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사업 인허가권’ 서울 주택정책 쟁점 부상
자치구 “사업 속도 높이려면 이양 필요”
서울시 “속도 늦춰지고 혼란만 가중”
정비사업 인허가권이 서울 주택정책 새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13일 김윤덕 국토교통부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은 오찬 면담을 진행했다. 갈등을 빚었던 정부와 서울시가 주택공급 문제에 힘을 모으기로 하면서 국장급 대화 채널을 만드는 등 협력 모드가 조성됐다. 하지만 김 장관과 오 시장 사이에 이견이 표출된 대목이 있었다. 소규모 정비사업 인·허가권의 자치구 이양 문제다.
서울 자치구는 지방 시·군과 달리 정비사업 인·허가권을 갖고 있지 않다. 광역지자체인 서울시가 인·허가 관련 모든 권한을 행사한다. 이 때문에 시의 심의를 거치지 않고선 정비사업 계획 수립, 변경 등 관련 업무를 진행할 수 없는 구조다.
서울 자치구들은 그간 권한 이양을 꾸준히 요구해왔다. 인구, 예산 규모 등이 커지면서 자체 역량이 향상됐고 무엇보다 서울시가 말하는 정비사업 속도전을 위해서도 현장과 가까운 자치구에 인·허가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성동구다. 구에 따르면 서울에는 정비구역이 지정됐거나 구역지정을 추진 중인 사업장이 1054개나 된다. 세대수를 기준으로 하면 약 81만6000호에 달한다. 성동구와 국토부가 거론한 것은 이 가운데 1000세대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인·허가권이다. 사업이 진행되는 곳이 워낙 많은 만큼 1000세대 미만 소규모 사업장(839개)을 추려 이들과 관련된 인·허가는 자치구에 맡기자는 것이다. 구 관계자는 “서울 전체 정비사업의 80%를 차지하는 1000세대 미만 사업장은 규모도 작고 이해관계도 지역적인 만큼 광역단위 행정 절차와 체계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소모적”이라고 말했다.
◆서울 자치구, 해외 대도시 규모 = 서울시는 권한 이양에 부정적이다. 복잡하고 이해관계가 첨예한 정비사업 특성상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게 서울시 입장이다. 시가 내세우는 주요 논리 가운데 하나는 서울 전체를 바라보는 도시계획적 관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치구의 어떤 사업보다 목소리가 큰 민원인이 있는 정비사업 성격상 주민 요구를 뿌리치기 어려운데다 지역별로 우후죽순식 정비사업이 진행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또다른 반론은 속도 개선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치구마다 서로 다른 기준과 절차를 적용하는 과정에서 혼선이 벌어지고 경쟁적으로 규제를 완화하는 가운데 구마다 다른 심의 기준이 만들어져 사업마다 편차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정비사업 계획을 수립하고 결정할 심의 역량을 보유하고 있느냐도 논란꺼리다.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구역지정과 심의 속도는 심의의 양보다는 위원회 운영의 질에 따라 결정된다. 오랜 경험과 축적된 역량 없이는 계획의 품질이 떨어지고 난개발과 민원 증대가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사업장 규모가 아닌 심의의 ‘범위’를 조정하는 것을 부분적 대안으로 제기한다. 정비사업 관련 모든 법에 포함되어 있는 ‘경미한 변경’의 적용 범위를 넓혀 자치구가 얘기하는 신속성 개선 요구를 일정 부분 충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택정책을 담당했던 전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가 인·허가 권한을 자치구에 넘기는 것은 준비역량, 이해관계 대응, 도시계획적 차원 등 여러 우려를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하지만 서울 자치구는 인구가 45만~70만명에 이르는 등 해외로 치면 대도시 규모에 도달해 있다”며 “모든 문제를 광역단위에서만 풀겠다는 건 현실적으로 맞지 않고 자치권 확대 차원에서도 광역에 쏠려있는 권한과 사무의 이양을 진지하게 검토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