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바닥에 눕고 떠들어도 괜찮다고요?

2025-11-12 13:00:14 게재

성동구 성수동 공공수어·도선동 와글와글

청각·발달장애인 특화, 비장애인 함께 이용

“동화책도 재미있게 읽어요. ‘플라스틱 인간’이라는 환경동화가 특히 기억에 남아요. 환경에 관심이 많았는데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어요.”

서울 성동구 행당동 주민 오세연(58)씨는 매주 두세차례 지하철을 타고 성수동을 방문한다. 젊은이들을 비롯해 외국인 관광객까지 몰리는 거리나 반짝매장을 둘러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성수역 바로 옆 건물 8층 ‘공공 수어도서관’으로 곧장 향한다. 방문할 때마다 두세시간씩 머무는 또다른 보금자리다.

성동구가 장애인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도서관 두곳을 운영해 호응을 얻고 있다. 와글와글 도서관 이용자들이 발달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 관계자들과 함께 책을 읽고 있다. 사진 성동구 제공

12일 성동구에 따르면 구는 일반 도서관 이용이 어려운 장애인 주민들을 위해 특화도서관을 운영해 호응을 얻고 있다. 도서관 문턱을 낮춰 청각·언어장애인과 발달장애인 느린학습자 등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비장애인 주민들도 함께 책을 읽거나 맞춤형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때로는 소모임을 하는 등 ‘모두의 도서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농아인 맞춤 ‘공공 수어도서관’은 지난해 4월 문을 열었다. 수어통역센터와 협력해 농아인 쉼터 내 유휴공간을 활용했다. 115㎡ 공간에 서가 몇개를 놓은 작은 규모지만 독서와 학습, 정보 공유와 소통까지 활용도는 높다. 수어통역사가 상주하면서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주민이나 농아인과 소통을 원하는 비장애인을 돕는다.

다양한 독서문화 프로그램이 인기다. ‘수어 낭독교실’을 비롯해 글 쓰는 법을 배우고 책을 제작하는 ‘나도 작가’ 등이다. 수어교실과 한글 일본어 등 문해교실까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우수 도서관을 찾아가는 현장 탐방에는 비장애인들이 자원봉사자로 합류한다.

전체 이용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60대 이상 고령자다. 동네 경로당 이용이 어려운 만큼 사랑방처럼 활용한다. 이혜진 수어통역사는 “한글과 일본어, 다른 도서관 탐방까지 생애 처음 경험하는 어르신이 대부분”이라며 “수어교실 자격증반에서는 올해 통역사 배출까지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선동 ‘와글와글 도서관’은 발달장애인과 경계선 지적장애인 등을 배려한 공간이다. 지난 2023년 3월 문을 열었다. 66㎡ 도서관에는 짧은 문장이나 쉬운 말로 된 책, 쉽게 찢어지지 않고 넘기기 쉬운 책, 소리나 음악이 나오는 책 등 주 이용자 눈높이에 맞춘 도서가 구비돼 있다. 활동지원사나 보호자를 위한 교육용 책과 일반 도서까지 2000여권에 달한다.

무엇보다 소리 내고 뛰어다니거나 큰 소리로 책을 읽어도 괜찮다. 온돌 바닥이라 드러눕거나 뒹굴어도 된다. 사회복지사 1명과 공공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는 장애인 4명이 도서관 이용을 돕는다. 돌발상황에 대비해 입으면 안아주는 느낌이 드는 기능성 조끼도 갖춰 놓았다.

유아부터 청소년은 물론 인근 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하는 중장년까지 와글와글을 찾는다. 장애인과 보호자 자조모임, 비장애인 주민들 체육활동 장소로도 인기다. 오진서 성동발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은 “다른 도서관에서는 눈치가 보여 그냥 나와야 하는 경우가 많다”며 “50대 주민도 도서관과 책을 경험하기 위해 방문한다”고 설명했다.

이들 ‘모두의 도서관’은 지난해 서울시 ‘약자와의 동행 지원’ 우수 사업으로 선정됐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장애인들에게는 편하고 자유롭지만 비장애인과 분리되지 않은 특화 도서관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공감하고 이해하는 공간이 되기 바란다”며 “틈새까지 촘촘히 살피는 맞춤 정책으로 누구나 소외됨 없이 행복한 일상을 누리는 성동을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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