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건강권 vs 소상공인 생존위협
‘새벽배송 금지’ 찬반 거세져 … “쿠팡의 고강도·저단가가 원인” 지적도
‘새벽배송 금지’를 둘러싸고 찬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노총 쿠팡노동조합에 이어 유일한 소상공인법정단체인 소상공인연합회가 ‘철회’를 요구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10일 “내수부진으로 인한 역대급 위기 속에 온라인 판매로 겨우 활로를 모색하던 소상공인들에게 난데없는 새벽배송 금지 논의는 생존의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며 ‘새벽배송 금지 철회’를 요구했다.
연합회는 “새벽배송이 금지된다면 새벽배송 온라인플랫폼 입점 소상공인들의 피해를 모아 손실보상 촉구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새벽배송 금지 논란은 지난달 22일 ‘택배 사회적대화기구’ 회의에서 불거졌다. 민주노총 택배노조가 “0시~오전 5시 초(超)심야 배송을 제한해 노동자의 수면시간과 건강권을 최소한으로 보장하자”며 제안했다.
민주노총은 “택배노조의 제안은 초심야시간 배송을 제한하고 오전 5시 출근조를 운영해 긴급한 새벽배송을 유지하는 방식”이라며 “시민의 편의를 유지하면서도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자는 합리적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쿠팡의 새벽배송은 오후 8시 30분부터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주 5~6일 연속 고정된 야간노동이다. 국제암연구소(IARC)는 야간 노동을 2A급 발암물질로 지정하고 있다. 장기간 심야근무가 유방암이나 심혈관 질환 위험을 두배 이상 높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제시하고 있다.
택배기사 과로는 사회문제다. 2021년 택배기사의 잇따른 과로사로 8월 14일이 ‘택배 없는 날’로 지정됐다. 정부 택배사 노조 시민사회가 협력한 ‘택배기사 과로사 방지 합의’가 체결된 바 있다.
하지만 반대 흐름도 거세다. 소공연은 “새벽배송 금지는 새벽배송으로 일상화된 소상공인 생태계를 일거에 붕괴시키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2023년 기준으로 새벽배송의 대명사격인 쿠팡의 입점 소상공인은 21만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내 최대 물류산업학회인 한국로지스틱스학회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새벽 배송과 주 7일 배송이 중단돼 택배 주문량이 약 40% 감소하면 소상공인 매출은 18조3000억원 감소할 것으로 추산됐다.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업체 매출 감소분 33조여원 등을 포함하면 경제적 손실은 54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게 학회 측의 분석이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도 새벽배송 전면 금지에 동의하지 않았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노동자 건강권을 최대한 보장하면서도 새벽배송의 사회적 필요 등 중간지대에서 단계적으로 개선해야 하는 과제”라고 밝혔다.
쿠팡 위탁 택배기사 1만여명이 소속된 택배영업점 단체 쿠팡파트너스연합회(CPA)는 새벽배송 금지 주장에 대해 △야간 택배기사 생계 박탈선언 △택배산업붕괴 자해 행위라며 규탄했다.
CPA는 민주노총의 ‘심야시간(0시~5시) 배송 제한’ 관련 긴급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3%가 심야시간 배송 제한을 반대했다. 95%는 “심야배송을 지속하겠다”고 응답했다. 조사에는 야간 새벽배송 기사 2405명이 참여했다.
민주노총이 새벽배송 금지로 내놓은 △오전 5시 출근(05~15시 근무), 오후 3시 출근(3시~24시 근무) △주·야간배송 교대제에 대한 반대도 각각 89%, 84%였다.
한편 새벽배송 금지 논란은 쿠팡의 고강도·저단가 노동이 핵심이라는 주장도 있다. 쿠팡이 다른 새벽배송 업체들과 달리 막대한 물량을 앞세워 배송단가를 깍아 근로강도와 수익구조를 왜곡한다는 것이다.
로켓배송으로 성장한 쿠팡은 새벽배송 대상품목과 물량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배송단가는 개당 1000원에도 못 미친다.
전국택배노동조합과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쿠팡 배송기사 노동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파트 배송건당 수수료 중윗값은 주간이 655원, 야간은 850원이다. 일반 주택은 주간이 730원, 야간이 940원으로 집계됐다.
쿠팡 노동자의 배송물량은 작년 대비 8% 늘었지만 배송기사의 실질소득은 오히려 2% 가량 줄었다. 캠프와 배송지를 오가는 다회전 횟수도 매해 증가하고 있다. 오전 7시까지 배송완료를 지키지 못하면 영업점 계약이 해지되거나 구역을 회수당할 수 있기 때문에 과로가 굳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