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스코리아 90억원 법인세 “다시 심리”
세무당국 상대로 법인세 부과취소 소송
대법, 원고 승소 판단한 원심 파기환송
필립스코리아가 ‘이전가격’ 과세로 부과받은 법인세를 취소해달라며 과세당국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필립스코리아의 손을 들어준 하급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깨졌다. 이전가격이란 다국적 기업의 모회사와 자회사 등 특수관계에 있는 기업 간의 거래가격을 일컫는 것으로, 이전가격을 인위적으로 높게 책정해 세금 부담을 줄이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최근 필립스코리아가 남대문세무서장을 상대로 제기한 법인세 부과 처분 취소소송에서 원심의 원고승소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과세 당국은 2017년 8월 필립스 그룹의 한국 현지법인인 필립스코리아에 이전가격 거래를 이유로 2012~2015 사업연도 법인세 90억4660만9100원을 부과했다. 과세 당국은 필립스코리아가 의료 장비, 소형 가전, 자동차 조명 제품을 국외 특수관계인(필립스 네덜란드 본사)으로부터 정상가격보다 비싼 값에 매입하는 바람에 필립스코리아 영업이익률이 과소 계상됐다고 판단했다. 필립스코리아는 과세 처분에 불복해 2019년 10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국제조세조정법상 정상가격을 구하려면 필립스코리아와 수행하는 기능, 부담하는 위험, 사용하는 자산이 비슷한 회사를 비교해야 한다. 이에 따라 필립스코리아를 필립스 네덜란드 본사 전략을 따르며 제한된 기능과 위험만 부담하는 ‘제한된 위험의 판매업자’로 볼 것인지, 아니면 모든 위험과 기능을 독자적으로 수행하는 ‘완전판매업자’로 볼 것인지가 쟁점이 됐다.
1심은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필립스코리아는 엔지니어 기술력, 서비스 키 보안 정책, 부품 공급 독점력을 비롯해 독자적 무형자산을 보유하고 재고 위험까지 부담하는 완전판매업자”라며 “과세 당국이 유사한 기능과 자산을 갖춘 기업들을 비교 대상으로 선정해 정상가격을 산출한 것은 적법하다”고 밝혔다.
2심은 1심과 달리 원고 승소 판결했다. 2심은 정당세액이 24억7467만원이라고 보고 기존에 부과한 세액(90억4662만원)과의 차액인 65억7195만원은 취소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과세 당국이 의료 장비 부문의 비교 대상 기업을 선정할 때 분석 대상을 국제 거래(장비 공급 및 본사의 유지보수 지원)가 아닌 국내 거래(유지보수 서비스업)를 기준으로 삼은 문제가 있다”며 “소형 가전 부문도 필립스코리아 역할이 제한적인데 완전판매업자로 잘못 전제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소형 가전 사업 부문에 관해선 원심 판결을 수긍했지만, 의료 장비 사업 부문은 원심이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았다고 전부 파기 환송했다.
재판부는 “필립스코리아와 국외 특수관계인 사이에 독립적인 유지보수 서비스 지원 거래가 존재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과세 당국이 필립스코리아와 비슷한 거래를 하는 비교 대상 업체를 선정한 다음 합리적으로 정상 가격을 산출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판시했다.
필립스 네덜란드 본사의 유지보수 지원은 별도의 독립된 국제 거래가 아니라 장비 공급에 따른 부수적 조건이기에, 과세 당국이 필립스코리아와 비슷한 사업을 하는 국내 기업과 비교해 정상가격을 산정한 게 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취지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