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선중학교 자청비도서관
독서·저작권 교육·지역탐방 활동으로 배움과 행동 연결하다
도서관, 탐구 중심 국제 바칼로레아(IB) 교육 핵심 기관 … ‘학문적 진실성’ 교육 전담해 학생들에게 학습 과정의 중요성 지도
문화체육관광부는 10월 22일 제62회 전국도서관대회·전시회 개회식에서 2025년 도서관 운영 유공 우수도서관으로 48곳을 선정하고 정부포상 등을 수여했다. 서울 영등포구 선유도서관과 제주 표선중학교는 각각 공공도서관 부문과 학교도서관 부문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이 외 국무총리 표창 6곳, 문체부 장관 표창 33곳, 교육부 장관 표창 7곳이 선정됐다. 3일 제주 표선중학교 도서관을 탐방했다.
제주 표선중학교 자청비도서관에 들어서면 따뜻한 조명과 개방적인 구조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천장을 높여 개방감을 주고, 학생들이 독서를 즐길 수 있도록 맞춤형으로 디자인된 창가에는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해 바테이블 형태의 좌석을 두었다. 도서관 이름 ‘자청비’는 제주 여신 설화에서 따왔다. 농사의 여신 자청비처럼 스스로 배우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자유로운 청소년들의 비상(飛上)’을 상징한다.
김평희 교장은 “자청비 설화처럼 도전과 지혜, 자유를 배우며 세계 시민으로 성장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다국어 도서에 학생들 관심 높아 = 도서관은 처음부터 교사와 학생이 함께 만든 공간이다. 2021년 리모델링 당시 교장은 “도서관은 학교의 중심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고, 문진아 사서교사는 서가 구성과 자료 배치를 직접 맡았다. 도서관 공사 중 창고에 보관하다 손상된 책 5000여권을 폐기하고 대신 새 책을 들였다. 장서는 약 1만4000권으로 최근 5년 내 출간 도서가 33% 이상이다.
표선중학교는 국제 바칼로레아(IB, International Baccalaureate)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인증학교이다. IB는 전세계 공·사립학교에서 운영되는 탐구 중심 교육과정으로 비판적 사고와 학문적 윤리를 강조한다.
표선중학교는 도서관을 IB 학습의 허브로 삼았다. 문 교사는 “IB는 개념 중심 탐구형 교육 방식을 채택해 교과 내용을 통합해 스스로 질문하고 해결책을 찾아간다”면서 “수업마다 참고자료가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도서관은 교사에게는 수업 자료를, 학생에게는 탐구 기반 학습 자료를 제공한다. 평화 전쟁 인권 등 주제를 다루는 수업에는 관련 도서를 묶어 제공한다.
또한 자청비도서관은 언어와 문화 분야 장서를 풍부하게 갖췄다. IB 교육의 핵심 중 하나는 ‘다양한 언어를 통한 문화 이해’이기 때문이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 다국어 도서가 풍부하게 구비돼 있다. 영어도서관이 별도로 있음에도 영어책 4000여권이 구비돼 있을 정도다. 영어책은 수준별로 구성돼 초보 학습자를 위한 책, 그래픽노블, 뉴베리 수상작 등 다양하다. 영어책과 한글책 번역본을 ‘쌍둥이책’으로 함께 묶어놓은 코너와 팝업북도 인기다.
학생들은 일본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학습 책도 자율적으로 빌려간다. 교과 없는 일본어도 학생들끼리 자율동아리를 만들어 공부한다. 문 교사는 “IB 과정은 언어를 배우는 걸 문화 이해의 출발로 본다”며 “학생들이 구입해 달라는 책은 물론 다양한 책을 갖춰 놓으니 확실히 학생들이 책을 많이 읽는 것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문 교사는 서울국제도서전과 각종 북페어에 꾸준히 참여한다. 작가 포스터나 신간 정보를 직접 받아와 학생들과 공유한다. 문 교사는 “서울까지 가서 포스터를 모아 온다”면서 “백희나 작가전 포스터를 보고 아이들이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며 반가워했다”고 말했다.
