매우 높은 배터리 성능이 요구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 배터리 기업들이 전고체배터리 개발에 한창이다. 차이나데일리 보도에 따르면, 심천 소재 배터리 공급업체인 ‘BTR 뉴머티리얼그룹’은 2025년 5월 휴머노이드 로봇 전용 반고체 배터리 ‘FLEX’와 전고체배터리 ‘GUARD’를 출시했다. BTR 연구소의 리쯔쿤 소장은 “전고체배터리는 고에너지 밀도와 △안전성의 균형 △최적화된 급속 충전 및 방전 효율 △특수 작업 조건에서의 안정성과 신뢰성이라는 세 가지 핵심 요구사항을 충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고체배터리 상용화는 전기차뿐만 아니라 인공지능 분야에도 영향을 줄 전망이다.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배터리 대기업 CATL도 2025년 6월 베이징 소재 휴머노이드 로봇 기업 갈봇에 투자했으며, 휴머노이드 로봇용 배터리 개발과 생산 라인 자동화를 위한 로봇 도입을 목표로 한다. 실제 적용 사례도 나왔다. 중국의 기술산업 전문 매체인 테크노드는 2024년 12월 27일 중국 자동차 제조사 GAC가 전고체배터리를 탑재한 휴머노이드 로봇 ‘고메이트’ 3세대를 공개했다고 보도했다. GAC 로보틱스 연구 책임자 장아이민에 따르면, 이 로봇은 한 번 충전으로 6시간 작동이 가능하며 2026년 소량 생산에 돌입할 계획이다.

독일 전기차 전문 매체 일렉트리브에 따르면 파라시스 에너지의 2세대 반고체배터리는 에너지 밀도가 330Wh/kg를 초과하며 2025년 양산을 목표로 한다. REPT BATTERO가 개발 중인 전고체배터리는 에너지 밀도가 400Wh/kg를 초과할 것으로 예상되며 로봇 분야에 사용될 예정이다.

자율주행차 분야에서도 전고체배터리의 역할이 주목받는다. 도요타는 2027~2030년을 전고체배터리 상용화 시점으로 보고 있어, 향후 수년 내 로봇과 모빌리티 산업 전반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15일 배터리순환클러스터 연구지원단지를 방문, 재활용 연구 현황 등을 점검한 김성환 기후부 장관. 사진 기후부 제공

◆인공지능이 개발 속도와 정확도 향상 = 전고체배터리 개발에 인공지능이 가세하면서 개발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2024년 마이크로소프트와 미국 퍼시픽노스웨스트국립연구소(PNNL)의 공동 연구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연구팀은 인공지능과 고성능 컴퓨팅을 결합해 전고체배터리용 전해질 후보 물질 3200만개를 단 80시간 만에 분석했다.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수십 년이 걸릴 작업이었다.

국제학술지 ‘나노마이크로 레터스’의 논문 ‘인공지능이 전고체배터리 개발을 가속화한다’에 따르면, 머신러닝 알고리즘이 방대한 재료 데이터베이스를 효율적으로 분석해 전고체배터리용 고성능 △양극재 △음극재 △전해질 소재 발견을 가속화한다. 특히 인공지능 기술로 재료 특성을 정확하게 예측함으로써 실험 시간과 비용을 대폭 절감한다는 분석이다.

미국 에너지부 산하 아르곤 국립연구소는 2025년 8월 13일 “지난해 세계 최대급 슈퍼컴퓨터 ‘오로라(Aurora)’ 등을 활용해 배터리 전극용 분자 결정 구조를 학습하는 인공지능 파운데이션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며 “이 모델은 분자 구조 수십억개를 학습해 최적의 배터리 소재를 예측한다”고 밝혔다.

해당 연구를 진행 중인 벤캇 비스와나탄 미시간대학교 교수는 “배터리 소재 발견의 역사 대부분은 직관에 의존해왔으며, 오늘날 사용하는 대부분의 소재는 1975~1985년 짧은 기간에 발견됐다”며 “우리는 여전히 주로 동일한 소재에 의존하고 있으며, 배터리 성능을 개선하기 위해 작고 점진적인 조정을 거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파운데이션 모델의 장점은 분자 우주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구축했다는 것”이라며 “배터리 충전 속도를 알려주는 전도도뿐만 아니라 녹는점 끓는점 가연성 등 배터리 설계에 유용한 다양한 특성을 예측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스탠퍼드 대학교 연구팀도 인공지능을 활용한 배터리 소재 발견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다. 2016년 스탠퍼드 대학교의 오스틴 센덱 연구팀은 인공지능을 활용해 리튬 함유 화합물 1만2000개 이상을 선별한 결과, 유망한 고체 전해질 후보 21개를 발견했다. 연구팀은 “선별에는 단 몇 분밖에 걸리지 않았으며, 현 선별 방법보다 약 100만배 빠르다”고 밝혔다.

인공지능이 자신을 구동할 배터리 기술을 스스로 발전시키는 이러한 선순환 구조는 향후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전고체배터리의 상용화가 본격화되는 2027~2030년경에는 휴머노이드 로봇과 자율주행차 등 피지컬 인공지능 생태계 전반에 걸쳐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배터리 기술과 인공지능의 상호 발전이 만들어낼 새로운 미래가 주목받는 이유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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