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 맞춤교육
교과 특성화학교, 지역 맞춤형 교육과정 시험대
고교학점제 취지 따라 선택과목·심화과정 강화 … 온라인·거점·공유캠퍼스 등 형태 다변화 속 역할·정체성 재정립 과제
고교학점제가 전면 시행되면서 교과 특성화학교에 대한 관심도 고조되고 있다. 교과 특성화학교는 특정 교과나 분야에 특화된 교육과정을 제공하는 일반고를 말하는데 고교학점제 역시 일반고의 경쟁력을 높이고 학생의 과목 선택권을 넓히기 위한 방안으로 개별 학교마다 강점을 살린 특화된 교육과정을 설계 운영하는 것을 권장하기 때문이다. 교과 특성화학교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이 도입된 지난 2018년부터 점차 확대되며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학생들은 우리 학교가 교과 특성화학교였는지도 몰랐다는 반응을 많이 보인다. 교육부에서 추진해온 교과 특성화학교 사업이 종료되고 지역별로 자율 운영되다 보니 학교마다 운영 방식과 교육 방향이 달라 혼선을 빚기도 한다. 교과 특성화학교의 현황을 짚어보고 운영 사례를 살펴봤다.
교과 특성화학교의 뿌리는 2009년에 처음 지정된 과학중점학교다. 일반고 안에서 과학 분야에 특화된 교육을 제공해 학생들에게 깊이 있는 학습 경험을 주는 것이 주된 목표였다.
◆2009년 시작, 고교학점제 시대 관심 커져 = 가장 큰 전환점을 맞은 시기는 2018년이었다. 이전까지는 일부 중점 학급만 특성화 과정을 이수하는 폐쇄적인 운영 방식이었지만 이 시기를 기점으로 모든 학생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완전 개방형 교육과정으로 탈바꿈했다. 교육부는 이에 따라 2018년 기존의 중점과정이라는 명칭을 중점교과 관련 과목으로 변경했다.
이는 학생의 과목 선택권을 확대하려는 2015 개정 교육과정과 고교학점제의 취지를 반영한 것이다. 아울러 시·도교육청의 자율성을 강화해 지역 여건에 맞는 다양한 형태의 교과 특성화학교 운영이 가능하도록 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부에서 계획하고 예산을 운영해온 교과 특성화학교 사업이 안정적으로 정착함에 따라 2022년부터 각 시·도교육청으로 전면 이양했다”고 말했다.
교육부의 교과 특성화학교 사업이 작년에 종료됨에 따라 이제 교과 특성화학교는 각 시·도교육청이 6년 단위로 지정하는 자율형학교 내 교육과정 특성화 분야로 운영된다.
김현철 경기 심원고 교사는 “학생의 과목 선택권 확대와 교육과정 다양화라는 고교학점제의 기본 목표는 같지만 지역마다 학교 여건 인구 규모 예산 학교 수가 다르기에 사업의 이름과 구조도 상이하다”며 “일부 지역은 교과 특성화학교라는 단어가 특성화고와 혼동된다고 판단해 중점학교와 공동 교육과정 거점학교를 한데 묶어 교육과정 특성화학교나 교육과정 다양화학교라는 이름으로 바꿨다”고 설명했다.
충남도·충북도교육청 산하의 기존 교과 특성화학교는 자율형 학교 형태로 여전히 특화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김시형 충남도교육청 장학사는 “광역시처럼 인구 밀도가 높고 대중 교통망이 잘 갖춰진 지역이라면 좋은 아이디어였겠지만 학교 간 거리가 멀고 교통 여건이 불편한 지역 학교에서는 운영에 어려움이 컸다”며 “특히 한 지역에 학교가 한두 곳뿐이라면 교과 특성화학교는 다른 교과를 배우고 싶은 학생들에게는 오히려 선택에 제약을 주는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는 기존 교과 특성화학교의 장단점을 보완해 지역적 특색과 학교 여건을 반영하고 온라인학교 거점학교 공유캠퍼스 교과 특성화학교 등의 형태로 학교가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교과 특성화학교의 교육과정은 학생의 진로·적성에 기반한 선택을 전제로 하되 단순히 과목을 많이 여는 것이 아닌 교과 간의 연계와 위계를 고려해 깊이 있는 학습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경기, 지역 주도형 교과 특성화학교로 재편 = 경기도는 교과 특성화학교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이 같은 인구 구조와 지역적 차이를 고려해 경기도교육청은 교과 특성화학교를 권역별로 분산 지정하면서도 지역의 문화적 다양성과 글로벌 역량을 반영한 프로그램을 집중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현재 교육부에서 추진하던 경기도형 교과 특성화학교 45개교는 지역형 교과 특성화학교로 재편해 활발히 운영 중”이라며 “AI 소프트웨어와 관련된 교과 특성화학교의 비중이 가장 높지만 국제화 분야를 중심으로 인문·사회 분야 교과 특성화학교도 활발하게 운영 중”이라고 설명했다.
대구시교육청은 2022 개정 교육과정 도입에 맞춰 교육과정중점학교라는 통합된 명칭 아래 중점 교육과정을 네 가지 축으로 운영하고 있다.
먼저 일반융합 교육과정중점학교는 기존 교과 특성화학교를 전환한 것이다. 융복합로봇 교육과정중점학교인 호산고를 포함한 13개교가 교과 특성화학교다. 학문 간 경계를 넘나드는 융합형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것이 특징이다.
