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지역 임대주택 비율 완화 ‘신중론’ 부상
서민주거안정 악화, 전월세난 심화 우려
기존 계획 수정…사업기간 늘어날 수도
서울시의 재건축 시 임대주택 비율 완화 시도가 주택시장 안정에 보탬이 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비사업 활성화에 기여하기 보다 임대주택 축소와 서민주거 불안을 가중시켰다는 분석이 나온다.
5일 내일신문 취재에 따르면 오세훈 시장이 지난달 30일 꺼내든 재건축 임대주택 비율 완화에 대해 신중한 검토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재건축 활성화를 위한 카드지만 자칫 실효성 없이 시장 불안과 무주택 세입자 등 서민주거에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도시정비법에 따라 재건축 재개발 구역은 늘어난 용적률의 50~75%에 해당하는 임대주택을 공공기여 몫으로 제공해야 한다. 서울시는 상위법에 근거해 조례로 50%를 규정했다. 서울시가 당초 “임대주택 비율을 50%에서 30%로 줄이겠다”고 밝혔다가 “정부에 건의하겠다”고 발언을 선회한 이유이기도 하다.
실현가능성 여부를 떠나 정책의 실효성 문제가 제기된다. 정비업계에 따르면 현재 서울 전체 재건축 시장이 속도가 나지 않는 핵심 원인은 강북권 재건축 사업의 부진에 있다. 급등한 공사비와 악화된 수익성 때문에 사업비와 분담금이 크게 치솟았고 이로 인해 재건축에 동의하지 않는 주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반면 임대주택 건립을 강하게 반발하는 쪽은 강남권 재건축 단지들이다. 하지만 이들 단지들은 워낙 사업 규모가 크다보니 임대주택이 전체 수익성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강남권 대단지들은 임대주택이 같은 단지 안에 있는 것 자체를 싫어하며 이 영향이 더 크게 작용한다”면서 “임대 비율을 줄여준다고 강남권 재건축 사업이 더 빨라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다른 정비업계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서울시의 임대주택 비율 완화는 강남 재건축 시장 및 유권자들에게 우호적인 신호를 보내는 효과가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임대주택 인식 후퇴, 고급화 정책과도 충돌 = 임대주택과 거주자에 대한 낙인효과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문제도 있다. 한 도시계획 전문가는 “서울시는 그간 임대주택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해 오세훈 시장이 앞장서 고급화 전략을 도입한 것은 물론 장기전세(시프트), 미리내집 등 서울형 임대주택 공급에 공을 들여왔다”며 “공급물량 확보를 위해 정비사업에 속도를 내려는 것은 이해하지만 임대 비율 축소는 임대주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후퇴시키고 기존 서울시가 잘해온 공공주택 확대 지침과 갈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보다 큰 문제는 사업이 어느 정도 추진된 단지들은 임대 비율이 완화되면 계획을 다시 수립해야 한다는 점이다. 정비사업은 여러 심의 및 인허가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다시 수립한 사업계획이 통과되려면 소요 시간이 늘어날 수 있다. 한마디로 심리적 자극은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총 사업기간은 되레 늦춰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재건축 임대주택 비율 완화는 과거 뉴타운 시절에도 추진된 적이 있다. 2011년 정부는 법을 바꿔 임대주택 건설 비율을 기존 50~75%에서 30~75%로 완화해 적용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당시에도 사업성 회복은 제한적인 반면 공공임대 물량이 축소되고 약속을 하고도 임대주택을 짓지 않는 미착공 임대가 늘어나는 등 부작용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섣부른 제도 도입 이전에 정교한 정책을 수립할 것을 주문한다. 소규모·저수익 구역에 한정해 한시적으로 비율을 조정하는 ‘타깃형 완화’ 재건축 후 지자체에 매입권한을 보장하는 ‘대체임대 확보’ 임대비율 완화가 아닌 금융지원을 통해 조합의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 등 대체 방안을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택시장 관계자는 “서민주거가 안정되려면 단순한 임대비율 완화가 아닌 공공임대 총량을 유지 혹은 확대하는 주택정책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공급 물량이라는 숫자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면 임대 축소, 전월세 심화 현상이 벌어질 수 있고 이는 서민주거안정이라는 주택정책의 본질이 훼손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