◆인공지능(AI) 활용법 가르쳐 = IB의 핵심에는 ‘학문적 진실성(Academic Integrity)’이 있다. 표절을 방지하고 스스로의 학습 결과에 책임지는 윤리적 태도를 기르는 것이다. 표선중은 이를 학교의 4대 정책 중 하나로 수립하고 도서관이 전담한다. 신학기마다 전교생이 ‘학문적 진실성 서약서’를 작성하며, 각 반에는 ‘학문적 진실성 도우미’를 둔다. 학생 도우미들은 친구들과 함께 캠페인을 벌이고, 월별 미션을 수행한다.
문 교사는 “IB는 단순히 출처를 밝히는 데서 끝나지 않으며 정직하게 공부하는 문화를 만드는 게 목표”라면서 “아이들이 서로에게 ‘그건 학문적 진실성 위반이야’라고 자연스럽게 말할 정도로 문화를 갖춰가고 있다”고 말했다.
도서관은 교사 대상 연수도 맡는다. 또한 참고문헌 인용법과 저작권 교육을 안내하고 한국저작권위원회의 ‘찾아가는 청소년 저작권 교육’을 매년 신청해 전교생이 듣는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보편화되면서 문 교사는 ‘인공지능 활용과 출처 표기’ 교육도 병행한다. “인공지능이 제시한 결과를 그대로 쓰는 게 아니라 출처를 명확히 밝히고 윤리적으로 활용하는 법을 가르친다”면서 “중학생 때부터 이를 익혀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자청비도서관은 독서와 교과를 잇고 있다. 국어과에서는 ‘책 표지로 시 쓰기’ 활동을 진행했고 사회과에서는 ‘쇳물 쓰지 마라’ 등 책을 읽으며 체험형 보고서를 작성했다. 기술·가정 교과에서는 도서관과 함께 정보 탐색 및 평가 수업을 운영했다. 학생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스스로 자료를 탐구한다. ‘꿈·끼 주간’에는 작가 초청 강연과 미디어 리터러시 프로그램을 연다.
문 교사는 “교과 교사들이 먼저 ‘이 주제에 맞는 책을 추천해 달라’고 찾아온다”면서 “그렇게 연결된 수업이 많아 도서관이 학교의 중심 역할을 한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이 직접 경험하고 성찰하는 활동이 중요하다”며 “단순한 만들기 체험보다 생각을 나누는 프로그램을 지향한다”고 덧붙였다.
학생 자치 활동도 돋보인다. 도서관 봉사단 ‘자청비 사서단’은 서가 정리와 행사 운영을 돕고, 학생회 문예부는 ‘책과 친해지길 바래’라는 이름으로 도서 및 소셜미디어 활용 체험 전시를 기획했다. 도서관은 직접 제작한 독서 키트를 배포하고, 미션을 수행한 학생에게 상품을 준다. 문 교사는 “아이들이 ‘이번 달엔 어떤 행사가 있나요?’라고 먼저 물을 정도”라고 말했다.
◆“학생·교사·학부모의 교육공동체” = 자청비도서관의 또 다른 축은 지역과의 연결이다. 1학년은 마을 탐방을 통해 표선 지역의 설화·인물·지명을 탐구하고, 2학년은 봉사활동 중심의 프로젝트를, 3학년은 ‘공동체에 기여하기’를 주제로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이를 지원하기 위해 도서관은 해녀와의 인터뷰, 원도심 재생지역 답사, 공정여행 프로그램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실제 지역 문제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IB의 ‘행동하는 학습자’로 성장한다.
학생들이 직접 만든 책도 여러 권이다. 1학년들은 ‘우리 마을 이해’ 프로젝트로 지역 탐방을 하고 인터뷰와 설화를 엮어 그림책을 만들었다. 문 교사는 “마을 이야기를 중학생 눈높이로 다시 썼다”면서 “실제 마을 어르신을 인터뷰하고 제주어로 된 설화를 번역해 책으로 엮었다”고 말했다. 제주어 그림책은 지역 어르신들의 감수를 거쳐 완성됐으며, 학교 안팎에서 전시됐다.
문 교사는 “도서관에서 책으로 배운 걸 세상에서 실천하는 교육이 IB”라면서 “아이들이 지역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이를 책으로 엮는 게 도서관이 하는 교육”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문 교사는 “학교 누리집에 ‘학교장 인사’가 아니라 ‘표선중학교 교육공동체 인사’라고 쓰여 있는데 이는 학생·교사·학부모가 함께 만드는 교육공동체를 상징한다”면서 “도서관 역시 이같은 철학 아래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일신문·한국도서관협회 공동기획
제주 =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사진 이의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