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노동안전 종합대책, ‘제재 강화’ 일변도 논란

2025-11-07 13:00:06 게재

노동계 “작업중지권 실효성 부족”… 경영계 “처벌 일변도 탈피, 자율규제·지원 병행해야”

‘산재와의 전쟁’을 벌이는 정부는 9월 15일 중대재해 감소를 목표로 한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고용노동부는 역대 정부의 안전대책을 뛰어넘는 초강력 대책으로 올해를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랜 오명을 씻는 원년으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먼저 연간 3명 이상 산재 사망자가 발생한 법인은 영업이익의 5% 이내, 하한액 3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는다. 공공기관이나 적자 기업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산재 사망사고의 절반을 차지하는 건설업에 대한 제재는 더욱 강화된다. 노동부 장관이 요청할 수 있는 요건에 현행 동시 2명 이상 사망에서 ‘연간 다수 사망’을 추가하고 사망자 수에 따라 영업정지 기간을 현행 2~5개월보다 늘릴 계획이다. 최근 3년간 영업정지 처분을 2차례 받은 후 다시 영업정지 요청 사유가 발생하면 등록말소 요청 대상이 된다.

공공입찰 참가 제한도 현행 동시 2명 이상 사망에서 연간 3명 이상으로 확대된다. 입찰 제한 기간도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늘릴 계획이다. 특히 민자·민간 사업장에서 중대재해를 발생시킨 건설사까지 입찰 제한 대상이 된다.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의 사업주에 대한 외국인 고용 제한도 강화된다. 외국인 사망사고 발생 시 고용 제한 기간을 현행 1년에서 3년으로 확대한다. 중대재해에 해당하는 질병 부상 등은 1년간 고용제한이 적용된다.하지만 노동계와 경영계, 전문가 사이에는 그 실효성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울산화력 붕괴 현장 야간작업 계속 6일 오후 울산시 남구 용잠동 한국동서발전 울산발전본부 울산화력발전소 보일러 타워 붕괴 사고 현장에서 야간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이 사고로 2명이 구조됐고 7명이 매몰된 것으로 추정된다. 울산=연합뉴스 장지현 기자

고용노동부가 산업재해 근절을 위해 지난 9월 발표한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두고 전문가들은 예방체계 구축보다 기업 제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노동계와 경영계는 실효성과 현장 작동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한국노총이 6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노총 대회의실에서 ‘노동안전종합대책의 평가와 실효적 이행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는 강성규 가천대 길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가 좌장을 맡아 진행됐다.

◆법의 생명, 예측가능성과 준수가능성 = 정진우 서울과기대 안전행정공학과 교수는 발제에서 “이번 대책은 종전의 노동안전 대책에 대한 진단과 분석 없이 졸속으로 마련된 것으로 정부의 책임 있는 대응이 보이지 않는다”며 “대부분의 대책이 기업 제재에 초점을 맞춰 마치 ‘제재 공화국’을 선포한 듯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제재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라며 “이미 현행 제재 수준이 세계 최고 수준인데, 정비계획 없이 제재만 높이면 과잉제재 의존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특히 “연간 3명 이상 사망사고 발생 시 법인에 과징금 하한액 30억원을 부과하겠다는 방안은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과 자기책임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크다”고도 했다.

또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중대재해법)은 법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예측 가능성과 준수 가능성을 결여하고 있는데도 이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산재예방 시스템 개편 방안은 구색 맞추기 수준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대책이 제재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이번 대책이 효과를 거두려면 정확한 현실인식과 정교한 방법론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험성평가 “설계·제조단계까지 확장해야” = 중소기업 안전보건 문제와 관련해 정 교수는 “사업장의 자율적 안전관리 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화학물질 건강장해를 포괄하는 예방 중심의 위험성 평가가 정상화돼야 한다”면서 “작업중지권은 단순히 요건을 완화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구체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특히 대표적인 산재예방 방안 중 하나인 위험성평가에 대해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사업장 위험성평가 제도를 실질적으로 개편하겠다는 내용이 빠져 있고 벌칙 부과 방안만 제시돼 있다”면서 “위험성평가는 사용단계뿐 아니라 설계·제조 단계에서도 이뤄져야 하는데 이에 대한 법정책이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노동부는 2017년 7월 ‘사업장 위험성평가에 관한 지침(고시)’을 개정해 상시 근로자 20인 미만(총 공사비 20억원 미만 건설공사) 사업장의 경우 위험성 추정을 생략하도록 했다.

정 교수는 “이는 2023년 5월 고시 개정 시 위험성평가 절차에서 ‘위험성 추정’을 삭제하는 결과로 이어져 위험성평가 제도를 사실상 폐지하는 터무니없는 개악의 단초가 됐다”고 비판했다.

