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부동산정책, 심리전은 이제 그만
‘부동산은 심리’라는 말이 있다. 기대심리가 오르면 거래가 살아나고 불안이 커지면 가격이 뛴다. 그러나 그 심리를 조정하려는 쪽이 정책당국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정부가 심리에 편승해 ‘30만호 공급’ 같은 숫자를 내놓으며 시장을 달래는 순간 정책은 현실이 아닌 환상이 된다. 신호를 만들어 시장을 통제하려는 유혹은 이해하지만 신호가 실체 없는 메아리로 끝날 때 시장은 왜곡된다.
문재인정부 시절 24번의 부동산 대책이 그랬다. “서울 전역에 공급 확대”를 외쳤지만 실제 실현된 사업은 거의 없었다. 국유지·시유지 등 ‘짜투리 땅’을 모아 수백, 수천 가구를 짓겠다고 했지만 계획은 대부분 지도 위 숫자에 그쳤다. 정책의 무게중심이 실사구시(實事求是)가 아닌 심리전으로 흐를 때 시장의 정책 신뢰는 바닥으로 추락한다. 정부가 “집값 안정”을 외칠수록 수요자들은 “이번엔 또 어느 정도 오를까”를 계산한다.
재건축 시 용적률 상향 대가로 제공하는 임대주택 비율을 현행 50%에서 30%로 축소하겠다는 오세훈 시장의 최근 발언도 전형적인 부동산 심리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금 서울 재건축의 전체적 속도가 더딘 것은 사업이 진행 중인 단지들 때문이 아니라 공사비 분담금 등 때문에 재건축 자체를 저울질 하는 단지들이 많다는 데 핵심 원인이 있다. 이들에게 임대주택 비율을 낮춰준다고 머뭇대던 재건축이 빨라질까. 혹시 임대주택 내놓기를 극구 반대하는 강남권 재건축 조합 입지만 세워 주는건 아닐까.
집값 급등 책임을 서로 미루는 여야 공방은 18세기 말 조선의 당쟁을 떠올리게 한다. 수차례 전란으로 피폐해진 나라를 살리기 위해 박지원 박제가 홍대용 같은 실학자들이 일어섰다. 정조는 그들을 성균관에 들여 개혁의 바람을 일으키려 했지만 당파 싸움과 기득권 사대부의 득세가 모든 것을 삼켰다. 부국강병의 기회도 사라지고 결국 조선은 나라를 잃고 말았다.
오늘 대한민국 부동산정책이 그 전철을 밟아선 안된다. 국민의 주거 안정을 위한 진짜 논의는 실종된 채 각자 유리한 쪽으로 ‘답정너’ 주장을 펼치기 바쁘다. “민주당 정권 들어서면 집값 오른다” “규제지역 지정이 곧 상승 신호다” 같은 말이 횡행하는 사회에서 정책의 진정성은 설 자리를 잃는다.
부동산정책은 심리전이 아니라 사실전(事實戰)이어야 한다. 허황된 숫자와 공허한 약속이 아니라 실행 가능한 계획과 검증 가능한 결과로 말해야 한다. 심리에 기댄 부동산정책은 결국 시장의 불신을 낳고 불신은 다시 가격을 흔드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조선의 당쟁이 그랬듯, 현실을 외면한 말의 싸움은 언제나 국가와 국민을 쇠락으로 이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무책임한 숫자의 나열과 심리전이 아닌 실질에 근거한 사실적 정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