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거리로 나서는 홈플러스 피해자들
증권사 앞서 피해 일부 우선 보상 촉구 … 매각 환경 조성에 정부 개입 요구도
#.60대 A씨는 거래 증권사 프라이빗뱅커(PB)의 권유를 받고 홈플러스 카드대금 유동화 전자단기사채(ABSTB·전단채)에 노후자금 상당액을 투자했다. ‘업계 2위 유통 회사인 홈플러스는 쉽게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PB의 말을 믿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특징, 위험 요인 등을 안내받지 못했지만 우수 고객에게만 소개하는 특판 상품이라는 말에 투자를 결심한 것이다.
홈플러스 기업회생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홈플러스 대주주 MBK 파트너스뿐 아니라 ABSTB를 판매한 신영증권 등 증권사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홈플러스 물품구매 전단채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전단채 비대위)는 오는 12일 홈플러스 ABSTB를 가장 많이 판매한 하나증권 앞에서 집회를 연다고 밝혔다.
피해자들은 이날 집회에서 “피해 최소화를 위해 증권사가 선지급이나 가지급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할 예정이다. 전단채 비대위는 지난 8월 금융감독원에 집단 민원을 제출하며 최소 40% 이상 선지급을 요구했다. 이들은 이후 하나증권과 신영증권 등 증권사 앞 매주 수요일 집회를 열고 압박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ABSTB는 홈플러스가 물품을 구매할 때 외상으로 결제한 카드 이용대금 채권을 기초자산으로 했다. 신영증권은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해 신용카드사들로부터 홈플러스 물품대금 카드채권의 권리를 양도받아 이를 기초로 연 6%, 투자기간 3개월짜리 ABSTB를 발행했다.
신영증권은 이 상품을 자체 리테일 창구를 통해 팔거나 국내 증권사를 통해 개인 등에게 판매했다. 그러나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간 홈플러스가 카드대금을 상환하지 못하면서 투자자들이 손실을 입게 됐다.
피해자들은 선지급을 요구하는 근거로 고객 보호보다 판매 실적에만 치중하는 증권사의 영업행태를 꼽는다. 증권사들이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전단채 비대위는 ABSTB 판매와 설명 과정에서 불완전판매가 이뤄졌다는 증언을 상당 수 수집해 논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들은 과거 선례도 선지급의 근거로 제시한다. 라임·디스커버리·옵티머스 사태 등에서 금융사가 투자금의 30~80%를 선지급했다는 것이다.
이의환 전단채 비대위 집행위원장은 “하나증권과 신영증권 등 증권사에 대해 사적화해 수단으로 선가지급금 조치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의견서를 민원 형식으로 제출했지만 현재까지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면서 “앞으로 수요집회를 통해 빠른 결단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말햤다.
시민단체와 피해자단체, 마트산업노조 등이 참여한 ‘홈플러스 사태 해결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지난 8일 용산 대통령실 인근 삼각지파출소 앞에서 ‘제2차 홈플러스 살리기 국민대회’를 열어 회생계획 인가 전 인수합병(M&A) 본입찰을 앞두고 정부의 적극적 대응을 요구하고 나섰다. 특히 이들은 농협이 홈플러스를 인수하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홈플러스는 임직원과 외주·협력업체 등 10만개 일자리와 국산 농산물 유통의 20%를 책임지고 있다”며 “공적기관이 중심이 돼 부실 채권을 정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만일 홈플러스가 폐점·청산의 길로 간다면 총 10만명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며 “공적기관이 중심이 돼 부실 채권을 정리하고, 지역 경제 회복을 위한 공적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집회는 기존 방식으로는 매각을 통한 정상화가 쉽지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지난달 진행된 공개 예비입찰에는 중소기업 하렉스인포텍과 스노마드 두 곳만 인수의향서(LOI)를 제출했다. 업계는 이들 기업의 자산 규모와 조달 능력을 고려할 때, 법원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승인할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매각이 불발될 경우 홈플러스는 회생 절차를 지속하게 된다. 이 경우 자금난 등으로 홈플러스의 정상적 영업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채무자회생법상 회생계획안 제출은 은 최장 2026년 9월까지 연장할 수 있다.
정부 개입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정치권에서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홈플러스 태스크포스(TF)는 최근 공개입찰에서 더 이상 인수자들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연합자산관리회사(유암코)나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의 공적기관이 부실채권 정리 과정에 참여해 인수환경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들은 “현재 시장에서는 부실채권 규모와 자산 평가와 관련해 MBK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져 있다”며 “이들 기관이 중심이 되어 법원 회생절차 과정에서 부실채권을 투명하게 정리하고 채권조정을 수행해야, 경영능력과 자금력을 갖춘 유통기업들이 컨소시엄 등 다양한 형태로 인수절차에 참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는 구조조정 기관의 역할을 지원하고 채권정리·고용승계·입점업체 보호 등 핵심 과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면서 “정부와 공적기관, 법원이 협력하는 투명한 회생 절차를 통해서만 홈플러스의 진정한 정상화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