정 교수는 “위험성평가를 규정하지 않은 중대재해법에 의한 사후 제재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산안법의 예방적 기능이 정상화될 수 있도록 법정책을 정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작업중지권 “기준 명확히 해야 실효성” = 이어진 토론에서 임재범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 총괄실장은 “이번 종합대책을 계기로 정부가 강한 의지를 가지고 정책을 추진해 중대재해가 감소하길 기대한다”면서도 “노동자의 안전보건 활동 참여권을 타임오프제 개선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보장하고 노동자의 작업중지권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위험성평가가 현장에서 실제로 위험요인을 제거하고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노동자 참여와 인정제도 개선 등 실질적 추진동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 실장은 특히 고용부가 작업중지권 요건을 완화하겠다고 했지만 명확한 기준이 없어 실질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노동부 노동안전 종합대책에는 산안법 52조(근로자의 작업중지) 중 ‘산재 발생의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를 ‘급박한 위험의 우려가 있는 경우’로 완화 개정하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임 실장은 “작업중지권 행사의 구체적 기준이 없으면 여전히 행사되지 않거나 행사 가능 여부를 둘러싸고 노사 간 다툼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 위반 상태를 작업중지 매뉴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임 실장은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이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행사되기 위해서는 ‘급박한 위험’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구체적 기준을 법에 명문화해야 한다”면서 “안전보건규칙 위반 상태를 ‘산재 발생의 급박한 위험이 있는 상태’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이어 “안전보건규칙 중 사업장에 적용되는 위반 사항을 검토·분류해 이를 각 사업장의 작업중지 매뉴얼에 명시·활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임 실장은 또 “그간 산재예방 5개년 계획, 2022년 중대재해감축 로드맵, 2020·2024년 경사노위 합의 등이 있었음에도 중대재해 감소효과가 거의 없었다”며 “노동안전대책의 민주적 이행체계를 구축해 노동자가 제도 밖에서 구경하는 ‘서류상의 안전’이 아니라 참여를 통해 산재예방의 주체로 설 수 있어야 비로소 안전문화가 정착되고 중대재해가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노총이 6일 서울 영등포구 노총 대회의실에서 ‘노동안전종합대책의 평가와 실효적 이행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 한국노총 제공

◆근로자·기업 공동책임 기반의 제도 정비 시급 = 전승태 경총 안전보건본부 팀장은 “현행 산업안전보건법령은 복잡하고 실효성이 떨어져 안전규정이 현장에 제대로 적용되지 못하고 있다”며 “현행 안전규제의 정합성과 현장에서 규제가 작동하지 않는 근본원인을 파악해 이에 대한 대책과 실질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처벌 중심 정책에서 벗어나 업종·규모별 맞춤형 지원과 자율규제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전 팀장은 ‘원·하청 산업안전보건위원회 구성 의무화’와 관련해 “수백개 하청이 있는 도급사업장은 회의체 운영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정부는 개정안 마련 시 산업현장의 실태를 면밀히 파악한 뒤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하청근로자 보호가 목적이라면 원청 책임만 강화할 게 아니라 원·하청 간 역할과 책임을 구분하고 협력체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 설계가 이뤄져야 한다”며 “도급인 책임의 건설공사 범위를 명확히 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라고 말했다.

전 팀장은 중소기업 안전역량 강화 방안으로 “현장 맞춤형 컨설팅, 민간·노사단체 참여 확대, 안전산업 활성화를 위한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며 “처벌 강화보다 예방 중심의 산업안전정책 전환과 근로자·기업의 공동 책임과 협력 기반의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중소영세기업은 안전보다 보호’ 고정관념 깨야 = 이윤호 안전생활시민실천연합 사무처장은 “정부 대책은 사고성 재해 중심에 국한돼 업무상 질병 재해자를 배제하고 있으며 노동자 참여와 권한 보장은 여전히 형식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처벌 강화 위주의 접근은 구체성과 실효성이 부족하고 지자체 역할 강화도 인력·재정 기반이 미흡해 현장 효과가 제한적”이라며 “50인 미만 사업장, 특수형태근로종사자·외국인 노동자 보호를 위한 실질적 지원과 함께 노동자 스스로의 안전의식 강화가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이 사무처장은 “전체 산재의 67.1%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지만 대부분의 대책은 여전히 지원책 수준에 머물고 있다”며 “처벌받지 않는 문화가 그대로 투영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중소 영세기업은 ‘안전보다는 보호가 우선’이라는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인성 호서대 안전행정공학과 교수는 “중소기업의 안전보건 수준 향상을 위해 직접지원과 자율관리 역량 강화를 병행하는 ‘투트랙(Two Track)’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그는 “위험성평가는 사업장 규모에 맞는 다양한 평가 방법을 허용하고 소규모 사업장은 절차를 단순화해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며 “도급사업의 경우 관계수급인의 위험성평가 결과 검토의무가 약화되지 않도록 법령 개정과 협의체 내 참여 보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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