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AI 시대, 수능은 추억이 될 것인가

2025-11-12 13:00:01 게재

내일 55만 수험생이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다. 경찰은 시험장 주변 교통을 통제하고 항공기는 듣기평가 시간에 착륙을 미룬다. 전 국민이 수험생을 위해 하루를 양보하는 숙연한 의식이다. 하지만 인공지능(AI)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이 풍경도 머지않아 추억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챗GPT 등 최신 AI 모델들은 수능 국어영역에서 인간 평균 이상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최신 AI 모델들은 수능형 문제 중 일부 영역에서 이미 인간 상위권 수준의 성적을 낸다. 암기와 패턴 인식 중심의 평가는 의미를 잃고 있다. MIT 등 주요 해외 대학에서는 이미 AI를 ‘미래 언어’로 규정하며 모든 전공의 기본 소양으로 강조하고 있다.

AI 시대 걸맞는 교육과정과 대입제도를

전문가들이 말하는 AI 시대 인재상은 명확하다. 데이터를 읽고 맥락을 이해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능력, 그리고 AI와 협업할 수 있는 역량이다. 단순 지식이 아닌 통찰력이다. 하지만 현재 수능은 여전히 암기와 문제풀이 패턴 익히기에 머물러 있다.

문제는 취업시장이 이미 바뀌었다는 점이다. 디지털 전환과 AI 확산으로 기존 산업의 초급 일자리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청년층 실업률은 표면적으로는 6~7%대를 유지하지만 실제 체감은 훨씬 높다. 구직 포기자와 비정규직 단기 아르바이트까지 포함하면 20%를 넘는다는 분석도 있다.

데이터 분석, AI 개발·운영, 디지털 플랫폼 운영 등 고도화된 기술 직무, 창의적·융합적 역할이 대표적 미래 일자리로 부상하고 있다. 암기 중심 교육으로 길러진 청년들이 AI 시대 노동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고 있는데도 교육 시스템은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

정부도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교육부는 최근 ‘모두를 위한 인공지능(AI) 인재양성 방안’을 발표했다. 그 중에는 AI 중점학교를 2028년까지 2000교로 확대하고 모든 교사에게 AI 교육 연수를 실시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방향은 옳다. 하지만 속도가 문제다. AI 기술은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는데 교육정책은 산술급수적으로 따라간다. 더 큰 문제는 실행력이다. 이 방안이 고교학점제나 대학입시에 반영되지 않으면 학생과 학부모는 움직이지 않는다. 입시가 바뀌지 않으면 교육도 바뀌지 않는다.

전 정부의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AIDT) 도입 과정은 훌륭한 반면교사다. 맞춤형 학습이라는 취지는 좋았지만 급격한 하향식 추진으로 현장 혼란만 가중시키고 실패로 끝났다. 이재명정부의 AI 인재양성 방안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상향식 접근의 장점을 살리되 속도를 놓쳐서도 안 된다.

무엇보다 대학입시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수능에 AI 활용 역량, 데이터 해석 능력, 창의적 문제해결력을 평가하는 문항을 과감하게 도입해야 한다. 서울대는 2028학년도 입시에서 역량중심 평가체제로의 전환을 예고하며 ‘심층 역량평가 면접’을 설계하고 있다. 이는 AI 활용, 데이터해석, 문제해결력 등 미래형 역량이 입시 평가에 반영될 수 있다는 의미 있는 신호다.

구체적으로는 세 가지 변화가 필요하다. 첫째, 통합·융합형 과목 체계를 강화하고 심화 수학·과학 과목을 신설해야 한다. 둘째, 서술형·논술형·프로젝트형 문항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단순 지식 암기가 아니라 복합적 사고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측정해야 한다. 셋째, AI 활용 능력 평가를 도입해야 한다. AI 도구를 활용해 정보를 분석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하는 능력을 평가해야 한다.

AI 대응, 이미 선택 아닌 속도의 문제

고교 교육과정도 전면 개편이 필요하다. AI 코딩, 데이터 분석을 필수 과목으로 만들고 융합형 사고를 기르는 프로젝트 수업을 대폭 늘려야 한다. 교사들에게는 실질적인 AI 교육 연수와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단순한 기능 습득이 아니라 학습자의 개별적 요구에 맞춘 수업 디자인 역량 강화를 목표로 한 심층적인 연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AI를 도구로 활용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1980년대 학력고사 세대는 지금 그 시절을 추억으로 이야기한다. 수능 세대도 머지않아 그렇게 될 것이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속도의 문제다. 느리게 변화하면 한국의 젊은이들은 세계무대에서 뒤처질 것이다. 빠르게 변화하면 AI 시대를 선도할 수 있다. 내일 수능을 치르는 55만 수험생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김기수 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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