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AI 거품론과 ‘빅쇼트’ 마이클 버리
인공지능(AI) 투자 열풍이 정점으로 치닫는 지금, 시장 곳곳에서 ‘AI 거품론’이 확산되고 있다. 그 중심에는 금융위기 직전 서브프라임 붕괴를 예견했던 마이클 버리가 서 있다. 그는 최근 AI 기업 주가 하락에 베팅하며 일부 빅테크가 서버 감가상각 기간을 늘려 단기 이익을 부풀리고 있다고 직격했다. 과열과 조급함이 뒤섞인 현 시장 분위기로 볼 때 “시장을 다시 잘못된 방향으로 몰고 갈 수 있는 신호”라는 그의 경고는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불편한 진단’에 가깝다.
버리는 올해 54세다. UCLA에서 영문학·경제학을 전공하며 의대 진학을 위한 프리 메드(pre-med) 과정을 함께 밟았다. 이후 밴더빌트 의대를 거쳐 스탠퍼드 병원에서 레지던트로 일했다.
어린 시절 한쪽 눈을 잃어 유리안구를 착용하며 자란 그는 스스로를 “친구를 두지 않는 성향”이라고 말한다. “나는 내 머릿속에서 혼자 지내는 게 편하다”는 고독한 기질은 그의 투자 방식에도 그대로 투영됐다. 주류의 낙관과 거리를 두고, 남들이 보지 않는 균열을 탐색하는 데 몰두한다. ‘빅쇼트’ 이후 그는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 신화적 존재가 됐다. X의 전신인 트위터에서 난해하지만 직설적인 글을 올리며 150만명이 넘는 팔로어를 모았다. 이런 독특한 소통 방식은 그의 시장 영향력을 한층 더 강화했다.
감가상각 논란이 불러온 ‘착시 효과’
그가 문제 삼은 감가상각 이슈는 회계기준 해석의 차이로 넘길 수도 있지만 AI 투자 규모를 고려하면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예컨대 AI 인프라 기업 코어위브는 서버 사용 연한을 4년에서 6년으로 늘렸고, 메타와 오라클도 비슷한 조정을 진행했다. 서버 사용 기간을 길게 잡으면 연간 감가상각 비용이 줄어들고, 같은 실적이라도 영업이익은 더 커 보인다. 아직 AI 투자가 뚜렷한 현금창출로 이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이런 회계 처리는 기업의 재무체력을 실제보다 부풀리는 효과를 낳는다. 버리가 비판한 지점이 바로 이것이다. 시장이 환호하는 이익이 실상은 ‘회계상의 착시’일 수 있다는 경고다.
감가상각 문제 외에도 AI 거품론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여럿 제기되고 있다. 하나는 데이터센터 과잉투자 우려다. 오픈AI가 제시한 장기투자 계획만 1조4000억달러에 달하지만 수요가 이를 따라갈지는 불확실하다.
또 하나는 기업 가치평가다. 올해 예상 실적의 250배에 이르는 기업들까지 등장하며 “기대가 현실을 한참 앞서갔다”는 비판이 잇따른다. JP모건체이스는 2030년까지 계획된 AI 설비투자가 연 10% 수익률을 내려면 AI 관련 매출이 매년 6500억달러에 달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는 전세계 아이폰 사용자 한명당 매년 400달러 이상을 AI 서비스에 지출해야 가능한 수준이다. 새로운 기술이 초기에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례를 생각하면 이런 수치는 결코 가벼운 경고가 아니다.
그러나 반대편 시각도 무시하기 어렵다. 파이낸셜타임스에서 실리콘밸리와 AI를 오랫동안 취재해온 리처드 워터스는 현재 AI 산업이 거품이 아니라 오히려 ‘용량 부족’ 상태에 가깝다고 진단한다. 오픈AI와 엔비디아가 체결한 1000억달러 규모의 장기 계약 가운데 확정된 것은 약 10%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수요가 확인돼야 진행된다. 이는 과잉 구축이 아니라 ‘수요 검증 후 투자’ 구조에 가깝다.
AI 칩 수요도 여전히 폭발적이다. AMD는 2030년 전세계 AI 칩 시장이 연 1조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으며, 엔비디아는 곧 발표할 실적에서 이를 다시 증명할 것이란 기대를 받고 있다. 대형 기술기업의 주가수익비율이 평균보다 높지만 과거 기술 호황기에도 반복된 수준이라는 점에서 이를 곧바로 거품이 터질 조짐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기업 간 희비는 갈릴 수 있어도 AI 자체의 성장세가 꺾였다고 말하기에는 시기상조란 이야기다.
거품과 성장 사이, 시장이 읽어야 할 것들
결국 지금의 논쟁은 AI 산업의 실체가 아니라 시장 기대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에 가깝다. 마이클 버리의 경고는 시장 과열에 대한 유의미한 신호로 읽힐 수 있고, 공급부족과 성장속도를 근거로 한 낙관론 또한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어느 쪽도 단정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비관이나 낙관 중 하나를 선택하는 태도는 아닌 듯하다. 필요한 것은 기대와 현실을 구분하고 숫자와 회계의 언어 뒤에 숨은 위험을 냉정하게 들여다보는 일이다. AI 시대의 위험은 기술 그 자체보다 그 기술을 바라보는 우리의 믿음과 서사에서 비롯될지 모른다.
김상범 국제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