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 방문했던 SPC삼립, 또 노동자 사망
노조·시민단체, 6일 연속 야간 근무가 원인 주장
사측 “근무 시간 등 산재 사고 판단할 요인 없어”
노동부 “노동강도·건강 영향 진단 결과 보고 요구”
“대통령이 다녀가니 노동시간을 줄이는 시늉만 취하고 노동자들의 처우는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노동자들은 휴일 수가 줄었고 임금 하락이 발생해 생계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대통령 앞에서는 하는 척 시늉을 하고 뒤로는 노동자를 더 가혹하게 쥐어짜는 것이 SPC의 두 얼굴이다.” - 기자회견 참석자들
SPC삼립 시화공장 노동자가 또 사망했다. 잇단 사망 사고 끝에 SPC그룹이 전 계열사 생산현장 근무제 개편에 나선지 한 달 만이다. 고용노동부는 SPC삼립 관계자를 불러 잇단 사망사고에 실효성 있는 점검과 대책 수립을 지시하고 모니터에 착수했다.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정의당·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은 13일 경기도 시흥시 SPC삼립 시화공장 앞에서 ‘SPC삼립 장시간 심야노동 과로사 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대통령 방문 두 달 만에 과로로 추정되는 산재 사망이 또 발생했다”며 “SPC는 실효성 있는 재발방지 대책을 제시하라”고 주장했다. 이 공장의 60대 노동자 A씨가 지난 9월 27일 야간조 근무를 마치고 퇴근한 뒤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사망 전 6일 연속 야간근무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7월 이 공장을 방문해 SPC그룹 계열사에서 반복해 일어나는 산재 사고를 질책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노사간담회를 열고 장시간 야간노동과 저임금 구조 등을 지적했다. 이에 사측은 생산직 노동자의 8시간 초과 야간근무를 폐지하겠다며 ‘주야 12시간 맞교대’를 ‘3조 3교대’로 바꾼 새로운 근무체계를 지난 9월 1일부터 도입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출근일이 주 5일에서 6일로 늘어나고, 교대 근무조가 매주 바뀌는 등 휴식시간이 오히려 줄었다고 주장했다. 결국 근무제 개편 한 달도 채 안 돼 사망자가 발생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등에서 명확한 사인이 확인되지 않았지만 노동자들은 6일 연속 야간 근무 등 피로 누적과 불규칙한 교대 근무를 원인으로 지목한다.
김소영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SPC삼립지회 지회장은 “또다시 동료가 6일 연속 야간근무 후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며 “5월 산재사망 이후 달라진 것이 없음을 보여주는 참담한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저임금으로는 먹고 살 수 없으니까 연장근로와 야간근로를 통해서 생계를 해결해야 하며, 피로가 누적된 상태에서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순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SPC는 내년 4월이나 돼야 인원 추가를 하겠다는데, 그 사이에 또 사망자가 나오면 어쩌려고 그러나”라며 “지금 당장 임금 보존하는 3교대 주5일제 시행하는 것이 근본대책의 시작”이라고 촉구했다.
SPC 관계자는 이에 대해 “고인의 근무시간이 주당 42~45시간으로 과로사로 보기 어렵다”면서 “6일제 등은 고용문제 등으로 임시방편이고 내년 봄 노조 등과 협의를 통해 추가 개선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존 대표 노조와 충분히 협상해 도입한 제도”라며 “현재도 인력 충원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지방근무 등의 이유로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덧붙였다.
SPC삼립 시화공장에서는 지난 5월 냉각 컨베이어 벨트에 윤활유를 뿌리는 작업을 하던 50대 노동자가 기계에 끼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한편 고용노동부는 이와 관련해 14일 김범수 SPC삼립 대표이사와 면담을 가졌다. 이날 류현철 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은 연속적인 야간노동이 노동자의 건강에 유의미한 부담을 준다는 연구결과도 확인되는 만큼 교대제 개편 이후 노동강도 변화, 노동자의 건강 영향 등을 면밀히 진단하고 그에 기초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수립해 보고할 것을 주문했다.
특히 류 본부장은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노동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노동부도 이를 중점적으로 모니터링 하겠다”고 강조했다.
장세풍·한남진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