결국 2022 개정 교육과정과 고교학점제에서는 기존의 중점학교와 교과 특성화학교가 모두 학생의 진로와 선택 중심으로 특화된 교육과정을 운영한다는 점에서 같은 성격을 지니며 이러한 학교들을 통합해 교육과정중점학교라고 부른다.
여기에 중점반을 따로 운영하는 과학중점(6개교)과 예술중점(4개교)을 추가로 두어 과학탐구나 예술 실기 등 특정 분야에 대한 학생들의 전문적 학습 수요를 충족시키고 있다.
◆대구 호산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교육 = 대구 호산고는 2019년 융복합로봇공학 교과 특성화학교로 지정돼 학생들이 로봇공학을 중심으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융합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특화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1학년은 학급 구분 없이 선택형으로 운영하며 2·3학년부터는 학급 단위로 편성해 심화 전공 학습이 이뤄진다.
올해 고1을 기준으로 1학년 땐 ‘로봇과 공학세계’를 통해 로봇공학의 기초 개념과 융합적 사고를 익힌다. 2학년 땐 ‘인공지능기초’ ‘데이터과학’ ‘창의공학설계’ ‘전기전자일반’ 등을 선택 이수하며 기초 학문과 응용 기술을 함께 학습한다. 3학년 땐 ‘로봇하드웨어설계’ ‘로봇소프트웨어개발’ ‘전자기와 양자’를 통해 진로 분야별로 심화 학습한다.
김정훈 대구 호산고 교사는 “교과 구성은 로봇공학을 단일 영역으로 한정하지 않고 하드웨어(전기·전자·기계)와 소프트웨어(프로그래밍·인공지능)로 이원화된 교육 트랙을 마련해 학생의 희망 진로와 흥미를 반영했다”라고 안내했다.
정규 수업 외에도 학기마다 공학 아이디어 챌린지 메이커 교육 해커톤 등 실습 중심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2학기에는 전공 설계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공학 분야의 실제 사례를 접하며 학생들이 자신에게 적합한 전공을 탐색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학생들이 가장 흥미롭게 참여하는 프로그램은 방학 중 운영되는 대학 탐방이다. 그동안 호산고와 MOU를 맺은 대학을 중심으로 중국 하얼빈공대, KAIST, 경북대 IT대학 모바일공학과 등을 찾아가 전공 체험을 했다.
김 교사는 “대학 연구실을 직접 둘러보고 교수님의 강의를 들어본 후 실제 전공 분야가 어떻게 사회와 연결되는지를 체감하면 진로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 의식이 생긴다”라고 밝힌다.
로봇공학 특성화 프로그램은 인문 성향 학생의 참여도 활발하다. 기술이 사회와 인간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를 탐구하는 융합 활동을 함께 운영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로봇을 활용한 사회복지 서비스나 인공지능 윤리 토론 등으로 인문·사회적 관점을 접목하는 식이다.
◆경기 심원고, 국제화와 문화콘텐츠 투 트랙 운영 = 경기 심원고의 교과 특성화학교 운영은 2018년 교육부의 완전 개방형 교육과정에 맞춰 경기도교육청 산하 부천교육지원청이 추진한 교육과정 특성화 시범지구 사업을 계기로 본격화됐다. 교육공동체 협의를 통해 2017학년부터 국제화 교육과정 특성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한 데 이어 2018년부터는 문화콘텐츠 영역을 추가했다.
윤해정 경기 심원고 교사는 “교과 영역에서는 국제화 관련 교과보다 문화콘텐츠 관련 교과에 관심이 높은 편이다”며 “특히 3학년 1학기 ‘미디어콘텐츠일반’, 2학기 ‘스마트문화앱콘텐츠제작’이 대표적”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미디어콘텐츠일반’은 미디어 플랫폼을 통한 콘텐츠 산업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해당 분야의 기초를 다지는 과목”이라며 “‘스마트문화앱콘텐츠제작’은 스마트폰·태블릿 기반의 앱 콘텐츠 제작에 초점을 맞춘 실무-응용형 과목으로 학생 참여도가 높아 각각 3학급을 개설했다”고 설명했다.
특성화 과목뿐만 아니라 인문·사회 전 교과에 걸쳐 특성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제2외국어 선택 과목인 2학년 ‘중국어Ⅰ’ 수업에서 판다를 중심 키워드로 삼아 중국의 지리 문화 언어 외교까지 아우르는 판다키링만들기 프로젝트 수업을 하는 식이다.
비교과 영역에서는 명사 초청 특강이 해마다 가장 높은 참여율을 기록하고 있다. 최지민 경기 심원고 교사는 “올해 진행한 문화콘텐츠 특강에서는 재심 변호사로 잘 알려진 박준형 변호사를 초청해 실제 사회적 이슈나 사건을 바탕으로 한 콘텐츠 제작 과정을 살펴봤다”며 “국제화 특강에서는 동북아문화산업 전문가를 초청해 세계의 사회·문화·정치적 이슈를 다뤘다”고 설명했다.
심원고는 올해 10월 전 세계 학교가 참여하는 국제 교육 협력 네트워크인 유네스코학교네트워크(ASPnet)에 가입했다. 1년 동안의 심사 과정을 통해 학교의 국제화 교육 방향과 향후 계획을 긍정적으로 평가받아 최종 승인됐다.
김원태 심원고 교장은 “앞으로 외국 학교와의 교류나 공동 수업 온라인 세미나 등을 통해 국제화 교육 역량을 강화할 예정”이라며 “아울러 유네스코가 제시하는 주제(평화 인권 기후변화 문화유산 등)를 바탕으로 프로젝트형 수업이나 융합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김기수 기자·이도연 내일교육 리포터 ldy@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