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총장 ‘대행의 대행 체제’ 현실화

2025-11-13 13:00:23 게재

검찰청 폐지 앞두고 검찰총장 공백 최장

노만석 총장 대행도 ‘항소 포기’로 사의

노 대행 퇴임식 메시지에 검찰 안팎 관심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 항소 포기’를 지시한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대검찰청 차장검사)이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검찰은 검찰총장과 대검 차장검사 동시 공백이라는 상황에 직면했다. 검찰청 폐지를 앞두고 있는 검찰이 ‘검찰총장 대행의 대행 체제’에 들어가 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13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노만석 총장 대행은 전날 사의를 표명했다. 검찰이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 항소를 포기한 지 5일 만이며, 지난 7월 심우정 당시 검찰총장의 자진 사퇴로 검찰총장 직무를 대행한 지 4개월 만이다.

항소 포기 사태를 둘러싼 후폭풍이 검찰 내부 집단 반발로 이어지자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대검은 이날 오후 5시 30분쯤 “노 대행은 사의를 표명했다. 자세한 입장은 퇴임식 때 말씀드리겠다”고 밝혔다. ‘54자’(글자 공백 포함)의 짧은 입장문이었다.

그러나 외압 의혹은 전혀 언급하지 않아 ‘자세한 입장을 밝히겠다’는 퇴임식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노 대행이 만일 퇴임식에서 ‘항소 포기 결정은 외압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구체적인 경위와 정황을 제시한다면 검찰 조직을 넘어 정국을 뒤흔드는 파장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노 대행의 성향 등을 고려하면 퇴임식 메시지 또한 외압 의혹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채 우회적으로 정부를 비판하는 수준에 머무르거나 ‘검찰 조직을 위한 메시지’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일부 대검 간부의 만류에도 노 대행이 사의를 표명한 것은 검사동일체 문화가 남은 데다 조직 충성도가 높은 검찰 구성원의 내부 여론을 고려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검찰 지휘부에 있던 인물이 ‘조직을 위해 사퇴한다’고 밝히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

노무현정부 시절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을 놓고 갈등을 빚다 사퇴한 김종빈 당시 검찰총장이 대표적이다.

김 전 총장은 지난 2005년 10월 17일 퇴임식에서 “저의 결단(사퇴)이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수사의 독립을 이루는 작은 주춧돌이 되고, 검찰가족 여러분들의 상처난 자부심과 명예를 회복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노 대행이 사퇴하면서, 2012년 한상대 검찰총장 이후 13년 만에 검찰 내부의 사퇴 요구로 총장(대행)이 물러나는 사례가 됐다. 이명박 정권 말에 취임한 한 전 총장은 대검 중앙수사부 폐지 등을 추진했다가 내부 반발로 퇴진했다.

과거 검찰 위기론이 불거졌을 때 총장, 차장 모두 공석인 수뇌부 공백 사태는 한차례 있었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 임채진 총장이 사직하고 문성우 대검 차장이 대행을 지내다 퇴임한 뒤 한명관 기조부장이 총장 직무대행으로 5일간 근무했다. 이후 차동민 수원지검장이 대검 차장으로 임명돼 자리를 잡았다.

유사한 총장·차장 사의 표명 상황으로는 2022년 문재인 전 대통령 시절에는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박탈) 입법 추진 당시 김오수 총장이 사표를 내면서 박성진 대검 차장이 총장 대행을 맡았던 일이 꼽힌다. 당시 박 차장 역시 사직서를 내면서 예세민 기조부장이 ‘대행의 대행’이 될 뻔 했으나 박 차장이 출근은 계속하면서 대행 체제가 일단 유지됐다.

대검 차장검사는 총장이 공석일 때 총장 직무대행을 맡는다. 대검 차장검사까지 공석이 되면서 대검 기획조정부장(차순길 검사장)이 ‘대행의 대행’을 맡는다. 여기에 전국 최대 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을 이끄는 정진우 검사장도 이번 항소 포기 직후 사의를 표명한 상태다.

검찰 수뇌부의 무더기 공백으로 검찰개혁 후속입법 논의는 물론 중요 수사와 공소유지 등 검찰 업무 전반이 마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대 특검에 110명이 넘는 검사가 파견돼 전국 검찰청에 과부하가 걸린 데다 관봉권 띠지 분실 의혹과 쿠팡 퇴직금 불기소 의혹을 수사할 상설특검이 출범을 앞둔 만큼 검찰의 부담이 큰 상황에서 지휘부의 사퇴가 혼란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재명정부가 신임 검찰총장 인선을 미루면서 검찰은 총장 최장기 공백을 새롭게 갈아 치웠다. 노 대행이 사의를 표명한 11월 12일은 심우정 총장이 퇴임한 지 133일째인데, 윤석열정부 초기에 이원석 총장이 임명되기 전까지 이어진 역대 최장 공백 기간과 같은 날이었다.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 구성 후 총장 임명까지 아무리 빨라도 한 달 이상이 필요해, 연말까지 검찰총장 자리는 공석으로 남을 전망이다.

한편 시민단체인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지난 9일 노 대행과 박철우 대검 반부패부장, 정성호 법무부 장관, 이진수 법무부 차관 등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성남시도 12일 대장동 사건 부당이득 환수가 어려워졌다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 의사를 밝혔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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