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해산명령 때 구체적 법조항 고지해야”
대법, 화물연대 위원장 등 노조간부 집행유예 확정
업무방해·감염병예방법 위반 유죄, 집시법 위반 무죄
경찰이 집회 해산명령을 할 때 어느 법 조항에 해당하는지 구체적으로 고지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해산명령이 구체적 고지 없이 이뤄졌다면 그에 불응하더라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뜻이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업무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이봉주 전 화물연대 위원장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1년, 벌금 200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최근 확정했다. 업무방해, 감염병예방법 위반 혐의는 유죄가 인정됐지만 집시법 위반에 대해서는 무죄가 확정됐다.
당시 지역 본부장 등 다른 집행부 간부 2명에게도 징역 4~6개월에 집행유예 1년, 벌금 100만~150만원이 각각 확정됐다.
이들은 SPC가 제품 운송 차량의 신규 노선 조정에 응하지 않자 운송 거부를 선언하고 2021년 9월 SPC삼립 세종공장에서 파업 결의대회를 하는 과정에서 빵과 밀가루 등을 실은 화물차량의 입차·출차를 막거나 도로를 점거해 운송을 방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또 예정된 집회 장소와 인원을 위반한 채 경찰의 해산명령에 따르지 않고(집시법 위반),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50인 이상 집회를 금지하는 거리두기 3단계 연장에 따른 방역 조치를 어긴 혐의(감염병예방법 위반)로도 기소됐다.
1심은 피고인들에게 모두 유죄를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해산명령 제도는 위법한 시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공공 안녕질서를 조화롭게 이루기 위한 절차”라며 “해산 사유를 매번 구체적으로 고지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매번 사유가 고지되지 않았더라도 1회 이상 고지되어 해산 사유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면 적법하게 사유를 고지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집시법 위반 혐의는 당시 경찰이 법령에 규정된 대로 구체적으로 해산 명령을 했다고 보지 않고 무죄로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를 인용하며 “해산명령을 할 때는 해산사유가 집시법 제20조 제1항 각 호 중 어느 사유에 해당하는지 구체적으로 고지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경찰이 집시법 위반을 해산사유로 고지하려면 단순히 “집시법 제16조 주최자 준수사항 위반”이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집회의 예정인원을 초과한 수의 참가자들이 예정된 집회장소를 벗어나 집회를 진행한 결과 질서를 유지할 수 없으므로 집시법 제20조 제1항 5호, 같은 법 제16조 제4항 3호에 근거하여 해산을 명한다”는 점까지 구체적으로 고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2심 재판부는 “경찰이 해산사유로 고지한 세종시의 집합금지 행정명령 위반은 집시법 제16조 제4항 각 호에 해당하는 사유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단순히 ‘집시법 위반’이라고만 고지한 것은 구체적인 해산사유 고지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2심은 업무방해와 감염병예방법 위반에 대해서만 유죄를 인정하고, 집시법 위반 부분은 무죄로 판단했다. 다만 양형은 1심과 동일하게 유지했다.
검사가 불복해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원심 판결을 수긍하고 검사의 상고를 기각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